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동원 글씨 미디어하우스 대표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디자이너의 애환 책으로 펴내

“검찰 로고 디자인은 찰리 채플린의 콧수염을 연상하다 나왔다.”

1일 도발적인 제목의 신간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를 펴낸 출판디자인 전문 아트디렉터 홍동원(48·글씨 미디어하우스 대표)씨의 말이다. 그의 후일담에는 글씨 디자인에 대한 고수의 철학이 담겨있다. “디자인은 시대와 지역,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며 “그 시대의 사람들의 이미지에 대한 감정, 느낌, 스토리를 더해 만든 것이 좋은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홍 씨는 여러 신문사에서 가로쓰기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검찰 로고, 자동차 번호판 등을 디자인했다. ‘단원풍속도첩’, ‘이건희 에세이’ 등의 북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17일 서울 장충동 ‘디자인 하우스’ 사옥에서 홍 씨를 만나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세계에 대해 물었다.

새치를 그대로 내버려둔 곱슬머리. 약간 기른 콧수염과 턱수염. 약간 낡은 듯한 느낌의 셔츠와 청바지. 홍 씨의 외양은 그가 책에서 언급한 패션 경향을 닮아 있다. 최신의 느낌을 배제한 자연스러운 낡음의 빈티지. 그의 디자인 역시 완벽성을 추구하는 인공미와는 거리가 멀다.

홍 씨는“문자는 시간, 공간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력이 있는 것”이며 “이를 디자인할 때 무엇보다 그에 맞는 아이덴티티(자아정체성)를 살려야 한다”고 요약했다.

검찰 로고와 찰리 채플린의 콧수염

그의 책 첫 장에는 검찰 로고를 가운데 넣고 사람의 눈과 미소 짓는 입 모양을 그려 넣은 그림이 나온다. 검찰 로고를 그릴 때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의 디자인 개선 담당자였던 당시 금태섭 검사는 ‘수호 천사’ 같은 이미지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찰리 채플린의 콧수염을 떠올렸다.“검찰을 사람으로 친다면 40~50대의 푸근한 지적인 아저씨 정도가 될 걸로 생각했다. 업무 자체가 밑에서 받혀주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지켜봐주고 돌봐주는 것 아닌가”

홍 씨는 경찰 ‘포돌이’ 이미지와 실제 경찰의 괴리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그는 “치한이 쫓겨올 때 포돌이를 보고 겁 나겠나”라며 “디자인이란 한번 해본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일관된 본연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이미지의 디자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홍 씨는 월드컵 때의 ‘비 더 레드(Be the Red)’ 를 예로 들었다. 홍 씨는 “‘비 더 레드’는 조형미가 있는 디자인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거기 대중이 선택한 감정과 느낌, 스토리가 있어 생명력이 있는 것”이라며 “좋은 디자인은 특정 형태나 절대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의 관계성에서 나온 정체성을 잘 담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디자인 철학은 현실에서 벽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라는 도발적인 책 제목은 이런 디자이너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그 어떤 종류보다 압도적인 숫자가 ‘도깨비 방망이형 똥구멍’을 그려달라는 주문이다.

신발을 만들어달라고 했으면 신어봐야 하는 것인데, 머리에 써 보고는 모자가 아니라면서 고쳐달란다. 그래서 묻는다. “신발을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클라이언트는 당당하게 말한다. “내가 말이야, 갑인데, 갑한테 지금 덤비는 거야, 뭐야?” – 책 218쪽

‘모던하면서 클래식하게’ 혹은 ‘우아하면서 세련되게’라는 식의 형용 모순의 주문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글씨는 그 자체에 음성, 기호, 전체적인 분위기 등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잘 살리는 디자인을 전문가의 감각에 맡기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뢰사 윗선의 결정에 따라 버려지는 디자인이 많은 것이 안타깝다는 게 홍 씨의 생각이다.

“디자인의 발전은 문화의 성숙에서”

좋은 디자인이 만들어지려면 문화의 성숙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게 홍 씨의 결론이다. 그는 “디자인은 문화를 표출하는 도구”라며 “지금 문화의 중심은 대중이기 때문에 대중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그가 도시 디자인에 큰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다. 식은 구들장만 의미하던 ‘썰렁하다’란 말 뜻의 변화는 언어에는 시대성을 보여준다. 같은 발음이 사투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듯이 언어는 지역성을 담고 있다.

홍 씨는 “밀라노, 파리 등 시시때때로 변하는 서울의 지향성은 디자인적으로 정체성을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라며 “파리에 많은 아이콘이 있지만 에펠탑이라는 한가지 상징으로 통일하고 미키 마우스가 100년 이상의 생명력을 가지는 데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관치’와 ‘교조’에서 벗어나야 디자인이 산다는 것이다. 관(官) 중심의‘디자인’ 강조는 오히려 자율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 씨는 홍대 앞을 예로 들었다. 그는 “자생적으로 큰 문화동네인 홍대 앞에 관이 들어가 ‘피카소 거리’를 조성한다고 나선 결과 대부분의 인디밴드 공연장은 월세 부담으로 무너지고, 피카소의 후예들은 문래동, 영등포, 일산 근처의 컨테이너 창고로 밀려났다”며 “실제 피카소 거리는 성매매 집결지를 그대로 놔둔채, 옆에 공연장을 만들어 즐긴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인은 쇼가 아니라 생활”이라며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그지만 디자인의 일부는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용성과 예쁜 디자인은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 아닌가’라고 묻자 그는 “바우스하우스 혹은 멤피스 스타일은 한두개쯤 미래의 해석을 위해 남겨두는 것도 좋다”며 “디자인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풍만한 여체에서 현대의 날씬한 여체로 미인을 바라보는 기준이 바뀐 것도 디자인의 시대성과 함께 ‘여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홍 씨는 “디자인의 주인은 대중”이라고 말한다. 그가 만든 ‘찰리 채플린의 콧수염’ 앞에서 검찰은 18일 ‘PD수첩’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에서 돌봐주는 푸근한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