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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25시] 클럽<텍사스 문> 홍철규
치과의사의 화려한 이중생활
몽환적 멜로디로 유혹하는
압구정 사막의 기타리스트
가운 벗으면 라이브 클럽 사장, 허한 도시인에 쉼터 제공




가슴 속에 황폐한 사막 하나쯤 가지고 있다면 클럽 ‘텍사스 문’(texas moon)에 가보라. 서울 압구정동에 있지만,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쑥스럽기만 한 낡고 보잘 것 없는 이 작은 클럽은 어딘지 모르게 퍼시 애들론 감독의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닮았다.

트럭마저 그냥 지나치기 일쑤인 먼지 풀풀 날리는 도로변에 초라하게 서 있던 낡은 ‘바그다드 카페’를 기억하는가. ‘텍사스 문’은 서울 강남의 화려한 클럽 속에 사막처럼 존재하는 라이브 클럽이다. 저녁 8시가 되면 제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calling you’가 귓가에서 나른하게 울리고, 그 음악을 타고 하루의 피로를 여기에 와서 풀라는 유혹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비틀즈의 옐로 서브마린이 귀를 자극하고 라디오 헤드의 몽환적인 음악이 심장을 뛰게 만든다. 평일엔 덧없는 시간을 혼자 즐기기에 적합한 쓸쓸한 가게지만, 주말이 되면 전인권 밴드와 기타리스트 김광석, 손지연 같은 유명 뮤지션들의 무대로 변한다. ‘바그다드 카페’에 찾아온 손님 야스민의 특별한 이벤트 마술 쇼처럼 말이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의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은 더욱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꿈꾸듯 라이브 무대 속으로
클럽 ‘텍사스 문’의 주인 홍철규의 이중 생활은 저녁 6시 30분 그가 하얀 가운을 벗으면서부터 시작된다. 경기 성남에 있는 치과에서 흰 가운을 걸친 그의 인상은 차갑고 딱딱해 보이지만, 클럽에서 편안한 캐주얼로 바꾸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편안한 이웃이다.

치과 원장실 한 켠에는 그의 취미 생활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일반적인 치과 원장실을 생각하면 안 된다. ‘밀실’을 연상케 하는 그만의 무대, 기타와 키보드 등 그가 클럽을 운영하기 전에 시간을 아껴가며 연습했던 그만의 작은 라이브 무대가 원장실을 지키고 있다.

상상해 보라. 의사에게 유일한 휴식인 점심시간에 기타를 치고 건반을 누르고 있는 그의 모습을. 그러다 예약한 진료 시간이 되면 가운을 입고 아쉬운 듯 진료실로 향하는 뒷모습을.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는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뜻하지 않게 적성에도 맞지 않는 치대에 들어가면서부터 방황은 시작됐다. 치과의사이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 그 나마 클럽도 운영하고 밴드 활동도 해오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치과를 그만둘 생각만 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환자를 보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새벽 2시 클럽 끝나는 시간까지 있어야 하지만 아침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에게 일상은 생기로 가득한 법이다.

치과의사이자 클럽 주인인 그는 이중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작년 4월 25일 ‘텍사스 문’을 인수하기까지 그는 그저 라이브 클럽을 자주 찾는 단골 손님이었다. 치과 마지막 예약 손님을 치료하고 서둘러 차를 몰아 클럽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8시. 열 평 남짓한 작은 무대에서 밴드가 하나 둘 모일 때까지 혼자서 기타를 연주하곤 했다. 가끔 팝송을 부르고 건반을 누르기도 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기타리스트다.

