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조선미 성균관대 박물관장국내 미술사 박사 1호… 35년 초상화 연국 집대성한 책 펴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1991년)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화가였던 여주인공 미셀(줄리엣 비노쉬)이 시력을 거의 상실하면서 세느강 퐁네프 다리에서 만난 곡예사 알렉스(드니 라방)에게 루브르미술관의 그림 하나를 보고 싶다고 소원하는 것이다.

루브르미술관의 수많은 걸작 중 미셸이 오직 보고자 한 것은 렘브란트가 노년의 자기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미셸은 촛불에 의지하여도 볼 수 없는 그림을 두터운 마티에르(질감)를 더듬으며 감상한다.

마치 그림 속 병을 앓고 있는 듯한 노인의 얼굴에서 사그라지는 자신의 운명을 어루만지듯.. 그러한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또 다른 감상자에게는 운명처럼 각인돼 평생 동반의 길을 열기도 했다.

서양의 자화상은 물론 동양 초상화 연구에 일가를 이룬 조선미 교수(성균관대 박물관장)를 이른다. 조 교수는 최근 35년 초상화 연구를 집대성한 <한국의 초상화-형(形)과 영(影)의 예술〉(돌베개)을 냈다. 한평생 외길 연구를 한 이들이 적지 않으나 자화상, 초상화 쪽은 국내에서 조 교수가 유일하다.

역작을 낸 후라 이젠 쉬어갈 만도 한데 조 교수는 다시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다. 근현대 초상화를 더해 한국 초상화를 완결하고 한중일 3국 왕들의 초상화를 체계적으로 종합하는 것이다.

박물관에서 만난 조 교수에게 우선 초상화를 필생의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게 궁금했다. 조 교수는 한국 미술사 박사 1호인데다 대학 때 전공은 외교학이다.

"어렸을 적 접한 미술이 좋아 줄곧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등 인물화가 인상적이었어요.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 중 '동양적인 것을 해보라'는 은사님의 조언으로 한국 미술사, 그 중에서 초상화를 연구하게 되었죠."

조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 고교생이던 언니를 따라 미술관, 박물관, 화랑 등을 드나들면서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이 훗날 초상화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조 교수는 1960년대 말 서울대 외교학과에 홍일점으로 입학한다. 김형오 국회의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하영선 서울대 국제정치학과 교수 등이 입학동기다. "어머니는 여자 외교관이 되길 바랐지만 미술사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미학과 청강을 하고 미국 유학생이던 언니에게 부탁해 미술 관련 책을 접하면서 미술에 푹 빠졌지요."

조 교수는 대학원(서울대 미학과)에서 큐비즘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서양 학문을 접했다.

그러나 유학 1년 만에 가업을 이으려는 남편과 함께 귀국해야 하는 상황에서 은사는 조 교수에게 "20세기 한국에서 일생 동안 공부하려면 동양적인 것을 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조언했다.

조 교수는 그간 흥미를 둬 온 한국미술사를 전공하기로 하고 초상화에 주력했다.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그들의 인물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리의 것을 생각하고 초상화를 공부하기로 했지요."

그러나 초상화 연구는 처음부터 녹록치 않았다. 흥선대원군 때 서원철폐령으로 초상화가 많이 없어진데다 초상화를 소장한 가문의 후손들도 아무 관계없는 젊은 여성에게 초상화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조 교수는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 옛 문헌을 연구하고 기록에 나와 있는 전국의 사당이나 영당, 서원 등을 샅샅이 찾아나섰다.

"농한기를 이용하다보니 주로 겨울에 다녔는데 춥기도 하고 교통이 끊긴 곳도 많아 힘들었어요. 그래도 몇차례 얼굴을 대하고 때론 떨고 있는 모습이 가엾어서 도와주기도 했지요. 초상화와 관련된 사건을 얘기하고 감동을 주면 그때서야 보여주는 등 에피소드가 참 많아요."

그렇게 8년여에 걸친 매진 끝에 조 교수는 1981년 <조선시대 초상화 연구>로 국내 1호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는다.

동양은 물론 서양에도 다수 존재하는 초상화(또는 자화상)와 비교해 한국의 초상화는 어떠한 특징을 가졌을까. 조 교수는 한국의 초상화는 그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후손들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닌 조상이나 선현 그 자체로 여겼다고 설명한다.

"초상화는 우리 문화며 역사이기도 하죠. 우리 초상화에는 왕이나 부모에게 보답하려는 사상과, 위대한 인물을 숭상하려는 정신이 깊이 담겨 있습니다."

왕의 초상인 어진(御眞)에 대한 조 교수의 해석을 들어보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당당함에 비해 불행한 왕조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고종의 지친 모습은 확연히 구별된다. 조선 부흥기를 이끈 영조의 모습도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무수리의 아들로 아직 왕세자가 못 된 젊은 연잉군은 앞날이 불투명해 다소 불안해 보이지만 군주가 된 영조는 치켜 올라간 눈꼬리에 과단성과 독선적인 인상이 엿보인다.

