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유혹하는 '유희왕 게임'… 상대방 제압할 확장팩 카드 수만원에 판매

유희왕 하는 아이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유희왕 오피셜 카드(이하 유희왕)’게임이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유희왕’ 는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인 <유희왕>의 캐릭터를 본떠 만든 카드 게임이다. 게임은 한 사람당 40~50장 정도의 카드를 준비한 뒤 서로 마주 앉아 카드를 꺼내며 대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평범한 소년 유희가 카드 게임을 하며 나쁜 악당들을 무찌르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만화 줄거리를 실제 카드 게임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보통 8,000점의 점수에서 시작해, 카드를 서로 펼쳐 보이면서 카드에 적혀진 점수나 규칙에 따라 상대방을 먼저 0점으로 만들면 이기게 된다.

이미 방송매체를 통해 만화 주인공 유희의 모험이 아이들에게 깊이 인지돼 있는 상태에서 ‘유희왕’게임은 아이들의 모방 심리를 자극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초등생들은 ‘유희왕’ 게임을 통해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서 만화 주인공 유희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캐릭터의 영웅적 이미지를 모방하는 역할 놀이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포켓몬’ 등 만화의 이미지를 차용해 온 다양한 종류의 게임들 중에서 유독 ‘유희왕’이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독특한 게임 진행 방식과 연관이 깊다. ‘유희왕’는 초등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있고, 대중적으로 즐기고 있는 인터넷게임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른바 배틀(대전)과 레벨이다. 인터넷게임 방식의 특징은 상대방보다 비싼 장비를 가지고 있어야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캐쉬를 충전하는데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게임은 공짜로 하되, 상대방을 제압하려면 돈을 써서 더 좋은 아이템을 가져라”는 식이다. 공정한 룰에 의한 게임이 아니라 돈이 많은 아이가 승리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다.

마찬가지로 ‘유희왕’ 카드도 값비싼 카드, 상대방보다 공격력이 강한 카드를 돈을 주고 구매해야 배틀에서 승리할 수 있다. 게임의 특성상 아이들은 공정한 조건에서 게임을 이끌어 갈 수 없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이 갖고 있는 카드를 자신도 구매하는 것이다.

‘유희왕’게임은 이 같은 아이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철저히 상업적인 논리에 따라 게임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사행성’요소는 ▲카드의 랜덤식 판매 방식 ▲카드마다 다르게 부여된 능력치 ▲카드 맞교환 등 세가지.

보통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카드 10장이 들어있는 덱(카드 여러 장의 묶음) 하나의 가격은 500원 정도. 그런데 카드를 구입한 후 포장을 뜯어야만 덱 안에 들어있는 카드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랜덤식 판매 방식’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카드가 나올 때까지 카드 구매를 멈출 수가 없다.

카드마다 각기 다른 능력치를 부여한 데다 더욱이 이를 레벨순으로 분류해 판매하는 방식도 아이들의 카드 구매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유희왕’게임에 사용되는 카드는 크게 기본팩과 확장팩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기본팩은 게임에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카드 묶음이고, 확장팩은 공격에 유리한 효과를 줄 수 있는 일종의 보조 카드들의 묶음이다.

물론 기본팩만 갖고 있어도 게임을 진행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레벨이 높은 확장팩 카드 한 장만 갖고 있어도 그 월등한 효과로 인해 게임을 훨씬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때문에 아이들은 쉽게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적으로 큰 효과를 발휘하는 확장팩 카드를 얻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유희왕 카드.
문제는 이 같은 확장팩 카드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 실제로 ‘유희왕’카드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사이트인 듀얼존(http://www.duelzone.co.kr)의 경우 카드 10개가 묶여 있는 확장팩 하나에 1만원을 조금 웃도는 가격에서부터 최고 22만원까지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

초등생들의 주머니 사정에 비추어보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지만, 더 좋은 카드를 얻겠다는 욕심에 비싼 카드를 구매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김 모(12) 군은 “비싼 카드를 사야 공격력이 높은 카드를 많이 얻을 수 있으니까 부모님을 졸라서라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얼마 전에는 반 친구가 자기가 모은 용돈으로 15만원짜리 카드를 사서 반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말해 아이들의 카드 구매욕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했다.

‘유희왕’ 게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카드 맞교환’ 방식은 어린아이들에게 사행성을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카드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카드를 갖고 있는 친구와 물물 교환을 하는 것이다.

이때 더욱 효과 좋고 희귀한 카드를 얻기 위해서는 아이들 사이에 더 좋은 조건을 내거는 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일쑤다. 공격력이 좋은 카드 한 장의 물물 교환 가격은 보통 4만~5만원 정도.

하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카드를 손에 쥐기 위해 웃돈을 얹어주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일산 주엽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 모(11) 군은 “친구들과 카드를 바꾸는 데 일주일에 2만~3만원 정도 쓰는 것 같다. 카드 한 장에 6만5,000원까지 거래하는 것도 봤다”며“좋은 카드를 얻으려면 더 많이 투자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었다.

▲ 권장희 놀이미디어 교육센처 소장
"아이 놀이 문화 부모 관심이 필요해요"

대개의 부모들은 자극에 민감하고 유혹에 약한 어린이들에게 불량식품을 판매하는 일에는 쉽게 분개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강한 자극과 사행심을 불러일으키는 미디어 놀이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다. 직접적인 피해가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PC방에 가면 초등학생들은 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선혈이 컴퓨터 화면에 가득한 게임들을 즐기고 있다. PC방 주인도, 게임회사도, 정통부나 문광부 심지어는 국가청소년위원회도 이러한 심각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조치나 대응을 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연습을 매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 문화를 지도하기 위한 부모들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초등생 시기는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 타인과의 친밀감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 가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 이때 폭력성과 사행성 등 상술에 물든다면 아이들이 올바로 자라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아이들이 건전한 놀이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부모들은 다음의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

첫째는 요즘 아이들이 갖고 노는 도구를 잘 알아야 한다. 인터넷 게임은 물론 카드 게임 ‘유희왕’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빠져있는 놀이에 열중하기 쉬운 초등생들에게는 무조건 게임을 하지 못하게 나무라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부모가 먼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어떤 도구를 어떤 방식으로 놀이를 즐기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야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게임 욕구를 억제할 수 있다.

둘째, 아이들이 놀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컴퓨터 게임의 경우 부모 앞에서는 숙제를 하는 척 컴퓨터를 켜놓으면서도 실제로는 게임창을 통해 게임을 즐기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다. 실제로 우리 아이들이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폭력적이고 사행적인 놀이 문화에 쏟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아이들이 게임을 즐기는 중 어느 정도의 현금 거래를 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경우는 보통 더 좋은 아이템을 마련하려는 욕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게임 문화의 특성상 아이템 거래 자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아이템 마련에 쓰고 있는지 혹은 불특정 다수와 현금 거래를 하는 건 아닌지 부모가 먼저 예의주시하고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정흔 객원기자 lunallena99@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