특별히 고정된 밴드가 없었던 그 당시, 클럽을 찾는 사람들은 그처럼 라이브 클럽에서 연주를 즐겼던 마니아가 대부분이었다. 낮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엔 취미 생활 겸 피로를 풀기 위해 찾았다. 그러던 중 압구정동이 파티 중심의 클럽으로 바뀌자 1970~ 80년대 분위기를 고수해 오던 ‘텍사스 문’은 문을 닫을 위기에 빠졌다. 그는 8,000장이 넘는 레코드(LP)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작지만 좋아하는 악기가 있는 라이브 무대가 없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마침내 30년 동안 미루어 오던 결심을 내렸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 치대에 들어가 지금까지 방황하고 살았는데, 클럽 주인이 되면 더 이상 방황은 하지 않을 것 같았지요.”

제2의 인생을 열어준 클럽
그에게 ‘텍사스 문’은 제 2의 인생을 열게 해 준 은인이나 다름없다. 평생 한이었던 음악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자신만의 가게와 무대가 생겼기 때문에 더욱 좋다.

榴?가수 전인권과 막역한 사이다. 들국화 멤버 조덕환의 학교 후배이기도 한 그는 고대생이 주축인 고인돌(코리안 스톤즈)에서 리드 기타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인권이 들국화로 유명해지기 이전부터 알고 지냈고 들국화해체 이후에도 같이 앨범 작업을 했다. 전인권이 콘서트를 할 때마다 객원 기타리스트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음악이 좋아 틈만 나면 서울 삼청동 전인권 집 연습실에서 모여 연습했던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로 조건 없이 만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결성한 밴드였기에 그들은 잘 맞았다. 그렇기에 전인권은 특별한 일이 없는 금요일 밤이면 클럽 ‘텍사스 문’에 나타난다. 전인권 밴드의 ‘행진’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클럽이 그곳이다. 서둘러 예약해야 전인권을 들을 수 있다. 예약을 못한 손님들은 아쉽지만 클럽 입구나 계단에 서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전인권은 라이브가 끝나면 그 특유의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의사인 홍철규는 이 클럽 주인인데 천부적인 음악성을 가진 꼼꼼한 기타리스트예요. 나랑 친하고 참 착해요. 노래도 나보다 더 잘하고 기타도 잘 쳐요. 그러니까 여러분 많이 도와줘야 해요.” 그러면서 ‘걱정 말아요’를 부른다. 그는 장사에 밝지 못해 아직까지 치과에서 버는 수입으로 클럽을 운영하는 실정이다. 전인권이 금요일마다 클럽을 찾는 것도 그런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매주 금요일 밤 10시에 전인권 밴드 라이브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신인 뮤지션의 등용문 역할
‘텍사스 문’은 신인 뮤지션들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토요일마다 싱어송 라이터 손지연의 라이브 콘서트가 열린다. 뮤지션을 꿈꾸는 아마추어 밴드는 오디션을 통과하면 무대를 제공받는다. “텍사스 문에서 연습하고 유명해지면 그것처럼 기쁜 일도 없겠죠. 꿈은 이룰 수 있는 나이에 이루어야 행복한 거예요. 저처럼 늦게야 자기 할 일을 찾는 것보다 젊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후회가 없으니까요.” 젊은 뮤지션을 위한 지원도 계획하고 있다. 클럽의 바텐더나 홀 서빙 아르바이트생들도 기타나 드럼을 연주할 줄 안다. 음악이 좋아 모였기 때문이다.

커피 판매기가 고장 나서 커피를 팔지 않는, 없는 것이 더 많은 바그다드 카페처럼 클럽 ‘텍사스 문’ 또한 결핍된 것이 더 많아 찾게 되는, 한 마디로 묘하게 끌리는 곳이다.

이 클럽은 어쩌면 가식적이지 않고 위선을 떨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남은 클럽일지도 모른다. 삶의 권태와 허무와 허전함을 안고 낡지만 익숙한 클럽의 문을 여는 순간, 쓸쓸한 가게는 어느덧 작은 휴식처가 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곳 이예요.” 클럽 주인 홍철규는 아직 쑥스러운 듯 이렇게 클럽을 소개한다. (02-516-5291 http://cafe.daum.net/texasmoon)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


입력시간 : 2005-05-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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