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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2군] 버스 운전기사 이종두
"세상은 나만 잘났다고 살아지는게 아니었어요"
서른 후반의 명퇴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좌석버스를 운전하는 이종두(44)씨는 생활관이랄까 자신의 삶에서 체득한 인생관을 갖고 있다. 시발점이자 종점인 경기 수원의 경기대 후문 앞에서 서울의 광화문을 오가는 5500번 버스를 운전하는 이씨는 승객들에게 빠짐없이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한다.

출퇴근 시간 5500번의 초만원은 공포의 대상이다. 운이 좋아야 앉아갈 수 있고, 그나마 바른 자세로 서서 가는 것만도 다행이다. 이씨는 줄이어 올라오는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빠짐없이 인사하고 나이 드신 분들이 타고 내릴 때는 “천천히 타고 내리시라”는 말을 덧붙인다.

“보통 1시간 여, 차가 밀리는 월요일에는 1시간30분 이상을 서서 가 봐요. 출근하자마자 맥이 풀려 근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운전을 하면서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는 이씨는 출퇴근 시간의 고통은 불가피한 만큼 안전 운행을 위해 애쓴다고 했다.

“차가 멈출 때 승객들이 앞으로 쏠리고, 커브 길을 돌며 양 옆으로 몸이 쏠리는 것은 잘못된 운전 때문이지요. 달리다 설 때나 커브 길을 돌 때도 승객이 거의 느끼지 않도록 운전해야지요.”

이씨는 이런 운전 습관과 마음 가짐이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후 여러 직업과 일을 전전하고 장사를 하며 깨우친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 명퇴 후 새로운 인생서 많은 시행착오

15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1997년 명예 퇴직한 것은 밖에 나가 자신의 일을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SK케미컬 수원공장 원사생산 부서에서 일하던 이씨는 IMF 직전 회사가 앞당겨 시행한 구조조정 때 명퇴금을 덧붙여 받고 회사를 나왔다. 서른 일곱, 밖에 나가 열심히 또 성실히 일하면 지금보다 더 잘 살 자신이 있었다.

이씨는 살던 집 근처 수원 북문 쪽에 작은 의류가게를 냈다. 새벽에 동대문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 오면 아내는 가게에서 팔고, 이씨는 1톤 탑차에 의류들을 싣고 안성, 오산, 일산 등 수도권지역과 장이 서는 곳을 찾아 다니며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곧 이어 IMF가 본격화하며 의류가격은 폭락하고 게다가 소비가 위축돼 팔리지도 않았다. 1년도 버티지 못하고 9개월 만에 가게 문을 닫고 탑차도 처분했다. 6개월 가까이 가진 돈을 까먹으며 손을 놓고 있다 다시 취업을 택했다.

수원의 한 택배회사에 취직해 의왕시 부곡의 물류창고에서 물건을 찾아다 가정에 배달했다. 새벽부터 쌀자루 등을 메고 연립주택의 계단을 오르내리기 1년 여, 이씨는 생계를 꾸릴 한 푼이 아쉬웠지만 힘에 부치고 너무 힘들어 그만 두었다.

‘뭘 하며 사나…’3∼4개월을 쉬며 애를 태우던 이씨는 택시 운전을 하기위해 택시운전자격증을 따고 택시회사를 찾아가 면담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며 “먹고 살만 합니까”라고 묻는 이씨에게 주변 운전기사들은 “하던 일이 아니고 새로 시작하는 일이라면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했고, 이씨는 버스쪽으로 생각을 돌려 곧바로 운전학원에 등록, 1종 대형면허를 땄다. 2002년 마을버스를 운전하며 경력을 쌓았고 2003년 대원고속에 입사, 1년 여 수지 시내를 운행하는 500번 일반버스를 몰았다.

경기도와 서울 시계를 넘나드는 좌석버스로 승격한 지는 5개월 여. 하루 일하고 하루 쉬고, 한 달에 보름 가까이 일하고 월 270만원(상여금 400% 별도)을 받는 이씨는 이제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은 찾았다. 시내 버스와 택시마다 ‘운전기사 급구’라는 자체 구인광고를 창유리에 붙이고 다니는 게 흔하지만 근무 환경과 대우가 좋다는 이 회사에는 취업 대기자들이 밀려 있다.

