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국립극장 무대감독한국무대감독협회 설립 산파 역할… 후배 양성 시스템도 만들 것

“그냥 공연이 좋아서 주말도 없이 휴일에는 더 바쁘게 일하지만, 합당한 처우도 마땅한 교육기관도 없는 현실을 더 방치할 수 없다.”

무대감독협회의 필요성에 대한 김영봉(45) 국립극장 무대감독의 설명이다.

무대감독은 늘 무대 뒤에 있다. 일반인에게 그 이름과 역할이 생소한 이유다. 하지만 공연예술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하다. 무대감독은 연출자의 작품해석을 바탕으로 기술, 제작, 조명, 의상, 관람석 등 무대 전체상황을 고려해 ‘큐 사인’을 준다.

무대 뒤의 조용한 카리스마의 자리에 머물던 그들이 세상밖에 나왔다. 한국무대감독협회(회장 김영수)가 17일 서울 능동 유니버셜 아트센터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200여 회원으로 공식 출범을 선언한 것. 추진위원장을 맡아 협회 설립에 산파 역할을 한 김 감독을 18일 서울 중구 장충단길 국립극장에서 만나 모임의 필요성과 무대감독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김 감독은 “뮤지컬이 대중화하면서 점점 커지는 공연 규모만큼이나 제작과정에서 체계적인 관리의 필요성과 무대감독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협회는 무대감독을 필두로 음지에서 일하는 공연 스태프의 권익 향상과 무대감독 지망생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안을 둘 것”이라고 요약했다.

무대에서 길을 잃다? 무대감독을 찾아라!

“무대에서 모르는 게 있으면 무대감독에게 가라.”

공연 현장에 내려오는 잠언이다. 그러나, 무대감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현장의 여건이 주어져온 것은 아니다. 열악한 우리의 공연환경은 무대감독을 연출자의 보조 정도로만 여기거나, 아예 연출과 무대감독을 구분하지 않기도 했다.

“무대감독을 처음 시작하던 93년에는 전국의 무대감독을 다 합쳐도 30~40명 밖에 되지 않았어요. 대부분 그냥 공연이 좋아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일해왔죠.”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뮤지컬이 대중화하면서 공연의 규모 역시 비약적으로 커졌고 공연 스태프의 각 영역도 세분화됐다. 과거와 같은 주먹구구식 공연진행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무대감독을 수장으로 한 공연 스태프의 권익은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다.

“프리랜서 무대감독의 경우 개런티 규정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제작자가 임의로 급여를 정해 1년에 2000만원 벌기도 힘든 무대감독이 많죠. 4대 보험은커녕 공연이 망하면 스태프 급여를 떼어먹고 달아나는 제작자도 있으니, 그야말로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셈이죠.”

김 감독은 이런 관행이 공연의 질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일을 하려고 들면 너무 일이 많고, 일을 안하려 하면 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게 무대감독”이라며 “무대감독이 어떻게 마음먹는가에 따라 공연은 확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무대감독은 조명·무대 디자이너·연출자·배우 사이에서 중재의 역할을 하며 공연의 막을 올리고 지휘한다. 무대감독에 따라 공연 예산마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지휘자와 같은 이들의 선택에 따라 공연의 질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지사.

“산파가 신이 나야 산모 도와 좋은 아기 낳는다”

“좋은 작품이 건강한 아기라면, 산모인 연출을 도와 순산을 유도하는 산파와 같다.”

무대감독을 신나게 하기 위한 김 감독의 구상은 다양하다. 첫 출발인 만큼 친목단체의 성격으로 서로 얼굴 마주칠 일 없던 무대감독의 친교를 활성화 하는 일에 주력할 생각이다. 협회 설립을 추진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 커졌다.

“2000년에 처음 얘기가 나온 뒤 9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연 성수기인 4~5월, 8~12월에는 서로 정신 없이 바쁘고, 회의를 해도 밤 10~11시에 모이기 일쑤였죠”

그럼에도 그가 사명감을 가진 이유는 동료와 후배들 때문이다. 김 감독은 “장기적으로는 공연선진국과 같이 협회에 속한 프리랜서 무대감독의 급여에 A, B, C 등의 등급을 정하자는 생각”이라며 “공연에 대한 열정과 희생만큼 합리적인 보상을 이제는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배 양성 역시 주요 과제다. 무대 뒤의 카리스마에 반해 무대감독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꽤 많다. 하지만 마땅히 무대감독을 준비할 수 있는 전문 교육기관이나 전공이 거의 없다. 김 감독 역시 대학에서는 연극영화학을 전공하고 연기자를 꿈꾸다 공연에 매료돼 일을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배운 경우.

김 감독은 “늘 무대 뒤에 있는 무대감독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기관원 같은 시세”라면서도 “연출가의 생각을 현실에서 조율해 좋은 작품이 나올 때 쾌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2006년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 오페라극장에서 있었던 ‘한불 수교 100주년 기념 공연’을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았다. 관람객 수천명이 턱시도우나 이브닝 드레스·한복을 입고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짜릿하면서도 섬?한 그 순간”이었다.

김 감독은 “공연은 일종의 마약”이라면서도 “기억력이 살아 있어 큐 사인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현장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난생 처음”이라는 국립극장 무대감독의 고백에서 우리 공연 현장 스태프의 현주소를 짐작할 수 있다. 무대감독을 비롯한 전 스태프까지 함께 데려와 체제비를 부담하는 외국 공연단과 국내에서조차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다.

“건강한 아기를 낳으려면 산모뿐 아니라 산파에도 투자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그의 말이 이기적으로 들리지만은 않는 이유다.

김영봉 감독은…


국립극장 무대감독.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수료.

1987년 청파소극장 기획실장. 93년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로 무대감독 입문. <심청전>, <춘향전>, <흥보전>, <수궁가>, <적벽가> 등 5대 창극 국립창극단 무대감독. 김명곤 연출 <우루왕>, 이윤택 연출 <파우스트>, 배정혜 무용 <춤춘향> 무대감독.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