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몸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성노동자연대 출범식 갖고 신분 보장 위한 대규모 집회노동조합 설립 가능성도

집창촌 성매매 여성들의 절규
"우리도 몸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
성노동자연대 출범식 갖고 신분 보장 위한 대규모 집회
노동조합 설립 가능성도


6월29일 서울 잠실 체조경기장 앞에서 한터여성종사자 연합 주최로 열린 '전국 성노동자연대 출범식'에 참석한 여성들이 생존권과 노동권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

전국 집창촌 성매매 여성 5,000여 명의 신분 상승은 가능할까. 6월 29일 오후 전국한터여성노동자연합(이하 한터)이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 앞(한얼광장)에서 성노동자연대 출범식을 갖고 정식 노동자의 신분을 보장 받기 위한 대정부 투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6월 29일을 ‘성 노동자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날 행동은 지난해 9월 시행된 성매매특별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집단 행동.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감지한 당국이 애초 계획됐던 체조경기장 대관을 돌연 취소하면서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행사가 이뤄졌다.

계획된 행사 시간은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3시간. ‘성 노동자의 날’ 선포식에 이어 집창촌 여성들의 삶을 다룬 퍼포먼스와 서문탁, 소찬휘, 캔, 겜블러, 한경일 등 초청가수 공연도 예정돼 있었지만, 대관 취소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행사는 1시간 만에 끝났다.

이날 오후 5시. 전국각지에서 일찌감치 상경한 성매매 여성들과 업주 등 관계자 1,200명(경찰 추산)은 체조경기장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화장실도 못 쓰게 하다니,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며 대관 취소는 차치하고 화장실도 못 쓰게 하는 데 대해 격앙돼 있었다. 경기장 안으로 들이닥칠 것을 염려한 경기장 관계자들이 일찌감치 출입문에 빗장을 단단히 질러 놓은 까닭이었다. 이따금씩 “지금이라도 문을 열어라”는 업주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기장 관계자들의 충돌로 험악한 분위기까지 연출됐다.

1,000여 명의 여성들 대정부 투쟁 신호탄
1,000여명의 성매매 여성과 업주들이 줄을 맞춰 앉은 가운데 어수선하던 행사장은 확성기와 앰프를 실은 이벤트 트럭의 장내 진입이 허용되고서야 정리되는 듯 했다. 주최측이 더 이상 행사진행을 미룰 수 없어, 인력으로 이동 가능한 소형 발전기와 앰프를 행사장으로 옮김기 시작하자 ‘마지노선’이 무너졌다고 판단한 공원측이 그제서야 차량 출입을 허용한 것이다.

아침에 한바탕 퍼붓던 장맛비는 이슬비로 변해 이따금씩 내려 날씨는 행사 진행에 큰 문제가 안 됐다. 단체로 맞춘 듯한 이들의 비옷은 바닥에서 피어 오르는 눅눅함을 차단하는 깔개로 쓰였다. 부채로 얼굴을 가리듯 신문으로 가린 여성들이 간혹 보일 뿐. 후텁지근한 날씨 탓인지 약속 복장이던 ‘모자와 마스크’를 제대로 갖춘 여성은 찾기 힘들었고, 참가자들의 표정은 생각했던 것 만큼 어둡지 않았다.

여느 여성들처럼 삼삼오오 모여 잡담하는 장면도 쉽게 목격됐다. ‘성 노동자 축제의 날’이라는 주최측의 말마따나 이 행사를 ‘축제’로 인식하는 듯 했다. 지루함을 달래줄 가수들의 공연이 불발한 탓인 듯, 더러는 소주와 과자 부스러기로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다.