- 안정 속에 날아든 아내의 고통

아직 신참이라 자기 차가 없이 남의 차를 번갈아 운전하는 스페어(보조)운전사지만 모처럼 안정된 자리를 잡은 이씨에게 뜻하지 않은 시련이 왔다. 남편이 벌지 않을 때 백화점 물건 진열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던 아내가 지난 8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을 거쳐 집에서 가료하는 동안 이씨는 간병을 위해 8월 한 달을 쉬었다. 요새도 이씨는 쉬는 날에는 혼자서 못 걷는 아내를 부축, 걷기 연습을 하고 기억력을 되찾기 위한 도우미 역할을 한다. 신문을 읽어주거나, 아내와 같이 기사를 읽고 아내에게 ‘내용을 이야기 해 보라’고 숙제를 낸다. 다행히 80% 정도 기억력을 되찾았다.

버스 운전 경력 총 2년 여. 이씨는 이제 버스를 운전하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내 차를 탈 손님인지 아닌지 안다고 했다. “버스가 다가가면 모두들 버스를 바라보지요. 그 중 내 차를 탈 사람은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사람이지요.”

출근 시간인 아침 6시30분∼8시 첫 정류장에서부터 좌석이 꽉 차고 서 있는 손님들로 출입문을 열 수 없는 형편에서 정류장을 그냥 통과해 미안해 했던 기억도 있다.

운전을 하며 겪는 어려움은….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통화하며 한 손으로 카드가 든 지갑을 들고 승차해 넘어지지 않을까 마음 졸이게 하는 승객도 있고, 큰 소리로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 준비 없이 승차 후 핸드백 등을 열어 카드나 현금을 찾는 승객, 늦은 시간 과음 후 구토하는 승객 등등.

차내 에어컨 가동을 둘러싼 마찰과 어려움도 있다고 했다. 강하게 틀어주기를 바라는 사람과 약하게나 아니면 꺼주기를 바라는 등 취향도 다르다. 현재 버스 에어컨시스템이 상ㆍ하 2단계로만 돼있어 ‘상’으로 하면 너무 춥고, ‘하’로 하면 너무 밋밋한 것도 문제라고 이씨는 지적했다. 승용차같이 4단계로 세분화하면 날씨와 기온에 맞게 조절할 수 있어 버스제작 회사가 참고해 개선해 주기를 바랐다.

운전하고 병석의 부인 대신 밥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중1과 초등4년 남매의 뒷바라지를 하는 이씨는 회사에서 분기별로 선정해 서돈 금반지를 부상으로 주는 ‘친절 기사’에도 뽑혔다. 두 아이 학원비 대랴, 안 보내는 축이지만 최소한의 기본은 해야겠고…. 이 씨는 40대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교육문제와 학원비 등 사교육비를 들며 여느 부모들처럼 한숨지었다.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는지…. 서른 일곱, 회사에서 명퇴할 때 제가 준비없이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으려고 나왔는데 하나 하나, 밑바닥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착각했어요. 명퇴금을 받았지만 돈만 있다고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의류장사를 한다면 물건구입, 원단식별, 유행디자인 등에 대한 안목이 필요하잖아요.

“제 경우 회사를 나와서 시작하려니 가장으로 생활비 만들어야지요, 일을 찾고 배우려니 다급해지고 그게 실수와 실패로 이어졌어요. 가게 문을 열어놓고 배우면 이미 늦고, 같은 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진다는 것을 체험했다”는 이씨는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장사를 하며 체험하고 반성했다는 이씨의 경험 하나 더.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좋은 물건을 싸게 팔거나 음식점이라면 맛이 있고 양이 많든지 뭐 특징과 기술이 있어야잖아요.”

- "전담버스 받으려면 열심히 일해야죠"

“어딜 가든 양심껏 최선을 다하면 인정을 받는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는 이씨의 소망은 짧게는 자기가 전담해 운전할 버스를 배정받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생활에 안 쪼들리고 좀 더 여유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다시 장사나 사업 쪽에 생각이 있을까. “앞으로 한 10년 더 버스 일을 해 아이들 가르치고 다음에는 자신이 자라고 부모님이 농사짓고 있는 춘천으로 내려가 살고 싶다”고 했다. 덧붙여 그 때도 벌이가 필요할 테니 개인택시를 하는 일도 생각 중이다.

“어서 오세요”“천천히 타시고 내리세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장사에서 느끼고 배운 경험을 버스를 운전하며 실천하고 사는 이씨.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이씨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 못지않게 시련 끝에 일궈낸 열매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입력시간 : 2004-10-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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