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재혼… 달라진 풍속도'공주과' 여성은 찬밥… 자녀 딸려 있어도 크게 문제 안 삼아

중매 전문 클럽 '바즐'이 마련한 재혼 희망자들의 만남 행사
새해 들어 처음 맞는 목요일인 4일 오후 7시께, 비교적 이른 저녁 시간임에도 서울 양재동의 한 클럽에는 50, 60대의 중년 남녀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국내 유일의 재혼중매 전문 클럽 ‘바즐’.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녀의 얼굴에서는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묻어났다.

서울 강남에서 개인사업을 한다는 김모(53ㆍ여) 씨. 그는 얼마 전 친구 소개로 재혼중매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이혼 후 자식만 바라보고 살아오다 최근 딸의 결혼 이후 밀려오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다. “나이가 많아 재혼 상대자를 찾기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아요. 1:1 미팅 전 (재혼시장)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클럽에 들렀는데 이렇게 재혼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죠.”

김 씨처럼 재혼을 원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재혼에 대한 보수적인 편견이 점차 사라지면서 재혼의 대중화 시대를 맞고 있다. 통계청의 혼인·이혼 관련 통계를 보면 재혼커플(재혼자와 초혼자 커플 포함) 비율은 1995년 13.4%에서 2005년 25.2%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전체 결혼 커플 4쌍 중 1쌍이 재혼 커플이다.

재혼 희망자들이 급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재혼 풍속도도 달라지고 있다. 재혼중매 업계에 따르면, 외적인 조건에 덜 민감하면서 포용력이 큰 재혼녀와의 결혼을 원하는 초혼남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인생은 60부터’라며 황혼에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정회원 수만 2만여 명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재혼 중매 회사 ‘행복출발’ (www.hbcb.co.kr)의 상담팀 매니저 한정희 씨, 윤채화 씨, 홍보팀 김달섭 씨 등 3인을 만나 달라진 결혼 풍속도를 들었다.

남성 외모도 '이왕이면 다홍치마'

남성은 경제력, 여성은 미모를 갖춰야 1등 배우감으로 꼽히는 풍토는 예나 지금이나 불변. 그러나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하면서 남성들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외모는 필수 요구 사항이 되고 있다. ‘남자가 뭘 거울을 봐’ 하며 외모 가꾸기에 소홀하다가는 재혼 시장에서 찬밥 대접을 받기 일쑤다.

뚱뚱한 ‘몸꽝男’은 여성들이 꼽는 최악의 재혼 상대다. 기름기 흐르는 얼굴, 비어져 나온 코털, 배 위까지 올라온 바지 등은 여성들이 싫어하는 비호감 외모의 상징이다.

반면, 여성이라고 미모만 갖추면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얼굴만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 말은 재혼 시장에선 통하지 않는다. ‘공주’는 외로운 법. 남성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요주의 대상이다. 대신 과거 남성들에게 기피 대상이던 ‘잘난 여성’들이 요즘에는 오히려 뜨는 추세다.

커플 매니저 한정희 씨는 “여자를 한 수 아래로 두기보단 윈윈 상대로 여기는 지혜로운 남성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속 있는 '투잡족', 전문직보다 선호

초혼에서 남성의 직업과 집안의 재력을 중시한다면, 재혼에서는 남성의 재산과 능력이 우선시된다. 초혼시장에서 비교적 인기가 없는 사업가나 자영업자, 부동산 임대업자 등이 재혼시장에서는 괜찮은 신랑감으로 꼽힌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무너지면서 번듯한 직함보다 실속 있는 ‘투잡족’이 선호되는 것도 최근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30대 중반의 학원 강사 C씨는 인터넷에서 쇼핑몰을 운영하는 투잡족이다. C씨는 이른바 ‘사’자 직업인이 아니지만 ‘노력형 생활인’으로 여성 회원들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받고 있다. 이런 남성들은 경기 불황 시대에 새롭게 뜨는 킹카다.  커플매니저 윤채화 씨는 “C씨는 전문직 종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노블레스 회원’으로 대접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 배우자와 정반대 스타일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만약 전 배우자가 술을 즐겼다면 재혼 상대자는 기본적으로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며, 신용불량자였다면 경제력이 있는 남성이어야 한다. 고향, 종교, 혈액형과 띠도 같으면 만나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 이건 거의 묻지마 수준. 심지어 전 배우자의 외모가 추했다면 ‘못 생겨도 외도하더라. 차라리 잘 생긴 남자를 만나는 게 낫다’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고.

