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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찍은 사진 한 장도 꿰어야 보배랍니다"
[문화혁명가] (44) 에디션 대표 송수정
특정 주제로 한 편의 스토리를 편집·창조하는 '포토 에세이' 강좌로 인기
우연한 계기로 사진세계에 입문해 지금은 포토디렉터로 국제적 명성 얻어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



"'여러분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빈티지 책을 만드는 겁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수강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느꼈죠. 아! 내 수업이 사진을 찍는 분들에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구나!(웃음)"

일관된 목적과 주제에 맞는 사진들을 골라 한 편의 이야기를 편집해내는 '포토에세이 제작' 수업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사진 관련 수업이 노출과 앵글에 대한 방법론 등 사진을 잘 찍는 테크닉에 중점을 두었다면 KT&G 상상마당 사진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포토에세이 제작' 수업은 '무엇을 찍을 것인가'보다 공들여 찍은 사진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 수업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애써 찍어놓은 사진이 컴퓨터 하드에 쌓여 가는 것을 많은 분이 경험하실 거예요. 하지만 이야기로 묶어낼 수 있는 사진을 잘 골라내 사진 편집 실무를 하다 보면 자기 사진의 부족함이 무언지 금세 발견하게 되죠. 잘 찍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사진들을 잘 골라내는 방법을 배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 보는 안목이 생기게 될 겁니다."

벌써 3기째를 맞는 이 수업 과정은 소수 정예로 딱 15명만 받는다. 그리고 8주간의 수업이 끝나면 자신만의 포토에세이 한 권이 만들어진다. 사진 찍기를 즐기는 생활사진가들에겐 뚜렷한 결과물이 있는 이 수업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는 포토디렉터이자 전시기획자인 송수정 씨다. 송 씨는 사진이나 이미지에 비중을 둔 책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에디션'(EDITION) 대표다. 그녀는 10여 년 이상 국내외 사진계에서 전시나 출판, 방송 등의 기획자 및 포토디렉터로 활동해왔다. 현재 KBS 스페셜 5부작 '인간의 땅'의 프로그램 기획, 해외 마케팅, 출판 등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작년과 올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월드 프레스 포토(World Press Photo, 이하 WPP)'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1955년 처음 시작한 WPP는 세계적 규모와 권위의 포토 저널리즘 콘테스트다. 이 행사에 한국인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건 송수정 씨가 처음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보낸 2주일은 저에게 낯선 경험이었지만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값진 자산이 되었어요."

작은 체구의 동양인, 그것도 젊은 한국 여성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생태사진 전문가, <타임> 사진부장, 독일 시사주간지 <슈테른> 사진부장, 로이터 부사장 등과 동등한 자격으로 어깨를 겨루며 논쟁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대선배들이나 다름없는 전문가들에게 사진을 바라보는 애정과 작가에 대한 경의 등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인생의 값진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두 번의 WPP 경험은 송 씨를 훌쩍 성장시켰다.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는 자부심은 둘째였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생소한 체험'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졌다. 그건 단순히 지금 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은 욕망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외국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요. 물론 지금 한국 작가들이 해외로 많이 진출하는 편이지만 아직 네트워크가 활성화된 편이 아니죠. 그래서 한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사진집 등을 발간해 전시를 통해 소개하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역할을 '에디션'에서 하고 싶은 거예요."



현재 송 씨는 사진이론가로 입지를 다졌지만 사실 사진작가 출신도, 미술을 전공한 큐레이터도 아니다. 독일 월간지 '지오(GEO)'의 한국판과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 편집장 출신인 그녀는 그 바닥을 벗어나 프리랜서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사진이론을 처음 공부했다.

"글 쓰는 국어선생님이 고등학교 때 꿈이었어요. 사범대(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에 들어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죠. 하지만 교생실습을 마친 후 학교 밖에서 또 다른 인생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운명이었을까요?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다가 대학시절 즐겨보던 지오 잡지를 보게 되었죠."

송 씨는 대학 때 시와 소설을 손에서 놓지 않는 소위 '문학청년'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반면 잡지라는 매체는 보다 전문적이고 콘텐츠나 아이템도 풍부해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 다른 세계를 탐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녀는 지오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 취재기자로 입사했지만 사진 관련 코디네이터를 함께 하는 '투잡'을 맡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포토디렉터라는 직함 없이 해외작가를 섭외하고 자료를 받고 계약도 하는 말 그대로 '코디네이터' 일부터 시작했다.

"당시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니라 모두 필름 카메라였어요. 슬라이드가 몇 개 왔는지 일일이 세는 게 저의 첫 임무였죠. 하지만 이국에서 건너온 유명 작가들의 사진이 든 우편물 봉투를 가장 먼저 뜯어 보는 건 저였어요. 그 설렘 아세요? 마치 아무도 모르는 즐거운 비밀을 혼자만 아는 기분이랄까.(웃음)"

그녀가 사진으로 처음 만난 오리지널 슬라이드 작가들은 <내셔널 지오그래픽>나 <매그넘>, <파리마치> 등에 실리는 '최상급 작가들'이었다. 그때부터 사진을 보는 눈이 '확' 트였다고 할까. 작가들이 보내는 사진은 대개 100~150컷. 사진을 고르고 선별하는 일은 그녀가 하루 중 가장 오래 투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해외 작가들과 친분이 생기면서 그들이 촬영을 가면 베스트 컷 10꼭지씩 총 1천 컷을 미리 보내주기도 했죠. 양질의 사진을 밀도 있게 접근하며 제 방식대로 공부를 했어요. 작가들이 외국 매체에 실린 레이아웃을 보내주면 저는 사진을 고르고 편집하고 나중에 그들이 보내준 레이아웃과 비교하며 혼자 트레이닝을 했어요.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제가 편집한 레이아웃으로 작가들과 리뷰를 하며 친분도 쌓고 안목도 키워나갔죠."

지오에 있는 동안 해외 작가들과 쌓은 우정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과도 같았다. 특히 그녀가 직접 발굴한 재능 있는 해외 작가가 훗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그룹 매그넘의 일원이 되는 순간을 볼 때는 그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는 9월 울산에서는 울산국제사진페스티벌이 열린다. 현재 송 씨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도 하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자연주의(Naturalism)다. 20여 개 나라의 사진가 80여 명이 초청되는데 송 씨의 역할은 바로 해외 작가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다.

"인간, 자연, 환경, 생태의 문제를 다루는 이번 전시에서 해외 작가는 물론 한국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도 많이 선보일 예정이에요. 이제 한국에서도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사회참여를 다룬 전시가 많아지고 있어요. 블록버스터 류의 대중적인 전시보다는 작가의 이름에 기대지 않고 내용 면에서 실속 있고 알찬 전시를 기획하는 게 또 다른 바람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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