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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 맞은 占집, 역술 소품도 진화
전통 미아리 역술관 쇠퇴하고 강남·신촌 '역술 백화점' 등 북적
육효, 타로, 수정구슬 등 소품 신세대화… 연간 시장규모 2조원



“새해는 운수 대통일세!” 점(占)을 믿든, 안 믿든, 정초가 되면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 아닐까. 해마다 이맘때면 점집 문턱이 닳는다.

불황이 깊어질수록 점집은 호황을 누린다. 점술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상담 창구가 된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www.saramin.co.kr 대표 이정근)이 최근 직장인 1,433명을 대상으로 “점에 대해 얼마나 믿으십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직장인 2명 중 1명은 점을 믿지는 않지만 심리적으로 안심이 된다(48.2%)고 답했다. 열 명 중 세 명은 새해 운세를 보기 위해 점집을 방문할 계획(28.5%)이라고 했다.

점을 보고 사주를 따지는 것은 비단 구세대의 낡은 미신은 아니다. 첨단 디지털 시대에 맞게 점도 진화한다. 디지털 세대들에게도 역학은 매력적인 유희의 도구다. 운세 좋다는 말에 원기를 회복하고, 혹 나쁘다는 일은 삼가며, 삶의 활력소를 찾는다.

점술업이 연간 2조원 규모의 시장을 가진 거대 비즈니스로 발돋움한 지금, 점집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음산한 뒷골목의 한옥 판잣집에 내걸렸던 미아리 ‘철학관’은 쇠퇴하고 첨단 컴퓨터 시스템과 현대적 점술 도구를 내세운 강남, 신촌, 종로 등의 ‘사주까페’, ‘역술 백화점’ 이 지존 자리를 꿰찼다.

강남 일대에는 편하고 쉽게 점을 볼 수 있는 ‘사주 까페가’ 많다. ‘역술밸리’라고까지 불리는 신개념 점집의 선두주자인 압구정동 ‘사주까페’에서는 복채 1만~2만원에 사주와 토정비결, 궁합을 봐준다. 1989년 문을 연 원조 사주까페로 꼽히는 ‘사주공간’에 들어섰더니 한쪽 테이블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녀가 눈에 띈다. 수학능력 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 이모(18·서울 관악구 봉천동) 양과 어머니는 “진학 운을 잘 본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입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며 “내일이 대학 원서 접수일이지만 어느 곳에 원서를 넣어야 좋을지 몰라 답답했는데 점괘가 잘 풀어준 것 같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기자 일행 자리로 온 역술인 정화 씨는 “무엇이 궁금해서 왔냐”고 묻는다. 그리고 통에 담긴 길고 얇은 대나무 48개 중에서 6개를 뽑으라고 한다. 육효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사안을 하나 콕 집어 물어보면, 사안의 성사 여부에서, 사건의 발생 일시, 주의할 점까지 세세한 답변을 준다. “영리해. 새로운 곳에 잘 적응해. 2월 6일쯤 다니겠어. 단 발목이 약해 잘 삘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돼.”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육효’ 강의를 하고 있다는 그는 “인생은 점의 연속, 곧 선택의 연속”이라며 “생활의 지혜를 얻는 차원에서 일반인들도 점을 배워두면 인생에 좋은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20여 개의 테이블이 놓인 이 까페는 직장인이 퇴근하거나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 6~7시 이후 저녁 시간이 되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점장 박지혜 씨는 “역술인 일곱 분 중 하루 세 분씩 나와 점을 봐주시는데 보통 한 분당 30~40명의 고객이 찾아온다”며 “용하다고 소문난 선생님의 경우 2월 말까지 예약이 잡혀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곳의 복채는 1만1,000원. 음료값은 따로 내야 한다.

사주까페를 나와 이번에 온갖 종류의 동서양 역술을 쇼핑을 하듯 골라서 할 수 있다는 압구정 현대로데오 상가 1층에 위치한 점집촌 ‘점술占타롯’을 찾았다.

입구는 각종 신문 기사와 방송 인터뷰 장면으로 도배돼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통유리로 둘러싸인 내부에는 현대식의 길다란 탁자 위에 음료가 놓여 있어 언뜻 보아서는 커피 전문점으로 착각할 정도다. 옆으로 놓인 수정구슬, 육효, 타로카드 등의 역술 소품 등이 신세대 점집임을 알게 한다.

