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급, 행시 등 고시준비생 크게 줄고 일반기업 취업준비 늘어'퇴출 공포' 현역 공무원들 구직업체 등록·로스쿨 수강 자구책

‘신이 내린 직업’이라 불리며 부러움의 대상이던 공무원 사회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휘청거리고 있다. 공무원 조직의 축소가 예상되면서 현직 공무원은 물론, ‘공시족(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것이다.

‘작은 정부’라는 슬로건 아래 대통령직인수위는 장관급 11명, 차관급 8명, 1~3급 고위직 93명 등 7,000여명의 공무원 감축안을 발표한 바 있다. 감축안에 따르면 지금보다 5부, 2처, 1청, 5위원회가 조직개편으로 사라지면서 부처수로는 1960년 이후, 중앙행정기관수로는 1969년 이후 가장 작은 정부가 된다.

새 정부는 현직 공무원들의 신분은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혼란에 빠진 공무원 사회를 안정시키기는 어려워보인다. 위기를 느낀 상당수 공기업들도 이미 상반기 채용계획을 하반기로 미뤘거나 채용계획을 아예 취소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공시족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 술렁이는 공시족들
시험 포기한 공시족들 민간기업 행
어수선한 고시학원가 직렬 변경 문의 빗발

공무원 인원 감축 발표로 공시족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새 정부의 공무원 사회 구조조정 계획은 각종 공무원, 공기업 시험에만 매달려온 ‘공시족(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청천병력 같은 소식에 공시족들은 크게 동요하며 갈피를 못잡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가장 먼저 충격파가 전해진 곳은 학원가.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은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수강생이 20%가량 줄었다. 행정고시 준비생들이 많은 서울 신림동 학원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 학원 관계자는 “신림동 학원가가 전체적으로 예년에 비해 행정고시 입문자가 30% 정도 감소했다”며 “1차 시험인 공직적격성평가(PSAT)를 준비하기가 어려운데다 최근 정부의 공직사회 구조조정 방침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원의 상담실장은 “법원직과 일반행정직 정원이 줄고 세무직과 출입국관리직 선발인원이 소폭 늘 것을 예상한 수험생들의 직렬 변경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오랫동안 시험을 준비해 온 사람들은 지금 이도 저도 못하는 힘든 상황이다”고 전했다.

실제로 취업포털 사이트 커리어(www.career.co.kr)에서 최근 공무원 취업을 준비하는 회원 4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4.2%가 공시준비를 포기할 의향이 있다고 답해 공시족 3명 중 1명은 중도포기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한 후 계획으로는 ‘일반기업에 취직하겠다’는 응답자가 54.8%로 가장 많았고 ‘개인사업(25.4%)’ ‘해외연수.유학(11%)’ ‘대학.대학원 진학(6.6%)’ 순으로 답변이 이어졌다.

대학졸업 후 1년 정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최근 새롭게 진로를 변경한 김모(27.여)씨는 “공무원 취업문이 좁아질 것 같아서 빨리 결단을 내리게 됐다”며 “차라리 영어 공부를 좀 더 집중적으로 해서 올 겨울 해외연수를 떠날 생각이다”고 밝혔다.

5월에 9급 공무원시험을 볼 예정인 강지은(24.여)씨는 “이제 막 시험준비를 하려던 친구들은 일반기업 취직으로 생각을 돌린 경우가 많다”며 자신도 이번 5월 시험을 끝으로 일반기업에 들어갈 준비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는 대다수의 수험생들이 일반기업으로 몰릴 조짐을 보임에 따라 기존의 사기업 준비생들의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오는 8월 졸업 예정인 김지학(29.남)씨는 “대외적인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대기업 채용인원이 대폭 늘어난다는 소식에 취직이 조금 수월해 질 수 있으리라 내심 기대했지만 공공부문 취업을 생각했던 지원자들이 사기업으로 몰리면 오히려 경쟁률이 더 세질 것 같다”며 공무원 감축 소식이 사기업 취업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했다.

금융권 입사를 준비 중인 최모(27.남)씨는 공기업 준비생들의 높은 스펙을 걱정했다.