성노동자의 날 선포식에 모인 성매매 여성과 업주들. 김주성 기자

시험 방송을 끝낸 마이크를 넘겨 받은 행사 진행자가 말문을 열었다. “품위를 유지하면서 즐거운 행사를 마련하려 했으나 권력자들의 방해로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입니까. 여자들도 ‘살 떨리게’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성노동자들, 가정에 충실하고, 자식들 사랑하면서 거짓없이, 순수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좌중에선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때부터 장내 분위기는 조금씩 달아 오르는 듯 했다.

평택, 천호동, 청량리, 미아리, 대구 등 전국 각지의 대표들로 구성된 성노동자연대준비위원회의 대표가 출범선언문을 낭독했다. “성노동자들도 엄연한 비정규직 노동자다. 반복되는 단속과 오명, 낙인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또박또박 읽어 뻔졀〈?목소리에서 흔들림은 없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의 요구는 성매매특별법 폐지.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에는 여성가족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여성 노동자를 죽이고 한국 사회의 정치 권력화 한 여성부 물러가라!” 힘찬 박수에 고무된 준비위 대표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실렸다. “여성계가 성매매특별법을 통해서 성노동자들을 음지로 몰아 넣어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게 하고, 우리를 ‘성매매 피해여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부는 인신매매를 지칭하는 ‘성매매 피해’를 ‘성노동’과 구분 지으라.”

이날 출범식에는 한터 회원만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성매매업소 업주들의 모임인 ‘한터성산업인연대’와 ‘집창촌 주변 상인 연합회’ 등 직간접적으로 성매매특별법의 영향을 받는 단체들의 회원들도 열을 지어 앉은 성매매 여성들 뒤에서 그때 그때 행사의 분위기를 증폭시켰다.

“업주와 성노동자의 요구를 정치권에 전달하기 위해 참석했다”는 한터성산업인연대 강현준(42) 사무국장은 “성매매특별법이 경제를 망친다는 아우성은 물론, 생활고를 비관, 자살한 이도 속출하고 있다”며 성매매특별법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날 전주서 상경한 ‘집창촌 주변 상인 연합회’ 이병용(51) 회장은 “특별법 이후 집창촌 주변 일반 상가들의 매출이 70%이상씩 감소했다”며 “대다수의 국민들이 효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특별법에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친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전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단체도 눈에 띄었다. 사회진보연대. 이들은 행사장 맨 앞에 자리를 잡고 “성매매 여성들에게 노동권을! 인간답게 살 권리를!” “성노동자도 인간이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성노동자들 스스로 삶을 선택할 권리를!” 등의 내용이 적힌 피킷으로 한터 입장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어 사회자로부터 ‘정신적 지주’로 소개 받은 이화여대 이성숙 교수가 단상에 서자 좌중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힘들게 시작했지만, 큰 변화 있을 것입니다. 힘 내십시오. 제가 여러 가지 형태로 지원하겠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2시간 분량의 공연이 취소돼 ‘썰렁’해진 행사장을 사회자가 기지를 발휘해 만든 자리였다. 이어 단상에 오른 진보연대 한 관계자는 “같은 여성이라 하더라도 성노동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그 차이를 토론으로 극복해야지, 일방적으로 몰고 간 것은 민주주의 답지 못하다”고 말했다.

행사가 시작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는 오후 6시 50분. 사회자의 클로징 멘트가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다음 또 만납시다.”

유례없는 성매매 여성들의 대규모 집회로 이날 이후 일각에서는 노동조합 설립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그들의 노동조합 설립은 가능할까. 지난 5월 이주노동자 설립신고가 ‘불법고용’을 이유로 반려된 사례를 감안하면 이들의 노조 설립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성노동자연대 이선희 고문은 “향후 각종 토론회 등에 참석해 우리의 주장을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일부 성매매 여성들의 ‘성노동자’로서의 생존권 요구는 인정할 수 없다”며, 성매매를 불법적 행위로 간주, 하반기에 전국 10곳의 집창촌을 대상으로 성매매 여성 자활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정민승 기자
사진=김주성 기자


입력시간 : 2005-07-06 18:42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