매장 안 독립된 세 개의 별실에서는 상담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교수가 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한다는 20대 중반의 여성, 해외 체류 중 잠시 들렀다는 치과 의사와 어머니 등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외국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점술占타롯’의 역술인 김영선 씨는 “압구정은 풍수로 봐서 해외 운과 여성 운이 강한 지점이라 유학 등의 교육 상담이 잇따른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역 특성상 상담은 ‘부적’을 쓰고, ‘굿’을 하는 토속적 분위기가 아니라, 고민을 주고 받는 카운셀러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앞으로의 재물복이 있겠냐”고 묻자 사주풀이와 더불어 세 장의 카드를 뽑으라 한다. 젊은 세대에게 보편적인 타로카드다. 어두운 밤에 동물이 짖는 모습, 화살이 꽂힌 심장 모양,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란 동전 같은 원이 무수히 만들어지고 있는 듯한 카드 세 장이 나왔다. “밤과 하트에 비수가 꽂힌 카드는 그간 답답한 일이 많았다는 것을 뜻해요. 하지만 앞으로 좋네요. 미래에는 계속 재물이 만들어지고 있는 형상이에요.” 타로카드는 게임을 하듯 점을 보는 신세대들이 요즘 가장 선호하는 점술 도구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 영매 오다매(우피 골드버그)가 쓰던 수정구슬을 이용한 점도 인기가 있다. 기를 증폭시키는 물질로 알려진 수정구를 감싸듯이 손을 모으면 역술인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을 얘기해준다.

“기운이 약하다며 심장이 좋지 않다”고 풀이했다. “사주가 아무리 좋아도 기운이 약하면 일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이처럼 이곳에서는 개인의 상황에 따라 동양의 사주뿐 아니라 서양의 타로카드, 구슬점 등을 ‘맞춤형’으로 골라 선택한다. 운세 상담은 물론이고 기를 북돋워주는 운동법과 개인의 운과 맞는 명의까지 추천해주는 이곳은 복채가 사주까페에 비해 3~5배나 비싸지만 20, 30대 젊은이들에서 40,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점 보러 오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돈’이다. 질문은 막연한 미래보다는 ‘당면한 현실 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몇 세쯤이면 재물 운이 따를까요?”라고 묻는 대신 서너 곳의 부동산을 물색해 와 “어떤 곳을 사면 얼마나 돈을 벌겠냐”라고 묻는 게 대부분이다.

점집의 영원한 단골 화두인 이성 문제에 대한 질문도 애정보다는 “어떤 사람이 내게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주겠느냐”로 바뀌었을 정도로 현실적이 됐다. ‘불륜’이나 ‘다수 애인’에 대한 상담은 더 이상 부끄러운 고민도 아니다. 한 역술인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혀를 찼다.

“애인을 데리고 와서 전 애인과의 궁합을 봐도 같이 온 남자는 아무 말도 못해.” 이성 관계의 주도권이 여성에게 확 기울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쌍춘년과 황금돼지해가 이어지며 결혼과 임신에 대한 질문도 많다. 이에 대해선 역술인들은 하나같이 “누구에게나 좋은 때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아무리 길일이라 해도 그날 복을 받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는 사람이 있고, 외환위기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돈 버는 사람이 나오는 이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술인들이 보는 새해 우리나라의 운세는 뭘까.

‘현도역리원’의 역술인 현도 씨는 “정해년은 불이 추위를 녹이는 형상이므로 어려움이 완화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예언의 집’ 역술인 김경린 씨는 “국민들을 편안하게 할 기운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돼 나라가 안정을 찾아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한 역술인은 요즘 포용심이 적은 국민 정서가 이러한 복을 빠져 나가게 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점술占타롯’의 김영선 씨는 “나라 운에는 복이 어려있지만, 고아수출과 남북통일에 대한 무관심 등 국민의 냉담한 정서가 자칫 복을 새나가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참된 복은 바른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이러한 풀이를 믿고, 새해에는 복 받을 일을 많이 실천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입력시간 : 2006/12/27 16:25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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