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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와 전각은 끝없는 자기와의 대화"

[한국초대석] 수안스님
선화는 선 수행의 일환… 모든 것은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과정일 뿐
서울에서 통도사가 있는 양산으로 가는 길은 멀고 고되었다. 4시간여를 꼬박 도로 위에 갇혀 있고 난 후에야 거대 자연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를 가슴 한 가득 들이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마음과 머리 사이의 거리가 서울과 양산 사이보다 멀어진 것은 깨닫지 못했을까. 수안 스님과의 만남을 통한 마음의 파동은 그만큼 강했다.

통도사 내 암자 문수원에서 수행하는 수안 스님은 선화(禪畵)와 전각의 대가로 꼽힌다. 홀로 하던 작업을 1977년 이리역 폭발사건 이재민돕기 선묵전으로 대중에 첫 선을 보이면서 지금까지 50회가 넘는 전시회를 열었다.

1985년 모나코 몬테카를로 현대미술전에 출품해 입상, 중국과 러시아, 유럽, 남미 등지에서 수차례 초대전을 가지며 많은 화제가 됐다. 불교계에서는 물론 전각가이자 선화가로서도 이례적인 행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몇 권의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볕 좋은 오후 문수원에 도착하자 법당에서 모습을 드러낸 근엄한 표정의 수안 스님은 금세 편안하게 웃음을 짓는다. 칠순을 넘긴 노스님의 팔자 눈썹과 눈, 얼굴의 미세한 주름까지도 웃고 있다. 다실에 마주 앉아 차를 나누어 마시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는 진지하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선화는 크게 보면 명상화라고 할 수 있지. 그림을 보면서 명상을 하게 되는 거야. 전각은 돌 위에 시를 글씨로 써내고 그림도 그려내야 해서 동양예술의 극치라고 할 수 있어. 시를 새길 수도 있고. 우리는 이름만 담는 걸 생각하는데, 시를 쓸 수도, 그림을 쓸 수도 있어. 시, 서, 화, 각의 네 가지가 연결이 되어 있어야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거야."

서양화가 동양화보다 익숙해진 요즘에 와서 전각은 낯선 예술이 되었지만 고서화가 일반적이던 시절에는 서예나 그림을 그린 후에는 자기 이름이나 호(號)를 쓰고 도장을 찍었다. 이 도장은 문인묵객(文人墨客) 스스로가 새기는 것이 통례였다.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비밀문서에 봉인을 할 때도 전각은 사용됐다. 그 시대의 사인의 역할을 하던 것이, 문인들의 손을 거치면서 예술의 한 분야가 된 것이다.

그가 그리는 선화와 전각은 그가 수행하는 방식인 선에 입각한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 그게 선이야. 남녀노소도 없어.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는 것이지. 육체를 끌고 다니는 정신이나 마음, 그것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아는 거지. 생명의 근원은 똑같애. 나무다, 꽃이다 말하는 이름만 다른 거지. 이름 붙이기 이전에 있는 절대적인 존재. 그게 종교보다도 앞서는 거야."

선화는 수안 스님이 17살에 출가해 정진해온 선 수행의 일환이다. 젊은 시절 그는 한겨울에 토굴에서 쌀 한 말과 소금 한 되만으로 고행을 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병마를 얻었지만 대신 예술인의 삶을 얻게 됐다. 전각의 대가인 안강석 씨가 그의 첫 스승이었지만 당시 그에게 대가의 사사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후에 만난 운여 김광업 선생은 안과의사이자 전각가였다. 운여 선생은 그에게 전각을 하려면 우선 원을 그리라고 가르쳤다. 천 번 만 번 그리다 보니 원이 그림의 원형임을 알게 됐다.

"어릴 때 절집에 와서 교육 부재에서 자라다 보니 세상에 스승이 아닌 게 없는 거야. 실경, 실제 무엇을 직접 그리는 것을 많이 했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이 없었어. 자발적으로 하는 거지. 지식에 묶이면 안돼. 내 가슴에 있는 얘기를 하는 거야. 예술도 마찬가지지."

흔적을 새기는 공간

문득 또 하나의 수행공간인, 그의 작업실이 궁금해졌다. 한 번 보기를 청했지만 스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재차 보기를 청하자 잠시 망설이던 그는 법당 옆에 자리한 작업실로 기자를 이끌었다. 작지 않은 공간은 먹을 말리기 위해 집게와 옷걸이에 걸어둔 작품들로 빽빽했다. 앉을 곳 하나 없이 높다랗고 커다란 책상 위엔 수많은 밑그림과 그림을 부탁해 온 이들의 사연이 담긴 편지들이 인연의 끈처럼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선화에 채색을 하는 스님은 원색의 오채먹을 사용한다. 수묵화에서 금기시되었던 개칠(改漆)도 그는 대담하게 시도한다. 붓을 손바닥으로 움켜쥔 그는 한 차례 말린 그림 위에 채색을 하기 시작했다. 몇 장의 그림 위에 말없이 수십 번의 붓칠을 한 그가 뒤늦게 입을 뗐다. "자식은 보여줄 수 있어도 섹스 행위 그 자체는 보여줄 수 없는 것처럼 작업실 공개는 어려운 일이야. 가끔 버리는 그림 달라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건 가장 못난 자식 남 주는 것과 똑같아." 앞선 부탁의 거절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겸언과는 달리 작업실에서 발견한 그림들 중에 못난 자식은 없었다. 하나같이 맑은 미소를 가진 동자승과 고요한 산길에 있는 아늑한 느낌의 암자들. "자연의 모든 것을 담고 싶어. 고마운 사람, 좋은 사람, 고마우니까 좋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 이유 없이 좋은 애기들처럼."

