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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의 감상을 시로 읊조리다
[문화계 앙팡테리블] (19) 김일영 시인
정제된 언어 속 당대 풍경 담아낸 작품으로 가능성 인정받아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미래파. 2000년대 젊은 시단을 정의하는 것은 이 한마디였다. 금기를 깬 언어, 기발한 상상력, 감각적인 표현. 미래파로 주목받는 시인조차 자신이 미래파 시인임을, 미래파는 실체가 있는(?) 동인임을 동의하지 않은 채, 시단은 초토화됐다.(주지하다시피, 미래파는 동인이 아니라, 시인 겸 문학평론가 권혁웅이 2000년 대 중반 발표한 평론으로 등장했고, 이 평론을 발표한 ‘문예중앙’은 폐간됐다) 논쟁의 저편으로 젊은 시인들의 개성과 시세계는 거세당했다.

200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일영은 이 논쟁의 저편에 있는 시인이다.

‘간절히 손을 내밀지만/저 주검을 끌어당겨줄 바람은/오지 않는다//타이어는 짓밟힌 새를 거듭 짓밟고 가지만/솜털 깊숙이 기억된 항로가/바람을 붙잡는다’(시 ‘깃털이 죽지 않고’ 중에서)

이처럼 시인 김일영은 정제된 언어 속에 당대 풍경을 담아낸 시로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정희성 시인은 그를 두고 “나는 처녀작이라 할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가 좋아서 그를 시인으로 아주 인정해버린 터이지만, 문단에 나온 몇 년 사이 ‘무덤 위로 별이 뜰 때’나 ‘가을 숲 속에서’ 같은 소란 떨지 않고 차분하게 이룬 진경에 흡족하여 이에 찬한다. 그의 시는 섬세하여 읽는 이들의 마음에도 어룽어룽 그림자를 드리울터다”고 말한 바 있다.

이명원 평론가는 “그의 시는 ‘귀’로 만져야 할 작품들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다채로운 청각 이미지를 통해 시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 때문이다. 연작시 ‘소리의 방’, 또 다른 연작시 ‘숨비 소리’를 보면,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는 시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소리가 되지 못한 메아리만 새까만 방을 떠돌고/눈을 떠야 하는데/하수구에서 튀어나온 검은 고양이가/내 눈과 목소리를 물고 사라진다/귀만 남는다’ (시 ‘소리의 방2’ 중에서)

공감각적 시어는 최근 젊은 시인들에게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면모다. 이 감각적 시어를 통해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섬과 그 섬에서의 유년 시절과 어머니를 노래하고 나아가 울음과 죽음을 노래한다. 김일영의 작품에서 자아탐색과 고백의 서사가 시를 통해 발현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반성하면서 앞으로 나아간 김수영,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면서도 현재의 삶을 진지하게 드러낸 백석의 시 정신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5년간 발표한 시는 얼마 전 첫 시집으로 묶였다. 그러니까, 등단작을 표제로 삼은 시집 ‘삐비꽃이 피기 전에’는 그의 생애가 오롯이 녹아 있는 노래인 셈이다.

‘창자가 흘러나온 개구리를 던져 놓으면/헤엄쳐 간다/오후의 바다를 향해/목숨을 질질 흘리면서/알 수 없는 순간이/ 모든 것을 압수해갈 때까지/ 볼품없는 앞발의 힘으로/ 악몽 속을 허우적거리며/ 남은 몸이 악몽인 듯 간다/잘들 살아보라는 듯 힐끔거리며 간다//

다리를 구워먹으며/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도시로 헤엄쳐 갔다’ (시 ‘바다로 간 개구리’ 전문)

시가 언어적 패러다임에 갇혀버린 시대, 시인 김일영은 소외의 감상을 시로 읊조린다. 그의 시는 노래하는 시다. 그의 시는 ‘새로움’의 이름으로 방치되어버린 당대의 시 저편에 있다. 더디지만 묵묵하게 나아가는 사나이. 그래서 그는 진부하지만 가장 새로운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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