나이의 격차에 관해서는 매우 관대한 편. 초혼에서 띠동갑 결혼을 하면 ‘도둑놈’ 소릴 듣지만, 재혼에선 상당히 흔한 사례. 단, 반드시 남성이 연상이어야 한다. 요즘 사회적으로 연상녀ㆍ연하남 커플이 유행한다지만 재혼에서는 예외다. 입으로는 괜찮다고 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없다는 게 커플 매니저들의 체험담이다.

'무자녀 남 + 유자녀 여' 늘어

초혼 대상자가 재혼자를 희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통계청이 발표한 ‘200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05년 결혼한 부부 중 초혼남+재혼녀 부부 비중은 6.4%로 전년(6.1%)보다 소폭 높아졌다. 1990년(2.3%)에 비하면 무려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재혼남+초혼녀’(4.1%) 비율을 앞질렀다. ‘행복출발’의 경우 대략 전체 남성 회원 10명 중 1명이 총각 회원이다.경제력이나 학벌 등의 ‘스펙’이 미혼 여성들에게 어필하기에 부족하다면 재혼 여성들에게 눈길을 돌려 보다 편하게 만나고 싶다는 것.

‘자녀의 유무’라는 재혼에서의 절대적 평가 기준도 무너지고 있다.불과 2~3년 전만 해도 무자녀 남성이 유자녀 여성과 연결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방 여성이 좋다면 ‘아이는 악세서리가 아니냐’ 정도로 남성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삼혼, 사혼 회원이 생기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지난해만 해도 삼혼 이상은 재혼 중매회사 회원 가입조차 거절당했지만,최근 1%미만의 소폭이나마 재혼 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상태다.

60대의 황혼 재혼에 대한 시선도 너그러워졌다.지난해 봄 60대 초반의 A(남)씨와 50대 초반의 B(여)는 만난 지 3개월 만에 초고속 결혼에 골인했다. “첫눈에 반해 결혼한다는 것이 꼭 초혼의 젊은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재혼 중매 회사 관계자들도 놀라워 했다고.

이처럼 재혼 문화가 급변하면서 시장 규모도 비약적인 성장세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전체 결혼 정보업체 시장 700억 중 재혼 시장은 대략 25%로 추정되는 170억~180억 규모로 늘었다. ‘행복출발’의 경우 지난해 2월 탤런트 출신 김영란 대표 취임 이후 전년 대비 2배 가까운 급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재혼을 쉬쉬하던 시대는 지났다.그러나 달라지고 있는 사회적 시선에 비해 재혼 대상자 본인의 시각 변화는 오히려 더딘 편이다.김영란 대표는 “재혼을 과거의 보수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행복 추구를 위한 당당한 선택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행복출발'이 제안하는 재혼 성공 4계명

▲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 결혼하라

결혼은 남녀가 만나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고 나아가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가정을 꾸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 만남은 쉽게, 결정은 어렵게 하라

남녀의 만남은 시작보다 마무리가 훨씬 신중해야 한다. 재혼에 성공하려면 만남의 시작은 조금 편하고 가볍게 하되 결정의 순간에는 좀 더 꼼꼼히 살펴야 한다.

▲ '조건' 꼭 따지되 최소화하라

결혼시 조건은 무시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우선 자신이 상대에게 원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한번 곰곰이 따져보라. 대신 조건은 2가지 이상 고집하면 안 된다.

▲ 자녀가 반대하면 재혼을 늦춰라

자녀가 별 문제없이 동의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럴 때 자녀 문제는 조급하게 접근하지 않는 게 좋다. 만약 자녀가 반대하면 연애만 하면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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