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관리·이미지 메이킹 늘어,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남학생 취업전선 24시] "외모도 경쟁력" 화장대 앞에 앉다
피부관리·이미지 메이킹 늘어,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이기훈(가명ㆍ28)씨는 최근 동네 미장원 ‘누나’로부터 메이커업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남에게 화장을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화장을 위해서다. 서울에서 나고 줄곧 자랐지만, ‘도회지 사람’으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검은 피부, 한눈에도 확 들어오는 여드름 자국 등 피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최근 S사 공채에서 서류, 필기, 적성검사를 통과한 뒤 면접을 남겨 놓고 메이커업을 감행하기로 했다.

거의 모든 취업 박람회장에 등장하는 이미지 메이킹 코너에서 보고 들은 것들과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의 일치된 ‘증언’도 한몫 했다.

“세안 후 스킨 로션을 바르고, 때에 따라서는 선블락을 한 뒤에 팩트나 스킨커버로 여드름 자국이 옅어질 때까지 톡톡 두들기면 감쪽같습니다.”

그는 화장 한번으로 사람이 확 달라 보인다며 다음 ‘과외’가 기다려진다고 했다. 단지 면접 때문이라면 당일 미장원에서 메이크업을 하고 시험장으로 향해도 될 것이어서 굳이 ‘과외’까지 받아야 하는 이유를 묻자 땀이 많은 체질이라 수시로 고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파운데이션이나 컬러 로션을 바르는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화장한 티가 너무 나 역효과를 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 졸업한 뒤로 취업전쟁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정원기(가명ㆍ27)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의 자취방에는 샘플 화장품들이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화장품 판촉 사원들로부터 하나 둘 받은 것들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올 겨울을 무난히 넘기고도 남을 양의 스킨과 로션에서부터 미백 효과에다 주근깨ㆍ주름을 제거하고 피지를 컨트롤 한다는 기능성 엣센스, 콧등의 피지를 뽑아낸다는 코팩, 피부결을 정돈해준다는 마스크 팩, 각질 제거용 스크럽 등 여느 여학생의 화장대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언젠가는 사용할 생각으로 받아 놓은 것들이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그였다. 그러다가 모 은행 면접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뒤 그 ‘화장대’로 향하는 눈빛이 달라졌다.

긴 자취 생활과 늦여드름으로 거칠어진 얼굴과 평범한 외모가 면접관들의 시선을 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질문도 덜 받았으며, 결국 경쟁자들에게 뒤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취업박람회라는 박람회는 모두 찾아 다니면서 ‘이미지 메이킹’ 코너의 메이크업 ‘마루타’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열렬한 모델로 활약한 대가로 그는 피부 요철을 메우는 컬러로션과 눈썹을 또렷하게 하는 에보니 펜슬을 얻었다.

채용에서 출신학교, 학점, 토익 등의 비중이 낮아지는 대신 면접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처럼 찍고 바르고 두들기느라 분주한 남학생들이 늘고 있다.

취업대란이 낳은 새로운 풍경이다. 화장 뿐만 아니다. 지난 여름 방학 때에는 20년 전의 피부로 되돌려 준다는 박피수술이 인기를 끌었고, 여성들의 겨드랑이나 팔, 다리 등에 시술되던 제모 수술이 남학생들의 인중, 구렛나루에도 행해지고 있다. 피부 관리를 받고 네일 숍을 찾는 젊은 남성들의 이야기는 이미 구문이다.

코디네이션, 표정, 자세, 말하는 요령, 걸음걸이 등 한 사람에게서 우러나는 모든 이미지를 총제적으로 관리하는 ‘이미지 메이킹’의 하나로 행해지는 것이 화장이지만, 유독 남자들의 화장이 최근 부각되고 있다.

화장품 제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남성용 화장품을 쏟아내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수요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고, 취업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화장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음을 쉬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는 전 세계 남성 화장품들만 한 자리에 모은 점포가 등장했고, 720여 종의 전체 화장품 중 남성용이 15%를 차지할 정도로 남성용 화장품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 직원은 “막무가내로 ‘면접용 화장품’을 찾는 젊은 남성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같은 남성 화장품의 인기는 월드컵이 있었던 2002년부터 불기 시작한 꽃미남, 메트로 섹슈얼 열풍의 영향으로 매년 7%이상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의 규모는 전체 화장품 시장 규모 5조원 중 약 7%에 해당한다.

채용박람회 때마다 ‘이미지 메이킹’ 코너를 열어 취업준비생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채용포털 커리어(career.co.kr)의 신길자 대리는 “남성의 외모도 하나의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화장과 적절한 수준의 외모 가꾸기는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며 “이미 각 포털에는 수십 개의 관련 커뮤니티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이 같은 분위기는 당분간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 인력팀 이윤석 과장

"내실없는 외모는 사상누각에 물과"

많은 취업준비 남학생들이 화장, 성형수술 등을 통해 아름다워지기 위해 애쓰는 현상을 기업의 채용담당자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싸이월드, 네이트온 등의 서비스로 유명한 SK커뮤니케이션즈의 인력팀 이윤석 과장으로부터 여기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신문으로 치면 머리기사가 실리는 이력서의 왼쪽 상단에 사진을 붙이도록 한 이유를 아십니까. 첫인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군대에서 인사 일을 본 것을 시작으로 여러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거친 이 과장은 첫인상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첫인상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가식이 없어야 합니다. 첫인상은 말 그대로 ‘첫’인상일 뿐이고, 그 인상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기대했던 것들을 면접에서 느낄 수 없다면, 그 꾸며진 첫인상은 더 큰 실망을 낳습니다.” 내실 없는 외모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 과장은 “면접에서 중요시 되는 부분은 외모보다는 논리적인 언변”이라며 “진지하고 맑은 눈빛을 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장황하지 않게 질문에 답한다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지원하는 분야의 용어를 알아두면 면접에서는 금상첨화가 된다고 했다.

군대서부터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봐왔다는 이 과장은 예비 취업 준비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사람의 인상은 3년을 주기로 변한다고 합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과거 3년 동안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고나 행동방식의 긍정적인 면을 꾸준히 부각시켜 나간다면 좋은 인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시험에서는 ‘벼락치기’ 공부가 통할지 몰라도, 면접에서의 ‘급조한 인상’은 쉬 들통난다는 애기를 그렇게 돌려서 했다.


정민승기자


입력시간 : 2005-10-11 19:33


정민승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