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1,700여 개·12세 이상 청취율 90%…시사프로 청취자만 5,000만 명… 대선 바람 타고 르네상스 맞아SJ(Shock Jockey)의 유쾌한 진행 등 다양한 프로 인기고품질 수신기 개발 등 방송시장 자체 노력도 '한몫'

미국의 대선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라디오 방송이 새롭게 부상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1년부터 위성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미국은 성인들 대부분이 차량에 부착된 카오디오를 통해 라디오 방송을 청취한다.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집과 회사, 이동을 할 때마다 자가용을 애용하는 미국에서는 라디오 방송이 여론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미국에서는 대선주자는 물론 보수진영, 진보진영 할 것 없이 라디오 방송 잡기에 혈안이 돼있다.

이 같은 상황은 정치적인 성향이 짙은 프로그램을 원하는 청취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와 맞물려 미국 내 라디오의 부활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의 두뇌집단 인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에서 얼마 전 공개한 ‘라디오 방송 현황’ 결과가 이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미국진보센터는 미 전역에서 방송 중인 라디오 프로그램은 1,700여 개 정도로, 12세 이상 연령층 가운데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라디오를 청취하는 사람이 90%에 달하며, 라디오 시사 토크 프로그램 청취자는 5,000만 명가량이라고 밝혔다.

라디오 정치 프로그램의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실제 정치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그 효과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 의회 관계자들은 최근 미국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던 이민법 개정안이 상원을 통과하지 못한 데도 라디오 방송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미국의 주요 TV방송과 신문 보도에서 이민법 개정안이 차지하는 비중이 9%에 그쳤지만 라디오 토크 쇼에서는 19%가량을 차지했고, 특히 이민법 개정안이 표결에 부쳐진 한 주 동안 라디오 토크 쇼의 79%가량이 이민법 개정 문제를 이슈로 다루면서 반대 여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라디오 방송이 오락물로 시간을 메우고 있고, 특히 청소년 대상의 심야편성의 경우 거의 모든 채널이 오락이나 쇼 프로그램인 국내 라디오 방송 사정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처럼 정치적인 영향력 상승에 힘입어 라디오가 미국에서 다시금 부활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라디오 진행방식의 변화 역시 라디오의 인기를 더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주제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요리는 물론 자동차, 건강, 문화 등 분야를 막론한 방송이 전파를 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단연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여타의 DJ(Disk Jockey)와는 달리 특별히 ‘SJ(Shock Jockey)’라고 불리는데 이른바 ‘충격을 주는 DJ’인 셈이다.

캘리포니아 인기 DJ‘ 돈 아이무스(Don Imus)’, 미국의 인기 DJ‘ 하워드 스턴(Howard Stern)’
캘리포니아 인기 DJ' 돈 아이무스(Don Imus)', 미국의 인기 DJ' 하워드 스턴(Howard Stern)'

캘리포니아에서 유학 중인 이보미(27·여)씨는 “SJ들은 프로그램을 흥미 위주로 진행할 뿐만 아니라 매우 직설적인 표현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며 오히려 이런 신선한 진행 방식이 청취율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특히 미국 DJ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도 불리는 ‘돈 아이무스(Don Imus)’ 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SJ다”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진행이 청취자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매력이다”고 덧붙였다.

영향력 있는 또 다른 DJ ‘하워드 스턴(Howard Stern)’. 그는 거친 풍자와 음담패설 등 선정적인 진행으로 광적인 팬들을 많기로 소문난 DJ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그를 가리켜 ‘24초마다 1,000달러를 버는 DJ’라고 소개한 바 있다.

2004년 하워드를 DJ로 영입한 위성 라디오 방송국 ‘시리우스(Sirius)’는 1년 남짓 만에 가입자가 110만 명에서 330만 명으로 폭증했고, 불과 2년 사이 6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엄청난 성과를 거둬들였다.

뉴미디어시대가 도래하면서 치열한 미디어 경쟁으로 인해 침체기를 겪던 라디오 방송이 기존 방송에선 거의 금기시되다시피 했던 진행방식을 활용함으로써 새롭게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 라디오 방송시장 자체의 노력도 미국에서 라디오 르네상스를 실현시키고 있다.

청취자들이 보다 수월하게 방송을 청취할 수 있도록 고품질 수신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06년 시리우스(Sirius) 위성 라디오에서 출시한 수신기 ‘S50’은 특정 프로그램 녹음이 가능하고, 수신 장애 없이 다양한 방송 컨텐츠를 청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사용법이 간단하고, 휴대가 가능해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다.

미국의 시장 조사기관 쥬피터 리서치는 이와 관련해 “현재 미국의 위성 라디오 시장 규모는 수신기 1,200만대 수준에 불과하지만 계속되는 제품개발과 수용자편의 향상으로 연평균 35%의 급성장을 거듭하며, 2010년에는 수신기 기준 5,500만대 규모로까지 성장할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전문가들은 라디오 시장이 전세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라디오 고유의 장점을 살리고 미디어 시장의 틈새를 공략함으로써 미국의 라디오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 국내 라디오 시장도 '제2 전성기'

국내에서도 라디오방송이 케이블TV, 인터넷, DMB, 등 뉴미디어를 통해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디지털기술이라는 날개를 달고 라디오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을 필요 없는 ‘유비쿼터스’ 기기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3월 MBC가 선보인 인터넷 라디오 ‘미니mbc’는 라디오 부활의 신호탄이 됐다. 인터넷 메신저 수준의 작은 용량으로 인터넷과 연결만 하면 뛰어난 음질의 방송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네티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이후 KBS ‘콩’, SBS ‘고릴라’가 가세하며 지상파 3사 라디오는 수용자들이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송으로 변신했다.

KBS ‘콩’은 서비스 시작 보름 만에 프로그램 다운자수 10만 명, 동시 접속자수 40만 명을 넘어섰고, ‘미니mbc’의 누적 이용건수도 1년 만에 500만을 돌파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국내 라디오 시장의 부활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라디오 수신 형태만 변화했을 뿐 실질적으로 내부적인 방송 컨텐츠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라디오 채널이 증가하는 만큼 다채로운 내용으로 방송의 전문화와 특성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한 오락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되는 편향적인 방송 환경 역시 국내 라디오의 진정한 부활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라디오 방송의 르네상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함과 동시에 이 같은 문제점들의 개선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