최씨는 “보통 공기업 준비생들은 학교 내에서도 탄탄한 준비를 한 우수한 학생들이다”면서 “이들이 사기업으로 대거 몰릴 경우 경쟁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시족들은 이처럼 좁아진 채용문에 울상을 짓고 있지만 현직 공무원들은 구조조정 칼바람에 아예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 좌불안석 공무원들
인력시장에 뛰어드는 공무원들
로스쿨 등 돌파구 모색

정부부처 통폐합으로 현직 공무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일부 부처를 질타한 이후 관련 부처에서는 모든 TF를 해체하는가 하면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작업을 가속화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정부조직개편의 연장선으로 “부처별 잉여 인력을 6개월이나 1년 코스로 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 받도록 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시책들이 선보이며, 공무원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각 부처의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205명이 ‘무보직 대기자’로 1일부터 ‘특별 재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머지 5급 이하 1,500명의 초과인력은 이 달 말부터 재교육을 실시하며, 대상자는 통폐합 부서 위주로 결정이 난다. 이들은 하루하루 살얼음 판을 걷고 있다. 이번에 살아 남지 못하면 자리보존이 영영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 사이에 퇴출 공포가 몰아치면서 공무원들이 새롭게 구직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채용정보 업체 잡코리아(www.jobkorea.co.kr)의 공무원 이력서 등록건수는 지난해 12월 1229건에서 올 1월 1671건으로 27.8% 증가했고, 2월 들어서 919건의 공무원 이력서가 등록됐다. 다른 업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취업인사포털 인쿠르트(www.incruit.com)는 1월 중 공무원(정부, 공공기관 종사자) 이력서 등록건수가 총 969건으로 지난해 12월 683건보다 41.9% 늘어났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이력서 등록건수 증가율 24.4%에 비하면 배에 달하는 수치다. 2월 공무원 이력서 신규 등록 건수도 300건이 넘었다.

3월 초 이력서를 등록한 30대 한 공무원은 “참여정부 때 정책홍보기능이 강화돼 홍보담당 공무원으로 들어갔지만 앞으로 기능이 축소될 것을 예상해 미리 일반 기업체 홍보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부처 과장급 공무원 박모씨 역시 존폐 논란이 한창 불거지던 1월 중순 구직업체에 이력서를 등록했다.

박 씨는 “위기를 느끼는 공무원들은 그 동안 구축해 놓은 인맥을 총동원해 새로운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며 “사기업과 교류가 많았거나 특정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들 중에는 이미 자리를 확보해 놓은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잡코리아 컨설팅사업본부 안현희 이사는 “공무원들의 성공적인 이직을 위해서는 기업의 특정수요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며 “전문성이 떨어지는 일반 공무원의 경우 사 기업으로의 이직이 힘들 뿐만 아니라 이직을 했어도 사기업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광석 인크루트 대표는 “공무원의 이력서 등록이 계속 늘어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이는 인재시장으로 뛰어드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단순한 수치 이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다수 나이 많은 공무원들이나 연차가 오래된 공무원들은 주로 본인들의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살 길을 찾고 있지만 2~3년차 나이 어린 공무원들은 과감한 진로 변경도 주저하지 않는다.

과천의 경제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28.여)씨는 2년차 7급 공무원이다. 갑자기 불어 닥친 구조조정 바람으로 흉흉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최근 그는 로스쿨 학원에 등록했다.

김 씨는 “업무가 끝나고 10시가 돼서야 겨우 책을 펼칠 수 있지만 더 이상은 불안한 채로 생활할 수 없다는 생각에 로스쿨 학원 등록을 결정했다”면서 “주말에는 학원에서 부족한 공부 분량을 채우는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씨는 “또 다른 동료 는 금융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경영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며 “자신이 다니는 로스쿨 학원에도 공무원들이 많은 걸로 알지만 대부분 신분 노출을 꺼리며 조용히 준비를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로스쿨 전문학원은 직장생활이 불안한 사람들에게 ‘로또’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철밥통 공무원이라는 불문율이 깨지면서 공무원들도 하나 둘씩 로스쿨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로스쿨 전문학원에는 직장인 수강생이 900여명 정도 된다. 이들 가운데 공무원은 11%가량으로 법조공무원이 52명, 일반공무원이 48명을 차지한다. 지난해 5% 남짓하던 공무원 비율에 비하면 눈에 띄게 늘어난 수치다.

다른 로스쿨 학원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다산 로스쿨의 한 관계자는 “다산의 수강생은 총 220명 정도로 그 가운데 60%가량이 직장인이다”며 “직장인들 중 공무원 비율은 30%정도 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공무원임을 밝히지 않고 다니는 수강생들까지 추산하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으로 공무원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민간기업과 공무원 사회의 인적교류가 확대되면 궁극적으로 현실적인 정책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동안 지나치게 폐쇄적이었던 공무원 사회가 점차 개방됨에 따라 조직우선주의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직업적 소명의식이 약해지거나 중추가 돼야 할 핵심 인력의 일탈로 업무의 공백이 빚어져서는 안 된다는 견해와는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