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프로포즈 하는 남자

[감성25시] 쇼호스트 이태수
매일 프로포즈 하는 남자

휴가철이 되면 유독 바쁜 사람들이 있다. 휴가 못 가는 사람들에겐 필요한 정보와 즐거움을 선사하고, 휴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겐 딱 맞는 상품을 골라 소개하는 사람들이다. 연예인처럼 리모콘만 돌리면 친절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들, 쇼 호스트들도 그 범주에 속한다.

앞 치마를 두르고 나와서 꽃게장을 손에 들고 쭉 짜 먹으며 군침 도는 대사를 치는 이 남자, “이래도 안 사실 겁니까”라고 묻는 쇼 호스트 이태수(인포머셜 프리랜서)씨는 휴가 없는 사람 중 한 명이며 동시에 홈쇼핑 마니아다.

물건 파는 일은 '중독'같은 것

“맞선을 보러 가는 기분으로 시작하고, 운명의 상대를 만난 기분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태수씨는 매일 프로포즈하는 남자다.

그에게 고객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언제나 늘 지금 이 순간 놓치면 평생 후회할 운명의 상대다. 그는 고객의 마음을 사기 위해 때론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그것을 쇼 호스트의 매력 1순위로 꼽는다.

“짧은 시간 카메라 앞에서 나를 보고 있는 어느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좋은 상품 하나 소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 반응이 좋으면 희열을 느끼고 반대라면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극제가 됩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연습을 하게 만들죠. 물건 파는 직업, 이거 중독 같은 거예요.”

쇼 호스트는 언어의 연금술사에 연기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임기응변은 필수다. 한번은 세트가 무너진 일도 있었다. 또 농수산 쇼핑 몰 쇼 호스트로 있을 때 게스트로 출연한 농부가 휴대전화를 방송 도중 켜 놓고 태연하게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익지 않은 음식을 맛있게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주문 전화가 너무 뜨거워 세트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모든 전화가 마비 상태여서 게스트를 통해 주문전화가 오나 보네요”라며 임기 응변을 발휘하기도 했다. 진땀 나는 일들이 지금은 에피소드로 가끔 떠올라 웃음을 짓게 한다.

쇼 호스트는 방송과 마케팅이 결합된 직업이라 철저한 자기 관리와 계발이 필수적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그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마냥 괴롭고 힘든 직업은 아니다.

일 한만큼 보상이 있고, 나이 제한이 없어 시청자가 찾아줄 때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이 쇼 호스트다. 그는 몸무게 10㎏을 감량할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피부 마사지는 기본이고, 이젠 출연할 때 입는 의상 고르는 안목이나 헤어 스타일, 메이크업까지 전문가가 다 됐을 정도다. 게다가 NG가 있을 수 없는 생방송이다. 대본이 없기에 유창한 말솜씨가 추가로 요구된다.

그는 사교적이고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오랜 방송생활이 몸에 밴 탓이기도 하지만, 쇼 호스트로 활동하면서 성격이 더욱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홈쇼핑 세트장에 서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그에게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이야기하는 도중 어느새 자기 쪽으로 마음이 살짝 기울게 만드는 말 솜씨 탓이다.

“무조건 사라, 사라, 떠들면 안 돼요. 상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죠. 쇼 호스트가 그 상품을 사용해 보고 직접 체험하고, 느끼고, 장ㆍ단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야 하죠. 상품을 직접 만져보지 못하는 시청자의 가려운 곳을 대신 긁어주는 대리인이니까요.”

그래서 상품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은 기본이다. 상품의 단점까지도 이야기 할 줄 하는 쇼 호스트야 말로 프로다. 쇼 호스트의 이미지로 인해 상품에 대한 호감도가 생겨 매출이 극대화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쇼 호스트는 그의 이미지를 시청자에게 판매하는 거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개그맨 같다. 그가 등장하는 홈쇼핑 채널은 언제나 쇼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찌 보면 너무 액션이 많다 싶을 만큼 순간 순간 무대 위의 연기자로 돌변한다.

표정이나 동작 또한 쇼에 나온 사람의 그것이다. “홈쇼핑도 일종의 쇼라고 봅니다. 시청자가 보는 것이기에 재미가 있고, 웃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미있으면 일단 무언가 하고 계속 보잖아요. 다른 채널로 돌릴 틈을 주면 안 되는 게 우리의 전략이죠.”

철저한 자기관리, 프로정신으로무장

힘든 적도 많았다. 짧으면 한 시간, 길면 세 시간 생방송으로 쉴 틈 없이 진행해야 하기에 체력 소모가 크다. 특집 방송일 경우 7시간 동안 생방송을 한 적도 있었다.

즉시 매출이 나오고 실적이 평가되기에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넘어서 쇼 호스트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쇼 호스트 쇼핑 채널에 중독 되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진단한다. “저 또한 홈쇼핑 마니아예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미국 비올라대학 (Biola University)에서 공부하던 중 우연히 TV 홈쇼핑(QVC)을 봤다. 쇼 호스트가 화면을 통해 수많은 상품을 판매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국내에 케이블 TV가 개국하기 전이었다. 단순한 사실과 정보 전달 역할을 하는 앵커와는 달리 화려한 말솜씨로 시청자를 설득하는 모습에 프로다운 직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TV라는 매체와 상품을 통해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유학시절 홈쇼핑 채널을 즐겨봤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PD로 입사한 그에게 쇼 호스트란 직업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케이블 TV 개국과 동시에 홈쇼핑 전문 채널과 쇼 호스트란 직업이 생겨날 무렵이었다.

쇼 호스트란 직업이 없던 시절, 방송사에서 쇼 호스트를 뽑는다는 광고가 붙었다. 지나가던 방송사 간부가 “말 잘하고 인상 좋으니까 한번 카메라 테스트 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늘 카메라 뒤에 서 있던 그는 이상하게 카메라 테스트가 낯설지가 않았고, PD면서 동시에 쇼 호스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저에게 쇼맨십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에요. PD보다 쇼 호스트가 맘에 들더라구요.”그러면서 시작한지 벌써 10년째다. “이젠 공중파 쇼 프로그램처럼 홈쇼핑 또한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정착해 나가고 있어요.

외국의 홈쇼핑은 제가 유학하던 시절 이미 마니아(고정 팬)까지 있었는데, 이젠 우리도 그 정도까지 된 것 같아요. 홈 쇼핑업체 들이 계속 생겨나기에 쇼 호스트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늘어날 거구요.”

자신이 소개할 상품을 직접 선택하기도 하고, 소개할 상품에 대한 사전연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산업자를 직접 만나 앞으로의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도 적지 않다.

“쇼 호스트 세계에 NG는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죠. 늘 긴장의 연속이지만 결국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죠. No Good 인생을 사십니까? 쇼 호스트와 함께 Very Good 인생을 살아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유혜성


입력시간 : 2005-10-06 18:36


유혜성 comety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