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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윤리 가족' 속 윤리를 찾다
[문화계 앙팡테리블] (26) 이상현 작가
88만원 세대 양성하는 비윤리 사회의 전경을 포착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돈을 버는 것이 곧 윤리인 시대이지 않나요.”

이상현 작가의 최근작 <비윤리 가족>에서 '윤리'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사람들이 제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근거로서의 윤리. 한 작품에서 결혼정보회사가 회원의 등급을 매기는 항목은 곧 관객이 자신의 ‘윤리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된다.

(‘2008. 남성 등급 분류표’) 경제적 능력이 다른 모든 특질에 우선한다. “길거리의 부랑자를 어떻게 도울까 생각하기 이전에 그렇게 된 것은 그 사람 탓이라고 판단하는 시대”의 지표다.

이런 맥락에서, “취직하라”는 어머니의 말에 작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인 대답이란 “대학원만 졸업하고 돈 벌어 올게요”다. 작가는 이 문장의 옆에 자신의 대학 졸업 사진을 그린 드로잉을 배치했다. 자신이 돈을 못 버는 성인 아들 즉, 비윤리적 존재가 된 순간을 상징한다.(‘엄마, 대학원만 졸업하고 돈 벌어올게요’)

하지만 “가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88만원 세대의 ‘잘못’이 우리만의 것인가, 사회의 잘못은 없을까”라는 작가의 질문에 누가 선뜻, 거리낌 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작가는 자신의 가족 구성원을 구심점 삼아 ‘비윤리’가 편재한 사회의 전경을 포착해낸다. 여기에서 ‘윤리’는 가치를 판단하는 일관된 기준이다. 따라서 비윤리는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가치관의 분열과 그것들 사이의 모순이다.

이상현 작가의 어머니가 ‘삼성’에 갖는 양가적인 감정이 그 예다. 20년간 삼성에 근무한 아버지가 2001년 정리해고 당한 후 어머니는 누구보다 삼성을 싫어했으나, 집의 재건축 시공사가 삼성으로 결정되었을 때는 집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기뻐했다. 정작 지금의 ‘래미안’ 아파트 값의 대부분은 대출금이다. 작가 자신은 삼성의 학자금 보조를 받아 학교를 다녔고 야구팀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면서도 '삼성'을 비판하는 작업을 한다.

‘삼성’이 “돈 버는 것이 곧 윤리”라는 한국사회의 가치체계에 제도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권력의 실체이자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현 작가가 고백하는 가족의 내력은 곧 “자본이 사회 전체를 시장화하는 현실”이다.

동시에, 이런 지경인데 “삼성 없이 우리가 살 수 있을까?”라는 자아성찰이기도 하다. 삼성에서 받은 메달을 목에 건 아버지, 래미안 아파트를 배경으로 선 어머니를 아무렇지도 않게 찍은 사진에 슬픔이 밴 것은 그 때문이고, 그 정서가 작가 자신의 윤리이기도 하다.

이달 말까지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대안공간 풀에서 열리는 이상현 개인전의 제목은 <나는 언젠가 리움에서 회고전을 가지는 게 꿈☆입니다>다. 알다시피, 자조다. 좀 씁쓸히 읽어야 그 뜻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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