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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사 속 예술가들의 관계 찾기

음악칼럼니스트 정준호
'이젠하임 가는 길' 발간, 시대 넘나들며 작곡가와 소설가 등 연결
동떨어진 시대와 공간이 만나고, 장르가 예민하게 소통하는 텍스트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장르의 충돌은 단편적인 텍스트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며 입체적인 컨텍스트(context)를 완성해낸다. 읽는 즐거움과 지적 충만함이 배가되는 건 당연하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세 권의 책을 펴낸 음악칼럼니스트 정준호 씨는 방대한 인문학을 변주하며 지적 긴장감으로 팽팽한 글쓰기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부는 그의 책이 다소 어렵다 하고 또 다른 무리는 무척 흥미롭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 문학, 영화 그리고 신화와 성서에 이르기까지 그가 음악과 함께 엮어내는 이야기는 간단치 않다.

다른 예술은 차치하고라도 신화와 성서가 그의 책 속에서 중요한 스토리텔링의 단초가 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컨텐츠가 풍부하다는 점도 이유가 되겠지만 베토벤이 살았던 시대까지는 신화나 성서의 범주 안에 있던 시기라고 볼 수 있죠. 탈 신화하기 전이기 때문에 그들의 많은 노력이 들어간 작품이 종교적인 작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음악이 이것을 다루지 않게 되면서 음악이 정신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혹은 포기한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베토벤이나 브람스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시대로 인해 이미 종교적인 사람이었거든요."

최근 발간된 <이젠하임 가는 길>에서도 그는 시대를 넘나들며 작곡가와 소설가, 성서 속 인물들과 영화 속 주인공 사이를 연결한다.

현대 작곡가 힌데미트의 오페라 <카르디야크>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동시대를 살면서 똑같이 귀가 멀었던 화가 고야(고야는 이 책에서 두 번 더 등장한다)와 악성 베토벤, 작품 속 주인공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간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바그너의 작품에 심취해 동명의 소설을 썼던 소설가 토마스 만.

이들 외에도 클래식 음악사 속에서 유영하고 표류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정준호 씨가 찾아낸 연결 고리로 긴밀하게 맺어졌다.

책 제목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표현주의 시조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의 제단화>는 이번 저서를 관통하는 핵심 코드다.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작곡가 힌데미트는 <화가 마티스>라는 오페라를 썼다.

"원래 이젠하임 제단화는 성당 제단에 그려진 그림인데, 지금은 프랑스 콜마르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힌데미트는 <화가 마티스>를 시작으로, <카르디야크>, <우주의 조화>까지 예술가를 주제로 한 오페라 연작을 발표했거든요. 이들 작품을 비중 있게 다룬 것도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는 시각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간다. 특히 오페라에 애정을 느끼는 그는 예술의 총체, 종합 예술이라 일컬어지는 '오페라'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으로.

그가 첫 저서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부터 <스트라빈스키>에 이어 <이젠하임 가는 길>까지를 연작으로 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오페라가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던 형태의 그것 그대로가 아니라 발레를 거쳐 영화로 시대마다 스타일을 달리해 왔다는 말이다.

오푸스(opus), 곧 작품이라는 라틴어의 복수형인 '오페라'. 그것은 종합예술이라는 특성 탓에 처음으로 '말이 먼저냐, 음악이 먼저냐'라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적 장르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종합예술'의 형태가 영화로 옮겨오면서 헤게모니 역시 '영상'이나 '시나리오'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언제나 예술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오페라가 더 이상 3000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대 방식의 오페라 창작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소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내릴 수 없다면 이 작업은 현대에선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그는 클래식 음악에서 파생한 예술이 사람들 삶 속으로 들어오려는 '치열한'노력이 있어야만 과거의 영광도 가능할 거라고 덧붙였다. 그가 에필로그에 적었던 '보이지 않는 오페라'라는 말은 그래서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책 속에서 언급해온 오페라들은 지금까지 무대에서 거의 보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무대에 오를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 하나라면, 또 다른 하나는 이 시대엔 '영화'나 '인터넷'이 또 다른 형태의 오페라이지만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시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의 컨텐츠를 더해서 종합예술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은 어느 시대 누구나 가져왔었던 것이죠. 그 꼭대기에 있던 것은 언제나 오페라였습니다. 베토벤은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만들고 싶어했고 바흐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당시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었던 칸타타와 수난곡이었죠."

하이퍼텍스트로 구현할 수 있었다면, 연관성 있는 작품을 좀 더 긴밀하게 보아 좋았을 거라는 그는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에서 시작된 질문을 <이젠하임 가는 길>에서 '오페라'를 통해 이 둘이 결국 하나라고 정리했다.

일본을 한 번도 가지 않고 <국화와 칼>이란 책을 썼던 루스 베네딕트처럼 그 역시 이 책을 쓰면서 단 한 번도 현장에 가보지 않았지만 다음 책을 위해서는 벌써부터 현장에 발을 딛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다.

"아레초라는 이탈리아 도시예요. 이 책에도 나왔던 <십자가의 진실>이란 그림이 있는 곳이죠. 거기는 또 프란체스코 성인의 중요 도시이기도 한데요. 다음 책은 프란체스코가 좀 더 중점적으로 다뤄질 거예요."

이탈리아의 명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그려냈고 미국의 영화배우 미키 루크가 열연했던, 그리고 프랑스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 마지막 오페라로 주조해낸 이가 바로 프란체스코 성인이었다. 시대와 공간을 종횡무진하는 음악칼럼니스트 정준호를 사유를 통해 성 프란체스코는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지 기대를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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