여느 국가와 다른 초상화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의 차이는 그대로 한국 초상화에 반영됐다고 조 교수는 설명한다.

"초상화는 형(形)과 영(影)의 예술입니다. 형은 그려지는 대상 인물 자체이지만, 영이란 그려진 초상화입니다. 형과 영은 실체(實體)와 가상(假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으로 표현되는 사람의 외적 모습은 자주 변하지만, 형의 배후에는 불변의 본질이 자리하는데, 이 불변의 본질이 내적 요소인 정신과 마음이라는 것이다. 형과 영의 관계성을 물었다.

"정신이나 마음은 외양의 배후가 아니라 하나의 중층구조(重層構造)로서 형과 서로 연계되어 있는 셈이죠. 그래서 화가가 어떤 특정 인물을 그려낼 때 형을 올바로 포착해 낸다면 자연스레 정신이나 마음 같은 내적 요소 역시 화면 위로 끌어 올려져 영으로 비추어집니다. 이를 초상화론에선 '전신사조(傳神寫照)'라고 하지요."

설명을 들으니 알듯하면서도 그 심오함이 깊이를 가늠키 어렵다. <열자(列子)>에 "몸이 바로 서면 그림자도 곧아진다(形直影正)"라는 구절이 있다. 그림자로 그 사람을 파악하고 그림자에 그것이 각인된다는 뜻이다.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사조(寫照, 빛을 그린다)'라고 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인물의 외형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성정까지 드러내는 우리 초상화만의 멋스러움이 아닐까.

한국 초상화는 구도나 작법에서도 외국과 차이를 보인다고 조 교수는 설명한다.

'털끝 하나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는 명제를 신봉해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 일본의 초상화와도 구별된다고 한다. 초상화가 감상 대상이 아닌 주로 제의(祭儀)용으로 쓰여져 실사 묘사에 철저했다는 것.

중국이나 일본 초상화에서 보이는 과장이나 신분의 특징을 보여주는 동작이 없고 표정 또한 매우 근엄하다. 여러명을 함께 그린 것이나 여성, 아이 초상화도 거의 없다. 그만큼 유교 사상을 생활은 물론 초상화에도 철저하게 적용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초상화가 단조롭고 규격화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외형상 그렇게 보이지만 화가의 주관을 최대한 자제하고 대상의 모습을 그대로 전하려고 해 초상화를 보면 '정신'까지 우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작법에서도 중국과 일본 것에 비해 매우 세밀하고요. 우리 초상화가 본연의 모습을 더 갖췄다고 볼 수 있지요."

조 교수는 서양의 초상화(자화상)를 먼저 연구했다. <화가와 자화상>(예당, 1995년)이 그 성과물이다. 한국 초상화와 서양 초상화와의 차이를 물으니 "서양 초상화가 개인적 성품을 넘어 인간의 보편성에 도달하려는 면이 강한데 반해 한국의 초상화는 개인성에 철저하다"고 말한다.

이어진 픽션(서양 초상화)과 논픽션(한국 초상화)의 비유가 흥미롭다. "픽션이 드라마틱하고 재미있지만 어떨 때는 논픽션(한국 초상화)이 아무런 재주를 부리지 않아 감동적이기도 하죠."

조 교수는 초상화를 연구하다 보면 민족의 특성과 기질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시대상황과 연결하면 역사를 통시대적으로 해석하고 조망할 수 있다는 게 조 교수의 해석이다.

화제를 돌려 조 교수의 35년이 넘는 초상화 연구의 외길을 물었다. 거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에 외롭고 지치지 않았느냐고. "그런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초상화 연구를)잘 했다고 생각해요. 초상화에 담긴 역사와 사람과 늘 대화할 수 있었기에 즐거웠고요. 앞으로 누가 이 길을 갈 것인가, 초상화가 외롭게 될까 그게 신경 쓰여요."

그런 조 교수에게 초상화와 관련한 향후 계획을 물으니 두가지를 밝힌다. 하나는 기존 연구성과에 근현대 초상화 연구를 더해 한국 초상화를 완결하는 것. 다른 하나는 한중일 3국왕들의 초상화를 집대성하는 것이다.

흔히 자화상은 역사를 성찰하는 중요한 흔적들이자 화가에게는 세상에 대한 해석의 창이라고 한다. 조 교수가 초상화를 통해 보여줄 역사와 세상이 자못 궁금해진다.

■ 조선미 교수는…
1947년 서울 출생.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미학 부전공), 서울대 미학과에서 철학 석사학위(미학 전공)를 받았으며,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에서 문학 박사학위(미술사 전공)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 문학부 Visiting Scholar, 미술사학연구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과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예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초상화연구>(열화당, 1983), <화가와 자화상>(예경, 1995),<초상화 연구-초상화와 초상화론>(문예출판사, 2007) 등이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