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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발언은 이제 그만"

[한국 초대석] 소설가 이문열
안중근 일대기 그린 <불멸> 출간… 한 편의 평전 읽는 듯
'이문열은 "이미 한 봉우리에 도달한 자가 아니라 여전히 길 위에 선"작가라고 겸양을 보이지만, 한 평론가가 "이문열이란 이름 그 자체가 하나의 제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이미 당대 문학 저널의 비속한 비교가치 판단에 의하자면 우리 시대에 하나의 커다란 봉우리로 우뚝 솟아있는 작가이다.'

시인 겸 문학평론가 장석주 씨가 쓴 <나는 문학이다>의 '이 문화 권력이 누린 영광과 그늘 이문열'의 일부분이다. 장 씨가 말한 '한 평론가'는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다. 김윤식 교수가 그린 '문학의 지도'가 한국 문학의 표본으로 읽히는 작금의 문단 현실에서 그가 내린 이 한 줄의 정의는 작가 이문열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어 장 씨는 이렇게 썼다.

'한편으로(…) 이 시대의 기득권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반동'이라는 비판과 함께, 그가 자기 몫 이상을 누리는 "위험한 문화권력"이라는 혐의를 유포해 왔다.'

이 한 줄은 또한 작가 이문열이 저 찬란한 8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사회적 발언으로 문인보다 '보수 반동으로 찍힌' 10년의 세월을 말하고 있다. 그 '잃어버린 10년'에는 작가의 정치적 발언과 책 장례식, 장편<선택>과 <아가>, <호모 엑세쿠탄스> 출간과 맞물린 사회적 논란이 있다.

그를 둘러싼 논란은 한편으로 작가의 영향력을 반증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그가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뛰어넘어 '이름 자체가 하나의 제국'인 문화권력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그가 최근 안중근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불멸>을 냈다.

죽어 천 년을 살리라

"눈이 와서 길이 좀 막히네요."

명동 에비뉴엘 레스토랑 <안드레아>에 들어서며 그가 멋쩍게 웃는다. 오전 11시에 만난 그는 이미 공개 강연과 라디오 방송 녹음, 두 개의 일정을 마치고 온 참이었다. 인터뷰는 애초 그의 집필실 '부악문원'에서 진행하려다가 방송과 인터뷰 일정이 늘어나는 바람에 날짜를 미뤄 신문사 근처로 잡은 터였다. 작가는 인터뷰 후에 다시 두 개의 일정이 남았다고 했다. 그는 "2000년대 나온 작품 세 권이 제일 안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고 말했지만, 빼곡한 일정은 그의 영향력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신간 <불멸>은 안중근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소설은 정치를 모르고 민족의식이 흐린 혈기 넘치는 청년의 모습, 가톨릭에 귀의한 뒤 탐관오리의 폭압과 착취에 맞서는 과정과 이 과정에서 무리해 보이는 고집스러운 장면 등 안중근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대중이 기억하는 것과 달리 청년시절 안중근은 개화파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청나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자면 일본 세력과 연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청, 일본 등 외세의 본질을 파악하게 되고 러일전쟁 후 일본의 국권침탈이 가속화하자 민중운동에 골몰하게 된다.

"2005년에 뮤지컬 <명성황후> 제작자 윤호진 씨가 후속작으로 안중근을 만드는데,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했어요. 몇 달 검토를 하다가 도저히 뮤지컬로는 제가 쓸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대본은 안 썼는데, 작년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서 신문사에서 연재 제의를 하더라고요."

지난해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 작품은 원고지 2000매에 이르는 긴 작품.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이 덧붙여진 소설은 한 편의 평전을 읽는 듯하다. 작가 특유의 유려한 문체와 서사는 이번에도 힘을 발휘하는데, 이를 테면 역사적 인물과 사실을 토대로 시간대별로 기술하면서도 곳곳에 작은 사건을 잇달아 나열해 끊임없이 갈등 곡선을 만들고 이 곡선을 넘으며 치기 어린 청년이 한 사람의 의사로 거듭나는 모습이 연출되는 과정이다. 작가는 "베토벤을 가지고 <장 크리스토프>를 쓰듯이, 완전히 변형시켜 쓰고 싶었는데 안중근 의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안 의사의 매력은 굉장히 순결한 사람이란 거예요. 답답하고 우스꽝스러운 정도로. 또 한편으로는 가톨릭 영향이겠지만, 어떤 경건성이 있어요. 작품에서 안 의사가 술집에 가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기생 때리는 얘기가 나오죠? 얼마나 답답한 사람이에요? 소설에서 안 의사 로맨스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로맨스를 만들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끊임없이 아내만 나오죠."

문학의 정치화

작가 이문열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관련 검색어로 '이문열의 삼국지'와 '이문열 소설'에 이어 '이문열 아버지'와 '이문열 보수'란 단어가 뜬다. 2000년 이후 작품보다 정치, 사회적 발언이 논란이 되며 이제 그의 이름 석자 앞에는 문인보다 보수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리고 그의 보수성은 월북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추측과 그 트라우마가 소설 전반에 이르는 보수성과 무이념성, 관념성을 만든 배경이란 해석이 뒤따른다.

이점에서 역적의 자식으로 한 평생을 떠도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일생을 그린 소설 <시인>은 마치 작가의 일부분을 투영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당신이야 일평생 좋아서 떠도셨겠지만 나는 뭐고 어머니는 뭔가요. 당신은 당신의 한을 이기지 못해서라지만 그게 새로운 한을 기르고 있었다는 것은 모르셨겠지요. 당신은 아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를 들으며 자라야 했던 내 한을 아시는지요'같은 대목 말이다. 그에게 "아버지가 삶의 족쇄이자 문학의 자양분이란 점에서 <시인>이 마치 작가의 분신 같이 느껴졌다"고 물어보았다.

