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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구차한 현실에 적응한 도구"

전중환 경희대 교수
유전적 요인과 본성 강조한 진화심리학 에세이 <오래된 연장통> 출간
아이의 문제 행동을 소재로 삼는 한 TV 방송프로그램의 구원 투수는 '솔루션 위원회'다.

교육 전문가로 구성된 이들은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아이의 모습을 돌려 보며 '진단'을 내린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이가 떼를 쓰는데 어머니가 처벌은커녕 보상을 하고 있어요. 저게 문제입니다."

해결책은 자명하다. 어머니가 대응 방식을 바꾸면 아이는 달라진다. 위원회의 해결책이 진리처럼 선포되고 프로그램은 해피 엔딩을 맞는다. 바야흐로 문제적 자식을 둔 부모들에게도 희망이 솟는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이 프로그램이 장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주목하는 아이들의 범주에는 한계가 있고,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도 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

몇 회만 보면 충분히 우리 아이에게도 '응용'해볼만 하다. 그런데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계속되고, 부모들의 출연 신청도 끊이지 않는다. 도대체 왜?

"문제는 바로 솔루션 위원회"라고 전중환 경희대학교 교수는 말한다. "인간 행동을 외부 요인으로만 설명하기 때문이죠. 아이가 유전적으로 폭력 성향을 타고났을 가능성은 왜 배재합니까?

인간이 백지로 태어나 사회화에 의해 형성된다는 '빈 서판(blank slate)'적 사고는 문제를 단순화합니다. 'TV가 폭력성을 부추긴다' 같은 명제처럼요. 진단이 정확하지 않은데 해결책이 적절할리 없죠."

전중환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화심리학을 정식으로 전공한 학자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등의 번역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본성이 진화한 산물로 본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신체는 유전자가 스스로 보존하고 복제하기 위한 그릇이자 통로라는 '불경한' 학문이다.

전중환 교수는 최근 낸 대중적 진화심리학 에세이 책에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인간의 마음은 "초월적인 영혼도, 사회와 문화에 의해 무한정 주물러지는 요술 찰흙이 아니라 차라리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라는 뜻이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기보다 음식을 구하고, 비바람을 피하고, 남편의 바람기를 잡으려 적응해온 기제라는 것이다. 한 순간 뚝딱 만들어지지 않아서, 가끔 그 관성이 시대의 변화와 마찰을 빚기는 하지만 엄연한 유용성이 내재된.

지난 26일 전중환 교수를 만나 우리의 마음이 이런 꼴로 '설계'된 내력과 그것을 추적하는 의의에 대해 물었다.

작년부터 학부생을 대상으로 교양 강의를 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진화와 인간 본성'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했습니다. 짝짓기 전략부터 시작해 가족관계를 이루는 법, 나아가 다양한 문화 현상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내용입니다.

학생들이 잘 이해하나요.

여성과 남성의 짝짓기 전략 차이를 설명할 때 가장 흥미로워 합니다.(웃음) 인간의 본성과 소비, 문학, 음악, 종교 등을 연관하는 대목에선 놀라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도 진화로 설명할 수 있는지 몰랐다는 반응입니다.

종교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대한 반발은 없나요.

기독교 신자인 학생이 당황스러워 한 적이 있습니다. 강의 평가에 써 놓았더라고요.

종교 현상을 진화의 산물로 이해하는 것과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텐데요.

진화심리학자들은 종교를 다른 보편적 심리적 적응들에 우연히 딸린 부산물이라고 봅니다. <오래된 연장통>에서도 언급했지만 불확실한 상황을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믿는 성향에서 만들어진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종교도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가 사라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래된 연장통>은 한 웹진에 연재하신 글을 묶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셨나요.

애초 웹진의 목적이 과학 대중화였어요. 이를테면 제 처제? 음악을 전공했고, 자연과학 서적은 거의 읽은 적이 없는 처제도 과학을 재미있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화심리학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과 동시에 그 존재 의의를 계속 주장하고 계신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진화 심리학이 문학 비평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밝히신 부분이요.

진화심리학을 적용한 다윈주의 문학비평은 소설 속 등장인물의 행동을 보편적 인간 본성과 당시의 시대, 문학적 특수성을 결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가 시대를 뛰어 넘어 읽히는 것은 그 안에 공통된 감정적 기반이 있기 때문이죠. 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현상에 진화심리학을 적용하는 것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라는 인간의 지적 성취를 통합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서구에서는 실제로 이런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문학계 내부에서도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고요. 예를 들어 <문학적 동물The Literary Animal>의 저자 중 한 명은 <일리아드>를 전공한 영문학자인데 인간 행동을 동물학적으로 설명한 <털 없는 원숭이>를 통해 진화론을 접한 후엔 <일리아드>가 암컷을 둘러싼 수컷들의 암투로 읽혔다고 해요.(웃음)

내용을 해석하는 것뿐 아니라 창작 활동 자체,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보는 데에도 진화심리학이 기여할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는 인간 행동에 대한 사회, 문화적 요인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부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유전적 요인과 본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어떻게 방어하시겠습니까.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강간범이 이런 상황에서 강간을 할 수밖에 없게 진화된 심리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변명할 때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일 텐데요.

판사는 나는 강간범을 처벌하도록 진화된 심리 성향을 갖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겠죠.(웃음) 우리에겐 운명적인 하나의 심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심리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학습이나 외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부분도 있고요.

그 사이에서 생각해고 행동하는 겁니다. 다만 이런 작용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남녀 관계의 문제 중 상당수는 남녀 간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고학력 여성이 출산 후 직장을 그만 두는 문제에 대해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육아와 관련한 여성의 본성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채 사회 구조 탓만 합니다.

하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행복해지는 통로가 많다는 점, 관계를 통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는 아주 복잡다단한 문제가 돼죠.

가족 간 협동과 갈등, 먼 친족에 대한 이타적 행동, 근친상간이나 문란한 성관계에 대한 혐오 감정 등을 연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입니다. 엄마는 스스로 낳았기 때문에 자기 자식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아빠는 그렇지 못합니다. 결국 사촌 중에서도 유전적 연결이 가장 확실한 이는 이종사촌이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촌 중 이종사촌을 가장 아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빌딩이 불타고 있는데 이종, 고종, 친사촌 중 위험을 무릅쓰고 구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가설처럼 이종사촌을 구하겠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인간 행동을 유전적 요인과 관련해 해석하다 보면 허무하실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리처드 도킨스도 그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염세적 가치관을 퍼뜨려 놓고 당신은 어떻게 아침마다 일어나냐는.(웃음) 하지만 그는 아침마다 가슴이 뛴다고 답했습니다. 과학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지 않나요.

자연계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진화의 양상을 파악하고 지식을 얻는 것 말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제 아이가 11개월 되었는데요, 보면 기쁩니다.

저 아이가 내 유전적 형질을 타고나서 퍼뜨리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호르몬이 나와 스트레스가 줄어듭니다.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들어 바람도 못 피게 돼죠.(웃음) 나를 포함해 사람들이 왜 행동하는지 아는 지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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