성매매 특별법 시행으로 '집창촌 폐쇄' 철퇴지하로 숨어드는 윤락, 업주들 생계대책 요구

[이색지대 르포] 불꺼진 588의 밤 살내음 대신 한숨만
성매매 특별법 시행으로 '집창촌 폐쇄' 철퇴
지하로 숨어드는 윤락, 업주들 생계대책 요구


9월23일부터 성매매 특별법 시행됐다. 바로 직전인 22일 23시30분까지만해도 정상영업을 했던 청량리 집창촌(속칭 588)도 23일 0시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단속을 위해 나온 경찰들과 그 뒤를 쫓는 취재진, 그리고 아직 이곳 소식을 접하지 못한 일본인 관광객들로 이날 청량리 집창촌은 유난히 북적거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밤 상황을 살펴보려고 청량리를 다시 찾았다. 여전히 이곳을 순찰하는 경찰들이 여럿 눈에 띄었지만 그 외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야한 의상의 윤락녀들로 넘쳐나던 이 거리에는 적막만이 흘렀고 오가는 것은 몇 대의 차량들 뿐이었다. 이제 텅 빈 청량리 집창촌은 꽉 막힌 도로를 피해 갈 수 있는 일종의 지름길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은 청량리 집창촌 중심에 위치한 사거리 슈퍼 부근이었다. “담배 한 갑도 안 팔린다”는 슈퍼 아주머니는 “여기서 30년 장사하며 이 같은 일은 처음”이라며 하소연이다.

23일 밤 업주들은 대부분 미아리에서 열린 항의 집회로 몰려갔다. “올 때가 됐다”는 슈퍼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 기다리기 10여분. 드디어 청량리 자율정화위원회의 박승철 위원장을 비롯한 업주 서너 명이 돌아와 사거리 슈퍼 부근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았다.

업주들이 모여 앉은 술상은 이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황량했다. 안주라곤 고작 김치 두 접시뿐인 상태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취재 중이라는 신분을 밝히자 이들은 금세 자리를 하나 비워줬다. 김치뿐이던 술상에 삶은 오징어까지 시켜주는 파격적인 접대를 받은 기자의 잔에 소주가 채워지면서 이들과의 술자리가 시작됐다.

- "우린 뭐 먹고 살라고"

박 위원장 바로 옆에 앉은 김 사장이라는 업주가 먼저 포문을 연다. “세상이 살기 좋아져 집창촌이 사라지면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하지만 이번처럼 아무 대책 없이 집창촌을 이 지경으로 만들면 아가씨(윤락녀)들은 뭐하고 살라는 얘기냐”고 되묻는다.

이들이 성매매 특별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당사자의 의견을 묻지 않은 절차상의 문제다.

“자율정화위원회는 지난 2000년 1월에 경찰의 권유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집창촌에서 미성년자를 몰아내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이후 많은 봉사 활동으로 지난 6월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는 박승철 위원장은 “업주나 윤락녀 등 관계자가 참여하는 공청회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최소한 정부 권유로 만든 우리 단체에게 자문을 구하고 것이 절차 아니냐?”고 항변했다.

서너 명의 업주와 시작한 술자리는 어느새 몰려든 10여명의 업주들로 규모가 커졌다. 뒤에 온 10여명은 자리에 앉지 못한 채 둘러서 우리의 대화에 참여했다.

가장 문제가 된 선불금에 대해 물어보자 서서 술자리를 참관하던 업주 한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선불금을 주지 않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아파 수술비가 필요하다며 천만원만 빌려달라고 사정하는 얘한테 무작정 안된다고 하느냐?”는 이 업주는 “선불금은 안 갚아도 된다는 법 때문에 수술비로 빌려주는 돈도 법적으로는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빌려간 얘들은 반드시 갚는다. 여기도 어차피 사람 사는 곳 아니냐”고 말한다. 그 옆에 있던 한 업주는 “일하던 아가씨가 애인이 생겨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그러면 우리가 결혼식을 올려주기도 한다. 정부는 손등만 보지 말고 손의 앞뒤를 다 봤으면 한다”고 얘기한다.

