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구 할아버지의 '라면 사랑'

32년째 하루 세끼 '라면식사'

라면이 국내에 들어 온 지 40여년. 식사대용품으로 출발한 라면은 이제 ‘주식(主食)’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수많은 라면 동호회가 생겨나고 마니아들은 “하루라도 라면을 먹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다”고 말한다.

그런 가운데 32년 간 하루 세 끼를 라면으로만 생활해 온 인물이 있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박병구(77) 할아버지가 그 주인공.

“내가 올해로 일흔일곱이야. 마흔다섯 살 때부터 하루 세 끼 라면만 먹었으니까 32년째네.”하루에 라면 3봉지만 먹었다 해도 지금까지 3만5,040봉에 달하는 양이다.

박씨가 이처럼 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은 언뜻 짐작하듯 ‘가난’ 때문이 아니다. 박씨의 ‘라면 사랑’은 오래 앓아온 지병에서 시작됐다.

“마흔 살 무렵에 병을 앓았어.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소화돼 장으로 내려가 배설돼야 하는데, 수도관에 이물이 끼어 물이 내려가지 않는 것처럼 장이 좁아져 음식물이 내려가지 못하고 토하기 일쑤였지.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니 장협착증이라면서 수술을 하자고 하데. 수술을 한 후 밥을 먹어봤지만 역시 속이 부대껴서 먹을 수가 없었어. 밥뿐 아니야.

다른 음식도 다 마찬가지였어. 그러던 어느 날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라면을 먹었는데 놀랍게도 속이 편하더란 말야.

그래서 또 라면을 먹었는데 역시 편안했어. 그 이후로는 밥 대신 라면만 먹고 있지.” 박씨에게 라면은 일종의 ‘특효약’인 셈이다.

32년간 라면으로 연명했다면 자연스럽게 ‘건강’이 궁금해 진다. 인스턴트 음식의 대명사 격인 라면으로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될 리 없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라면이 곧 밥이며 약인 박씨에게 그런 짐작은 빗나갔다. 겉보기에도 건강해보이고 80세를 바라보는 요즘도 농사일을 거뜬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아픈 이후로는 지금껏 병원 한 번 안 가고 살았어. 다른 사람들이 라면만 먹고 어떻게 사냐고 하지만 라면만 먹고도 잘 사는걸 뭐. 요즘 들어선 힘든 일하면 조금 피곤한데 그거야 나이 탓이지 라면 탓은 아니지.”

하루 열량으로 충분, 건강에도 '이상 무'

사내면 보건지소 관계자 역시 박씨의 건강에 별다른 이상 증세가 없다고 말한다. 그 나이에 흔히 나타나는 고혈압 증세도 없는 등 전반적으로 양호하다는 것.

라면이 하루 필요한 열량을 공급해주고 김치나 야채와 함께 먹으면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공급되므로 영양 면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자꾸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인데 박씨는 다른 음식에 손을 댄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다른 것도 가끔은 먹지만 라면 먹으면 다른 음식 생각은 별로 없어. 내가 라면만 먹는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아니까 내가 가면 그 집에서 나 먹으라고 으레 라면을 끓여줘.”

박씨는 라면 중에서도 농심의 ‘안성탕면’만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다른 라면도 먹어 봤지만 도무지 입에 맞지 않아.”박씨의 라면 사랑이 특별한 만큼 제조사의 ‘특등 고객’에 대한 대우 역시 각별하다. 박씨가 한 달에 3박스씩 1년 간 먹는 36박스 전량을 공급해 주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10-25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