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용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교수국·영문 미술계간지 창간… 소외된 미술 담론 과감히 끄집어낼 터

"사르트르는 한 사회 지식인의 사명은 그 시대가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영문판 미술 담론 계간지 9월 창간준비호 발행을 서두르고 있는 심상용(48) 동덕여대 큐레이터 학과 교수의 말이다. 심 교수는 미술담론 계간지를 표방하는 이 신생 잡지의 발행인을 맡았다.

있던 잡지도 폐간되는 시기다. 미술 계간을, 그것도 국·영문으로 발행하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26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동덕여대 예술관에서 심 교수를 만나 그들의 무모한(?) 도전에 대해 물었다.

심 교수는 "미술 전시가 많아졌고 거래시장이 호황이지만 그만큼 예술의 수준도 높아졌는가는 의문"이라며 "예술생태계의 보존을 위해 시대가 외면한 예술의 가치와 담론도 과감하게 끄집어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요약했다.

▲ "쏠림 현상 견제해야 예술생태계 산다."

"예술은 산업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의 성찰과 고민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을 바라보는 시대의 쏠림 현상에 대한 비평도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새 계간의 논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심 교수는 예술에 대한 상업적인 접근을 완전히 잘못됐다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의 상업적 가치가 근본적 가치인 순수성을 억누르는 수준으로까지 발전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담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유다.

"미술은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콘텐츠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죠. 예술이 근본적으로 공공성을 띠는 이유입니다. 순수성과 상업성 사이에서의 고민과 의견을 모으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다음세대가 더 도약할 수 있는 장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사변적 논쟁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창간준비호는 미술관의 공공성, 대학생 작품 판매 전시인 아시아프,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 등의 미술계 현안을 다룬다.

심 교수는 "언제부터인가 미술계의 껄끄럽고 예민한 사안을 미술전문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문화 주간지나 일간지 한켠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며 "시장에서 주목 받는 작가들에게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예술생태계에도 영향을 준다"고 안타까워했다.

▲ "퐁피두의 지혜 빌려야"

"퐁피두 미술관은 최근 한 세기나 지난 칸딘스키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오랜만에 창고에서 손님에 맞는 와인을 꺼내올 수 있잖아요. 좋은 와이너리와 같은 역할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새 계간에 대한 심 교수의 구상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 미술관을 비유한 설명에서 더 명확해진다. 시장에서 주목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는 전시라면 과감하게 다루고, 지나간 것이라도 재해석이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다면 다시 뒤지는 작업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전시에서는 역사와 시간이 줌-인 되면서 100년 전과 현재의 만남이 만들어집니다. 이 시대의 논리에서 한 발짝 빼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죠. 더군다나 왜 변해야 하는지도 까먹을 정도로 빨리빨리 변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역할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새 계간 창간준비호의 가장 큰 수확 가운데 하나는 알프레드 파크망 퐁피두 미술관 관장과의 인터뷰다. 과의 인터뷰에서 알프레드 관장은 퐁피두 미술관도 1/4의 운영비를 자체 조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심 교수에 따르면 인터뷰에서 알프레드 관장은 "미술관의 카운터파트너는 사람과 시민이기 때문에 이제는 시장과의 조화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라면서도 "우리 미술관 운영비의 대부분은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미술관은 동시대와 시민의 아픔에 주목하고 호응해야 하며, 이는 세계적 흐름과 소통하고 균형을 맞추는 것과 별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국·영문으로 우리 것 전하고, 그들의 경험 빌릴 것"

굳이 국·영문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까. 퐁피두 미술관장 국문 기사를 보며 국내독자들은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고, 그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빌릴 수 있다. 한예종 사태를 비롯한 우리 미술계 현안을 영문기사로 읽는 외국 독자들 역시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국내 미술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식이라는 설명이다.

'그 일들을 우리 자신이 주체가 돼서 벌여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심 교수는 한 프랑스 큐레이터 얘기를 꺼냈다. 동양산수화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보더라는 것이다. 작가의 개성이나 독창성이 반영돼야만 '아트'라고 볼 수 있다는 게 서구의 시각이다.

그러나, 심 교수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출발하면 이를 뒤집는 사람들의 시각에 동의하더라도 '절합(節合 - articulation; 분절적 접합)'적으로 할 수 있으며 패권화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 교수는 "예술이 사회 안에서 사람들의 삶과 공존하면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소외된 것도 존중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얘기하는 환경적 요인이 있어야 한다"며 "사람들이 잘 안 읽을 수도 있는 글, 시대에 뒤떨어진 전시도 계속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잡지는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을 지낸 정형탁씨가 편집장을, 한지연 프랑스 루앙대 철학과 박사과정이 선임편집자를 맡는다. 강선학 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도 참여한다.

'미술계 큐레이터십 확장에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지는 않나'라고 묻자 심 교수는 "큐레이터십의 영역확장에 기여한다든가 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며 "매체의 퍼스펙티브(perspective; 시점)로 세상을 읽고 단절되기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시선을 추가해, 다양성이 높아진 사회와 미술의 관계 잇기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심상용 교수는…


동덕여대 큐레이터 학과 교수. 서울대 미대 회화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프랑스 파리 제8대학 조형예술학 석사, 박사. 파리 1대학 미술사 박사.

<속도의 예술>, <천재는 죽었다>, <그림 없는 미술관>, <현대미술의 욕망과 상실>, <명화로 보는 인류의 역사> 등 저술.

<장 보드리야르의 '죽음'의 관점에서 본 현대미술>, <현대미술과 세계주의>, <비평의 범주와 제도의 영역>, <미술, 비즈니스, 마술; 미술의 탈신화화와 재신화화> 등 논문 발표.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