이 즈음 술자리 바로 옆으로 승용차 한대가 와서 주차한다. 거기서 내린 사람은 이 지역 관할서인 전농지구대 사무소장인 문오준 경위. “사또 나리 행차했네”라며 업주들은 반갑게 문 경위를 술자리에 맞이한다.

문 경위 역시 특별한 해답은 없다. “이제 영업 그만해라” “법으로 딱 막아놨는데 어쩔 거냐?” “이거 말고 다른 대책을 세워라” 등등의 충고만 반복할 뿐. 이런 문 경위의 얘기에 한 할머니 업주가 단단히 화가 났다. “살 길이 있어야 그만하지. 정부에서 우리 빚만 다 갚아주면 절이라도 크게 한번 하고 여기를 뜬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 할머니 업주는 “우리 집은 3대째 여기서 업주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남은 건 6억원이나 되는 빚이 전부”라고 말한다.


- "잡혀가더라도 문 열겠다"

다른 업주들도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 사장은 “여기 업주들만 열명이 넘게 있는 데 한명 빼고는 모두 신용불량자”라면서 “은행권 빚은 물론이고 사채까지 안고 있어 떠나려야 떠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청량리 집창촌은 보증금이 1,000만원 정도에 권리금은 8,000만~9,000만원이나 돼 대부분 1억원이 넘는 가게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집창촌이 사라질 경우 이들은 1억원 정도의 돈을 고스란히 날려야 한다. 이렇게 업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결국 문 경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회 현실이 법을 앞서가게 돼 있다. 만약 법에 모순이 있다면 개정될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절대 가게 문을 열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고 떠났다.

하지만 업주들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면 다시 가게를 열 방침이다. “위축은 되겠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한 업주는 “잡혀가면 변호사 비용이다 뭐다 빚만 늘어날 뿐”이라며 한숨이다.

“악법도 법이니까 우선은 불 꺼놓고 영업은 중단했다”는 박 위원장은 “정부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우리는 다시 가게를 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업을 재개할 경우 경찰 단속을 피해갈 수 없다. 이 얘기에 박 위원장은 “우리는 모두 전과자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최하 별이 10개 이상인 무시무시한 사람들이다”라며 웃는다.

성매매 특별법의 발효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윤락녀들이 지하로 숨어드는 경우다. 업주를 통하지 않고 개별적인 성매매를 시도할 경우 단속이 어려운 점조직으로 변할 우려가 있고, ‘제 2의 유영철 사건’도 피할 수 없다.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할머니 업주가 해답을 전해줬다. “오늘 우리 애들한테 전화를 했어요. 당장 생활비로 10만원씩이라도 보내줄려고. 그랬더니 얘 한명이 단골손님한테 연락이 와서 집으로 불렀다고 그러대.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너희들은 그래도 먹고는 사는 구나.”

여성부에서 윤락녀가 150만명이라고 발표했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 김 사장은 “우리는 굶어도 괜찮다”면서 “청년 실업이 그렇게 사회문제라던데 150만명이나 되는 얘들은 어쩔 셈인가. 전부 ‘유영철 사건’ 같은 희생자를 만들 것인가”라며 격분했다.

술자리는 새벽2시가 다 되어 끝이 났다. 뭐 별다른 의미는 없는 자리였다. 업주들은 계속 하소연을 할 뿐이고 기자 역시 받아 적을 뿐이었다. 하염없이 소주잔만 주고받으며.

여전히 청량리 집창촌에 불은 꺼져 있었다. 한두 명씩 양복을 입은 손님들이 서성거렸지만 그 어디에도 이들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2004년 9월24일 새벽 2시 청량리 집창촌, 이 곳에는 업주, 윤락녀, 손님 그 누구도 갈 곳이 없었다.

조재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10-05 17:13


조재진 자유기고가 dicalazzi@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