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관련 시민단체들 국민 권리찾기 운동 부흥기 맞아한국납세자연맹·참여연대 등 꾸준한 활약 조금씩 결실

‘ 축! 학교용지 부담금 특별법 재통과! 납세자 여러분, 기뻐해주십시오. 우여곡절끝에 그리도 소망했던 학교용지부담금 환급특별법 수정안이 오늘 오후 드디어 통과됐습니다.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억장이 무너지던 어제의 비탄도 이제 돌아보니 한시도 잠들지 말라는 교훈이었습니다.지난 3주, 지난 수년간 다들 마음고생 많으셨습니다. 끝까지 저희를 믿고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지난 2월22일 한국납세자연맹의 전 회원들에게 날아든 자축과 감사의 이메일 내용이다. 이들이 맞는 이번 ‘납세자의 날’의 의미는 여느 해보다 남다르다. 이를 위한 시민운동의 결실과 위력이 본격적으로 축포를 터뜨린, 기념비적인 날이다.

조세 관련 시민운동단체들의 활약이 일약 부흥기를 맞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월 현재 국내 경제활동인구는 총 23,738,000명. 그중 취업자가 22,964,000명이다.

또한, 지난달에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15세 이상 인구 3명중 1명은 1년간 일해 본 경험이 전혀 없고, 취업 경험이 있는 사람 중 1년 내내 일자리를 유지한 사람은 약 70%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취업 및 근무 기간이 6개월 미만인 ‘평소 비경제활동인구’가 15세 이상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36% , 즉 1,399,3,000명선이었다. 세금 문제에서 보자면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수입 때문에 사실상 정확한 세금제도를 알거나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인구 또한 이와 비례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고용상태가 불안정한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등이 세금 문제에 대해서 특히 많이 취약한 편”이라며, “자신의 부당한 과,오납의 경우에도 이 사실을 몰라 정당한 환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과납한 세금 차액을 돌려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민 납세자들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구제운동은 특히 뜨거운 지지와 성과를 이끌어냈다. 납세자의 자기 권리 찾기에 대한 인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는 한국납세자연맹을 들 수 있다.

2001년 창립 당시 회장 1명, 상근자 1명, 손바닥만한 사무실과 컴퓨터 두어대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2008년 현재 상근자 15명을 확보한 가운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회원수가 약 1백만명, 국내 최고다. 2003년말 온라인 상담을 시작한 후 지금껏 5만3천건의 일반인(비회원 포함) 상담을 해결해왔다.

특히 소득세확정신고 기간인 매년 5월과 연말정산 시즌인 연말 안팎으로는 상담이 폭주한다. 지난 연말과 올초만해도 하루 평균 1백여건, 한달에 약 3천건의 온라인 상담신청이 밀려들어 상근,비상근 상담자들 전원이 총 동원되어 ‘비상사태’를 견뎌냈다.

초창기의 빈약한 인력과 재정상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단기간내에 빠른 성장과 시민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얻게 된 바탕도 이처럼 적극적이고 성의있는 대응력 때문이다. 온라인의 장점을 효율적으로 활용, 국민들의 실생활 현안에 집중한 점도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항목별로 보면, 부당 취득세에 대한 가산세 개정운동(2002년 9월~2003년 9월), 떼인 연말정산 환급금 받아주기 운동 (2002년 6월~현재도 계속 진행중), 교통분담금 환급기간 연장운동(2003년 1월~2월), 주민세 환급신청절차 폐지운동(2003년 5월~현재까지) 등 많은 활동과 결실이 거둬졌다.

가장 ‘전설적인’ 사례는 2001년 연맹의 창립과 함께 시작한 ‘부당 자동차세 불복운동’이다. 이는 그간 납세자로서 부당하고 억울한 입장에서도 침묵하고 있던 많은 일반인들을 뭉치게 한 첫 횃불이기도 하다.

아시아 태평양 납세자연맹 회의.

서울행정법원에 부당 자동차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및 위헌법률 심판청구를 하자마자 전국의 약 2만여명이 참여했다. 당시 환급신청자중 212명이 국세청으로부터 약 1억원의 세금을 돌려받는 것으로 1차 수확을 거두었다. 이에 뒤따라 두달만에 참여신청자가 1백만명으로 껑충 뛰었다. 불복 청구금액도 2천억원대로 상승, 납세자들의 목소리와 참여도가 높아졌다.

2002년말에 시작한 교통분담금 환급운동 사례는 더욱 경이적이다. 소식을 통보한 지 단 2주만에 10만명, 한달만에 23만명이 운동대열에 합류했다.

또한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 막판까지 숱한 고전을 치르게 한 학교용지부담금 특별법의 경우, 이미 6만여명이 1천1백억원을 환급받은데 이어 앞으로는 전 국민에게 고루 환급 수혜가 돌아간다. 김 회장은 “ 이번 특별법은 입법기관에서 법률을 잘못 만들어 부당한 세금을 거두면 국민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정부도 혼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평가했다.

