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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아름다운 그게 삶이죠"

14번째 시집 <몽해항로> 출간 '장석주 시인'
인생의 구체적 국면 담아
시, 소설, 비평, 에세이 등 전방위적 글쓰기의 달인, 장석주 시인이 열 네 번째 시집 <몽해항로>를 냈다. '민음의 시' 시리즈 2010년 첫 시집인 이 작품집에서 그는 남루하지만, 애틋한 삶을 노래한다.

검은 바다로 가는 길

"이 시집에서 말하려는 건, 살아있음이죠. 우리 생을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찰나적으로 생성, 소멸하는 것일 텐데, 그래서 애틋하고 아름다운 게 아닌가. 남루하고 비루한 것은 금방 사라지죠. 그래서 슬프고 아름다운 것. 그게 삶이겠죠."

시집의 제목이자 연작시의 제목인 '몽해항로(夢海航路)'는 말 그대로 '꿈 속의 바다(흑해)를 찾는 길'을 말한다. 여기서 '무겁고, 검고, 차가운 바다'인 흑해는 죽음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몽해란 말은 이시하라 신야라는 일본 여행작가의 글에 나와요. 삶은 짧은 낮에 꾸는 긴 꿈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인은 삶의 구체적인 국면들을 하나씩 담아낸다. 작품에 등장하는 '중국술', '두부 두 모'와 같이 일상 속 사소한 것들이 생명을 찬연하게 만든다.

'일국(一局)은 끝났네. 승패는 덧없네./중국술이 없었다면 일국을 출하할 수도 없었겠지./어젯밤 두부 두 모가 없었다면 기쁨도 줄었겠지./그대는 바다에서 기다린다고 했네./그대의 어깨에 이끼가 돋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려네.' (몽해항로1-악공(樂工) 중에서)

작품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그믐, 가뭄, 슬픔, 찬밥, 황혼녘, 먼 곳, 늙음, 소멸, 죽음 등 어두운 정서가 주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 어둠은 절망적이지 않다.

시인의 그늘은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문학평론가 문광훈 씨는 시집에 붙인 해설에서 "시는 단순히 먹고사는 일의 설움을 토해 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설움에도 불구하고 항의하고, 이런 항의 속에서 다시금 긍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초승달이 뜨고 모란꽃 지던 밤은/멀리 있었다, 밤엔 잠이 오지 않아/ 따뜻한 물에 꿀을 타서 마셨다./흑해가 보고 싶었다./물이 무겁고 차고 검다고 했다./날이 차진 뒤 장롱에 넣었던 담요를 꺼냈다./안성종고 이영신 선생이 올해 텃바타 수확물이라고/고구마 한 박스를 가져왔다.' (몽해항로3-당신의 그늘 중에서)

이 밖에 삶의 국면을 바둑에 빗댄 '바둑시편', 일상 속 성찰을 풀어낸 '저공비행' 등은 몽해항로 연작 시 6편과 맞닿아있다.

평론가 문광훈의 말처럼, 시인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추억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이 그리움을 지우며 담담히 생을 받아들이려 한다. 시는 아직 오지 않은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것들을 '지금 여기'로 불러오는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다.

'저 복사꽃은 내일이나 모레 필 꽃보다/꽃 자태가 곱지 않다./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어./좋은 것들은/늦게 오겠지, 가장 늦게 오니까/좋은 것들이겠지./아마 그럴 거야./아마 그럴 거야.' (몽해항로6- 탁란 중에서)

전대미문의 한 줄

시집의 노래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 형태는 맑고 투명하다. 일체의 장식성, 모호함을 배제한 최소의 언어로 시를 쓰고 싶었다고. 그의 시집은 기실 시집 맨 앞, 자서(自序)의 몇 줄이 관통하고 있는데, 시인은 맨 첫줄에 '결국 시는 한 줄이다'라고 썼다.

'한 줄로 압축할 수 없는 것은 시가 되지 않는다. 나와 너, 초(秒)와 분(分)들, 불과 재, 붉음과 푸름, 잎과 열매들, 발톱과 이빨들, 우연과 필연들, 지구 위의 강목과속, 저 우주의 변주곡을 한 줄로 압축할 것. 한 줄은 전대미문의 문장으로 쓸 것!' (자서自序 중에서)

"시는 언어를 취하되, 궁극적으로는 언어를 버려야 해요. 이런 모순 속에서 남는 게 시라는 거죠. 생명이 몸은 아닌데, 몸 없이 생명이 연장될 수는 없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관계라고 봐요. 그런 시의 궁극까지 한 번 가보자. 그런 마음으로 시를 썼어요. 몽해항로 연작시는 확 풀어버리는 반대편에 선 시들이고, 나머지 시들은 그야말로 뼈만 남은 시들이죠."

이 시집을 묶는 지난 3년 간, 그는 일본의 단시 하이쿠를 공부했다. 외줄 시 하이쿠가 세계적인 장르로 알려졌다면, 한국에는 옛 한시와 정형시가 최소의 언어를 취한 시라고 할 것이다. 2부에 실린 '모기', '벼룩', '소' 등 작은 생명을 다룬 작품들은 정형시의 율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밥물 안치려고/묵은쌀 씻으려니,/뜨물 위로/쌀벌레 두어 마리./내 양식/축낸 놈들이/바로 늬들이었구나!'(쌀벌레 전문)

'취객의 토사물에/달라붙은 중생(衆生),/함부로 비웃지 마라./먹고 사는 일은/숭고한 수행(修行),/장엄한 일이다.'(비둘기 전문)

장 시인은 이어 "<물은 천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붉디 붉은 호랑이>, <절벽> 등 이전에 발표한 3권의 시집이 자연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시집은 이미 그곳을 벗어나 있다"고 말했다.

2000년 서울 생활을 정리한 뒤 2만5,000권의 책을 싸들고 경기 안성으로 내려간 장 씨는 그곳 금광호숫가에 '수졸재(守拙齋)'란 집을 짓고 홍대 앞 작업실과 수졸재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도시에서의 삶이 갖는 부정성, 패배주의를 안고 경기도에 가서 자연과 만났다. 이전 3권의 시집이 생명력을 수혈받는 느낌, 자연과 접점에서 느끼는 기쁨을 그렸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더 먼 곳, 흑해를 바라본다"고 말했다.

"사실 시인이 시를 말하는 것보다 독자가 시를 읽고 와 닿는 지점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시가 와 닿는 느낌, 마음의 무늬를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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