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문화욕구 폭발적 증가, 도시 경쟁력으로 승화 절실해세계적 예술가·단체 양성해 서울의 문화·관광 전도사 삼아야

서울의 문화예술 진흥을 진두지휘하는 안호상(49)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늘 분주하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구상하고, 결정하고, 추진해야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지만 그나마 넘치는 열정 덕에 헤쳐나가고 있다. 그래도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하루 빨리 서울을 ‘문화도시’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21세기 문화의 시대에는 더 이상 기술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선진국, 선진도시, 선진기업들은 모두 문화적 힘으로 승부를 걸고 있어요. 애플 아이팟은 전자제품이지만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기호품’이 되었어요.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바로 아이팟이 ‘문화적 어필’을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서울의 도시 경쟁력이 높아지려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창의성과 상상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최근 많은 서구인들은 아시아에 점차 시선을 돌리고 있다. 오랫동안 문화 우월주의에 빠져 동양적 가치와 문화를 업신여겼던 그들이 아시아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바로 무한한 잠재력 때문이다.

세계의 문화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관측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안 대표는 아시아 시대의 도래는 이미 시작됐으며, 때문에 서울도 세계 유수 도시와의 문화적 경쟁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 문화는 곧 경제, '컬처노믹스'의 시대

“과거에는 일부 교육 수준이 높은 계층만 문화를 누렸지만 이제는 전체 시민, 국민들이 문화를 이해해야만 다른 도시, 국가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어요. 이런 시대 변화에 맞춰 서울문화재단은 시민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문화는 이제 문화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잘 만들어진 문화상품과 잘 가꿔진 문화도시는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문화가 곧 경제’라는 이른바 컬처노믹스(Culture-nomics)의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 대해 아직 충분한 공감대가 마련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 때문에 “먹고 살기 바쁜데 한가하게 무슨 문화냐”, “문화를 어떻게 돈과 연관시킬 수 있느냐”라는 서로 상반된 목소리의 협공을 받을 때도 적지 않다고 안 대표는 토로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시민들의 문화욕구가 분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폭발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문화예술 향유 수요가 엄청납니다. 저희 재단이 만드는 프로그램보다 시민들의 눈높이가 더 높아 난감할 때도 종종 있을 정도예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도시 경쟁력으로 승화하는 일이다. 특히 젊고 유망한 문화예술가를 육성하는 것은 서울문화재단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잘 키운 예술가나 예술단체 몇몇이 도시의 명성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베를린필, 런던은 대영박물관을 가진 것만으로도 품격 높은 문화예술도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뉴욕 브로드웨이는 극장 숫자가 고작 39개에 불과하지만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지로 통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서울도 그렇게 돼야 합니다. 서울에 가면 반드시 무엇 무엇은 봐야 한다는 인식이 외국인들에게 심어져야만 서울도 진정한 문화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겁니다.”

■ 문화향유는 개인 삶의 질에도 큰 영향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전 세계가 놀란 경제성장 신화의 표상이다. 하지만 압축적 경제발전 뒤에는 문화적 결핍이라는 짙은 그늘도 존재한다. 개인주의와 물질지상주의가 팽배하면서 공동체 문화는 희박해졌고 개인의 삶도 팍팍해졌다. 이를 극복하고 사람이 살 만한 도시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도 ‘문화적 충전’은 필수적이다.

문화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개인의 삶의 질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문화적 소양과 예술적 감각이 일상생활에서도 소중한 자양분이 된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일을 할 때도 문화예술 자산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접근 방식이나 해결책 모색에서 훨씬 앞선다. 쉽게 말해 안목이 다른 것이다.

“문화는 매우 중요한 ‘소통 언어’입니다. 오래된 순수문화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오늘의 대중문화는 이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를 알아야만 시대를 읽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는 만큼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아주 오랫동안 어느 학교 나왔느냐, 어디 출신이냐라는 식으로 학연이나 지연을 통해 서로 소통해 왔는데, 이제는 그런 낡은 소통 방식을 버리고 문화로 소통할 때가 되었어요.”

문화적 소통은 문화적 안목을 갖췄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안목이 비슷할 수는 없다. 특히 문화예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안 대표는 그 간극을 메워줄 매개체로 문화예술행정 전문가의 역할을 꼽는다.

■ 문화행정가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통역사'

“저 같은 사람은 예술가와 소비자 사이에서 ‘통역사’ 구실을 한다고 할 수 있어요. 예술가의 다소 난해한 언어를 소비자가 알기 쉬운 언어로 바꿔 전달해주는 역할이라 할까요. 그 동안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활동은 너무 생산자 중심으로 이뤄져 소비자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보다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안 대표는 문화예술행정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84년 예술의전당의 첫 번째 공채 예술행정 전문요원으로 입사해 23년간 근무하며 공연기획부장, 공연사업국장, 예술사업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펼쳐보인 구스타프 말러(1860∼1911. 체코 출신 지휘자 겸 작곡가) 전곡 연주시리즈로 호암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문화예술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가 예술의전당에 들어간 것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로서 보다 공익적인 일에 투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복합예술공간을 건립한다는 발표에 귀가 솔깃했지요. 예술행정 전문요원이라는 직무 타이틀도 그럴 듯했고요. 당시 기관장께서 외국 유수의 예술센터 못지않은 곳을 한국에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과 비전을 밝히시는 데 감동을 받아 제 인생을 걸게 됐습니다. 그런데 워낙 기초지식이 없어 처음에는 고생 참 많이 했지요(웃음).”

안 대표는 그 자신이 ‘꿈’을 갖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듯이 재단 직원들에게도 항상 “꿈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꿈을 가지면 어떤 어려움과 위험에도 좌절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꿈은 어쩌면 서울시민 모두의 꿈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살기 좋은 문화도시, 서울 말이다.

◇ 서울문화재단은…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가 문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04년 3월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비록 연륜은 짧지만 서울의 문화 발전소이자 컨트롤타워로 서서히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문화예술을 통해 서울시민을 더욱 행복하게, 서울을 더욱 살기 좋은 문화도시로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은 재단의 지향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화도시 서울’ 조성에 앞장선 만큼 사업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젊은 유망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시민 문화예술 활동을 독려하는 한편 하이서울 페스티벌 등 서울 대표축제의 기획 및 운영도 맡고 있다. 또 서울연극센터와 대학로연습실 등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을 위한 창작공간도 직접 꾸려가고 있다.

내년부터는 ‘서울 맞춤형’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크게 강화할 계획이다. 공연, 전시 등 문화예술 작품 및 예술단체에 대한 직접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창작환경 제공을 통한 간접 지원, 역량 있는 신진 예술가 및 단체의 발굴과 육성 등 예술창작의 전 단계에 걸친 종합적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종래에는 많은 단체에 적은 금액을 골고루 지원했지만 향후에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 아래 역량이 뛰어난 단체에 보다 많은 예산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한 단체가 받을 수 있는 지원 금액은 최대 2억5,000만 원까지 늘어난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