납세자연맹이 일반인들의 직접적인 민생고에 초점을 맞춘 반면, 참여연대와 ‘함께하는 시민행동’등은 조세제도 자체의 근본 개혁에 대해 포커스를 맞춘 시민단체다.

참여연대의 경우 자체의 조세개혁센터를 가동, 현행 세금제도의 불합리성 지적과 개혁운동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이들 역시 1990년대말부터 크고 작은 결실을 맺기 시작, 특히 재벌과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의 탈세, 소득 탈루 등 부유층의 세무비리 척결에 강한 전문성과 응집력을 보여왔다.

일례로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부과 할 것을 요구한 끝에 1998년 마침내 뜻을 관철, 계층간의 조세불평등에 대해 제동을 건 첫 사례로도 기록돼 있다.

이외에도 과세 인프라 구축 및 개선운동, 외환위기 이후 유보됐던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를 2001년부터 재시행시키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한편,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 폐지 등 막대한 기여와 영향력을 보였다.

특히 2000년 4월 삼성가의 재벌3세 이재용씨의 변칙증여에 대한 고발 및 척결운동 끝에 결국 국세청이 이씨 등에 대해 수백 억 원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결과를 끌어낸 일은 유명하다. 국내 최초로 ‘1인 시위’ 문화를 등장시킨 케이스이기도 하다.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이상민 간사는 “우리나라만큼 조세제도가 복잡한 국가도 없다”며 “일반인들이 자신의 세금 문제 처리에 대해 복잡하고 어렵게 느끼는 것도 근본적으로 조세제도 자체가 잘못되었기때문”이라 지적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또한 조세개혁, 특히 예산낭비 감시문제에 전문적으로 집중한 시민단체다. 1999년 창립준비위원회를 출범하면서 동시에 전국적인 예산감시 네트워크를 출범시킨 ‘풀뿌리 기동력’으로도 유명하다.

2000년부터 불명예의 상징인 ‘밑빠진 독 상’을 제정, 수여하면서 총 30조원의 예산낭비사례 지적해 4천4백억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거두었다.

국내 최초의 납세자소송법을 제기, 이를 주민소송제 등으로 현실화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현재 40여개 지역 및 부문단체들과 예산감시네트워크를 구축해 탄탄하고도 꾸준한 예산감시운동을 정착시킨 본보기로 자리하고 있다.

‘납세자의 날’이라는 명칭도 시민운동이 낳은 유산으로 알려진다. 3월3일은 국세청의 발족일. 이를 기념해 1969년 7월 ‘세금의 날’로 지정됐다가 ‘조세의 주체는 국민, 즉 납세자여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지적과 개칭 요구에 따라 1973년부터 ‘납세자의 날’로 이름이 바뀌었다.

경실련 경제정책팀 김건호 부장은 “‘납세자의 날’이란 단지 명칭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시민운동에 의해 사회적 인식 변화의 표시로 큰 의미를 띤다”고 말했다.

납세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시민단체들의 활동상은 강화되는 한편, 그 이면의 딜레마는 여전히 난제로 공존한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재정자립 문제다. 한국납세자연맹의 경우 회원수가 1백만명에 이르지만, 그 가운데 현실적인 재정 후원자들은 3천여명. 대부분 소액후원자들이다. 후원금 총액이 한달 평균 약 800만원.

도움을 요청하는 시민들의 수나 요구수준에 비해 상근자들의 인건비나 기본 운영비를 감당하기도 벅찬 사정이다. 가끔은 상근직원들의 급여가 연체되기도 한다. 그나마 현실적인 악조건속에서도 회원들의 자발적인 온라인 활동 등 재정 이상의 파급력과 지지가 큰 힘이 되고 있다.

참여연대나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경우 정식 회원수는 현재 약 1,000명 수준.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자들의 기부금과 함께 공익재단의 지원금 등으로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8월 공시한 ‘2006년 회계연도 재정운영상황’ 자료에 따르면, 전년도 서울시민의 1인당 지방세 부담액이 98만3,000원으로 나타났다. 시민 1인당 세출액이 178만7,000원선이었다.

전체실업자 81만여명 시대, 연간 경제성장률 4%대에 불과한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는 현실에서 이 부담스러운 세출액은 특히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에게 커다란 부담과 고통으로 작용한다.

올해로 42회째를 맞는 납세의 날, 납세의 의무는 국민의 신성한 4대 의무중 하나지만, 정작 이에 대한 정부의 의무는 충실하고 공정한가 되묻게 한다. 건강한 조세제도의 입법 및 집행은 납세를 국민의 의무로 규정한 국가 자신의 ‘의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억울한 세금 피해자가 없도록 시민단체들은 계속 활동을 전개할 것이며, 특히 누구에게든 평생 따라다니는 것이 세금이니만큼 국가적으로도 중,고등학교 등 학교 과정을 통해서라도 기본적인 세무상식 등 사전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