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후 기술·건설적 측면 강조… 이제 문화적 측면 갈증 풀 것

"그동안 건축은 내부에서만 대화했다. 닫힘과 한계를 열고 시민들과 폭 넓게 소통하며 건축문화를 이야기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

건축문화학교 교장을 맡은 곽재환(51) 씨의 말이다. 건축문화학교는 한국건축가협회를 중심으로 다수의 건축가, 인문학자, 시민의 참여 아래 3일 문을 열었다.

곽 교장은 건축그룹 칸(間)건축사무소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며 2001년 완공된 서울 은평구립도서관 도면에 석양을 바라보는 공간(응석대)을 넣는 등 환경친화적인 건축 설계로 잘 알려진 건축가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에 의해 건축돼 한국 근대건축사의 기념비로 남아있는 서울 정동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5일 곽 교장을 만났다.

곽 교장은 건축문화학교 설립을 두고 "해방 이후 50년 동안 한국 건축은 기술, 건설적 측면만 강조되면서 문화적 측면의 갈증이 있어왔던 게 사실"이라며 "시민과 더불어 건축을 이야기하고 건축을 같이 사랑하는 터전을 만들어 나아갈 것"이라고 요약했다.

"섞임이 문화다"

건축문화에 대한 그의 상식은 '건강한 문제의식은 합리적인 대안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한국 건축문화의 잘못이 무엇이길래 건축문화학교까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곽 교장은 "문화라고 하는 것은 삶과 같이 근본적으로 섞임이며 그런데서 발전되는 것"이라며 "이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갖고 있느냐로 분별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근대건축 50년사는 역사의 기억을 지워가는데 집중했다"며 "골목길, 구릉진 언덕, 지난 삶의 정서, 오래된 정자나무라는 공간과 기억을 근대의 건축과 개발이 지워왔다"고 말했다.

섞임의 필요성은 공간과 건축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괴리된 건축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지금의 건축은 건물을 지어놓고 거기 사람이 맞춰가는 상황이 돼왔다"며 "우리가 오랫동안 가꿔왔던 한국만의 미적 감각이나 생활의 정서를 반영한 건축도 현대적 건축과 공존하는 것이 문화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로 건축가의 아름다운 기부

"다양한 사람들과 건축에 대한 얘기를 소통하는 공간", "사람들과 함께 건축을 배우고 사랑하고 노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뜻을 같이하는 동료, 선후배들이 있었지만 마땅한 후원자를 찾기가 힘들었다.

'시민과 만나는 건축문화학교를 만들자'는 곽 교장을 비롯한 건축가들의 제안을 작년 문화체육관광부는 거절했었다. 그는 이미 지난 2004년 뜻을 같이하는 후배들과 도시문화, 도시건축 등 도시 관련 이슈를 다루는 계간지 <시티 몽키>를 창간했다 문을 닫기도 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었다. 작년 '건축의 날' 행사에서 김종헌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은 건축문화학교 수업장소 제공을 약속했다. 건축계 원로인 이영희 희림종합건축 회장은 젊은(?) 건축가들의 뜻을 듣고 기금을 쾌척했다.

건축과 예술의 유쾌한 만남

곽 교장은 건축과 예술을 만나게 해 건축문화를 이끌어내는 유쾌한 상상을 많이 하고 있었다. 미술과 건축의 만남이 첫번째다. 곽 교장은 건축문화학교 참가자들과 함께 재개발하면서 버려진 건축물을 찾아가 벽화를 그리고 길거리 담벼락에 마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그래피티를 그리는 일을 벌여볼 생각이다. '공간의 기억'을 되살리며 시간이 공존하는 건축의 필요성을 웅변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다음은 음악과 건축의 만남이다. 4월 수업에 계획된 '미니멀리즘' 수업이 그것이다. 이 수업에서는 김기영 작곡가를 초청해 기본음을 쳐가면서 그것이 건축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보여줄 계획이다.

영화와 건축의 만남도 있다. 지나간 역사영화에 나타난 건축물을 보여주며 건축의 발전상을 알릴 것이다. 체험형 수업도 있다. 방학기간에는 청소년과 학부모가 함께 찰흙과 신문지로 조그만 건축물을 직접 만들어보는 방학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도 있다.

건축문화학교는 김원 씨의 '건축은 예술인가'라는 강의로 시작되며 격주로 하루씩 당분간 무료로 강의를 연다. 참가대상은 '누구나'다.

곽 교장은 '공간 나눔 시민 운동'을 꿈꿀 정도로 열려 있는 사람이다. 영국의 '오픈하우스 런던'이나 미국의 '뉴욕 오픈하우스 페스티벌'에서는 평소에 가보기 어려운 배타적 혹은 사적 공간을 시민에게 일정시간동안 개방한다.

'건축'과 '문화'사이에 서 있는 그의 소통에 대한 열망에 한국 사회가 실망을 줄지 희망을 줄지 주목된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