수안 스님의 그림은 단순한 필세에도 불구하고 긴 세월의 내공을 짐작케 했다.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니 다락방과 같은 작은 공간이 나왔다. 여러 개의 선반 위엔 전각 수백 개가 그득 쌓여 있다. 지름이 한 뼘에 이르는 해남석을 깎은 것이 있는가 하면, 손가락 크기 만한 작은 것도 있다. 그 중엔 글씨만 적혀 깎이기를 기다리는 것도 있고, 반야심경 270자를 새겨 넣은 것도 있다. 큰 전각을 하나 들어보니 무게도 만만치 않다.

"여자들이 화장하는 것과 같아. 찍었을 때 바로 새겨져야 하니까, 반대로 새겨야 하거든. 글씨 쓰면서도, 새기면서도 계속 거울에 비춰보는 거지. 버리는 것도 많아. 그런데 실수 없는 게 있나. 그래야 흔적이 남는 거지."

그간의 작업에 만족하냐는 물음에 스님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만족감이 없어. 그래서도 안 되고. 배부른 사자가 사냥을 안 하는 거랑 같지. 그냥 열심히 할 뿐이야. 이렇게 하고 나면 저렇게 한 번 해볼까 하고 다시 시도해보고. 만족했으면 중간에 그만 뒀을거야."

작업 시간은 대중없다. 아침도 거르고 일에 몰두하다가 달빛이 새어 들어와 밤이 된 것을 알게 되는 날도 많다. 밤샘을 하기도 하고 새벽녘에 일어나 하기도 한다. "일에 폭 빠져있을 때 굉장한 행복감을 느껴. 전각을 하거나 선화를 그리면서 새롭게 얻는 것들도 많아. 끝없는 자기와의 대화인 거지. 행위를 통한 나와의 대화. 언어가 없어도 대화를 할 수가 있는 거야."

참 좋은 인연입니다

감히 수를 헤아릴 엄두가 나지 않는 작업량과 깊이에 감탄하는 동안에도 그는 그러나 전각이나 선화가 삶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삶 속에 절대적인 존재는 없다. 모든 것은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과정일 뿐.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길지 않은 인터뷰 와중에도 그를 찾은 이들에게 일일이 차를 권하며 담소를 청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의 작품 속에 유독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는 시구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의 사람에 대한 이 같은 생각 때문이다.

"좋은 인연을 만들려고 몹시 노력할 뿐이지. 상대도 절대적인 존재거든. 각자 어느 한 쪽에 치우쳤을 뿐이지. 노숙자도 개인적으로 가장일 테고. 나름의 무엇이 있을 거야. 겉으로 봐서 내가 낫다고 해서 상대를 무시할 건 아닌 거라. 자본주의가 되다 보니, 사람이 스스로 행복을 짓밟고 고마워할 줄 모르게 됐어. 순간에 친한 사람도 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는 거지. 하지만 물질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거든."

한 번은 시집 표지 하나를 해주기 위해 일주일 밤낮을 고민한 적도 있다. 식사 중에도 숟가락을 놓고 작업실로 가기도 했다. 마음에 안 들어 처음부터 다시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시집 표지를 받은 사람은 고마운 기색도 없었다. 고생을 몰라준 상대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머지 않아 스님은 내면에서 새로운 세계가 일어선 것을 알게 됐다.

"작은 나무가 하나씩 일어서서 자리를 잡으면 집이 되는 거고, 중간에 멈춰서 일어서다 말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라. 그래서 남이 볼 때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대가들은 목숨을 던지고 작업하는 거야." 몇 달 전 전립선암 판정을 받아 수술을 앞뒀지만, 요즘도 그의 작업은 쉴 줄을 모른다.

인터뷰를 마치자 수안스님은 법당으로 기자를 데려갔다. 법당 앞에서 스스로 몸을 태우는 초의 향을 맡아보라고 권했다. 보통 초에서 나는 파라핀 냄새가 아닌, 달콤한 꿀 냄새가 났다. 벌집인 밀을 녹여 만든 초인데, 독일인 신부가 만든 초는 만드는 데도 공이 많이 든다고.

기다란 향을 하나 뽑아 들더니, 불을 붙여 향로에 세웠다. 향을 맡아보는 동안 스님은 말을 이었다. "나쁜 향이든, 좋은 향이든, 그만의 향이 있는 것이오. 자신만의 향기를 가진 사람이 되야 하는 거라." 밀초의 향기를 맡고 있자니, 오랜 시간 그만의 향을 피워 올린 노스님의 선화와 전각이 떠올랐다.
수안스님은..


1940년 통영에서 태어나 17살에 출가한 수안 스님은 통도사, 송광사, 백련사, 묘관음사에서 참선에 정진해왔다. 처음 선화를 선보인 것은 1979년 이리역 폭발사고가 일어나면서, 부산에서 이리이재민돕기 선묵전에 출품하면서부터다. 이후 1981년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통해 본격적인 선화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모나코 몬테카를로 현대미술전에 출품해 입상했다. 1989년 두 달간 유럽순회전을 열며 큰 화제가 되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11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던 수안스님의 초대전이 이달 말까지 부산KBS갤러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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