"<시인>의 김병연(김삿갓)이 마치 그래서 시인이 되듯이, 나도 아무 탈 없는 중산층에서 태어나 내 삶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었다면 오히려 문학을 안 했을지도 모르죠. 그게 작가의 자산이 됐을 수도 있고. 오히려 한편으로 문학 할 수 없는 환경이 됐을 수도 있고."

2000년대 초반 격렬한 폭격을 맞았던 그의 칼럼들, 책 장례식, <선택>과 <아가>로 불거진 반페미니즘 논쟁까지 작가는 이 한 시절을 "내상이 생겼다"고 자주 회고한다. 이는 기실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정확하게 "부정적인 영향"이라고 말했다. 처형하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엑세쿠탄스>는 이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투사한 작품. 소설전문 인터넷 사이트 '이노블타운'에 연재했던 이 작품은 절반가량 연재 후 전작한 작품이다.

"<호모 엑세쿠탄스>같은 경우 제가 봐도 조금 거북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제가 그것(인터넷 안티) 때문에 화가 나있고 비뚤어져 있었죠. 예를 들어서 독자에게 부담을 줄 만큼 관념적이고 엄숙한 부분이 작품에 있는데, 그걸 저도 알았어요. 근데 인터넷에 쓰는 작품이라 더 오기가 생긴 거죠. '내가 나긋나긋하게 감수성에 호소하고 그런 글 쓸 줄 알았지? 천만에 더 깊이 써보겠다.' 이런 오기가 발동했고 그래서 그 책이 더 무거워졌어요. 피해를 입은 거예요."

<호모 엑세쿠탄스>의 경우 거의 날 것에 가까운 정치 세태 풍자가 드러난다. 이 부분이 다시 정치적 논란이 됐다. 혹자는 작가의 정치색 자체에 대해서, 혹자는 독자의 해석과 고민이 담겨야 할 민감한 문제를 작가가 일방향적으로 주입하면서 차단하는 문학적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작가는 "작가와 독자는 일방향적으로 강요하고 강요받는 사이가 아니다. 나는 독자에게 생각하게 하고자 화두를 던지고 주제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문학의 정치화'가 아니죠. 진짜 문학의 정치화는 문학이 정치적인 고려나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되고 소모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거든요. 문학을 문학으로 보지 않고, '이 작가는 정치적 발언을 많이 했으니까 문학작품도 정치적이야' 이렇게 치부해 버립니다. 무슨 그런 정치화가 있습니까?"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묵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찍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초 간담회에서 "시대와의 불화가 아니라 시대적 왕따"라고 말했다. 신간 <불멸>을 내며 그는 "정치적 발언은 자제할 생각"이라고 못 박아 두었다.

"가치 우선순위가 달라진 거죠. 예전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까 내가 말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치적 시비에 관해 발언하는 것이 꼭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또 무엇보다 저는 문학을 하는 사람인데, 작가로서 제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길어도 10년 남짓이에요."

독자로 읽는다

사회 논쟁으로 가려졌지만, 그는 한국 현대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맥 중 하나다. 신간 <불멸>을 포함해 장편 소설과 소설집만 스물일곱 편을 발표했고, <삼국지> 등 고전해설서와 시평, 에세이 등을 합하면 90여권에 달하는 책을 펴냈다. 여전히 정력적으로 글을 쓰며 몇 년간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으로 매년 수십 권의 신작 소설을 읽는다.

그의 정치색과 발언에 비판적인 평론가들조차 그의 문학적 열정과 작가적 성실성, 미문의 문장과 완성도 높은 작품 세계에는 찬사를 보낸다. 각각의 등장인물은 뚜렷한 전형성을 지니고 있고 서사적 갈등을 고조시키는 플롯의 배열은 동세대 작가 중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소설적 밀도가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소설은 독자를 무의식적으로 몰입하게 만들 만큼 서사적 흡입력과 가독성이 높다.

"공감대를 곧 잘 얻어내는 부분은……. 내가 독자로 내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겠죠. 독자를 잊지 않는다는 건 '내가 남의 소설을 읽을 때 왜 읽었는가? 무엇을 기대하면서 읽었는가?'를 생각한다는 거죠. 어떨 때는 시간 때우기 위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았고, 또 어떨 때는 '그걸 읽어야 시대를 읽는다'란 생각에 그래서 정보나 교훈을 기대하면서 읽기도 하고. 목적은 각기 다르지만 독자로서 기대치를 잊지 않고 쓴다는 거죠. 저는 작가가 됐다고 독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최근 환상적 리얼리즘 등 다양한 기법을 선보이는 발랄한 작품들에 대해서.

"요즘 젊은 작가들은 사소한 것, 혹은 미세한 것을 깊이 있고 잔잔하게 풀어내는 방식에 대한 선호가 있죠. 그건 뭐 호오를 가를 만한 기준은 안 되고 작가의 선택 아니겠어요? 다만 문학시장하고 관련지어 볼 때는 그게 문학시장을 축소시키는 원인은 될 거예요. 왜냐면 거대담론은 굉장히 전파력과 폭발력이 있어요. 미시담론은 아무래도 폭발력이 떨어지죠. 그런 면에서 출판전략으로서 혹은 판매전략으로서 차이는 있겠지만, 문학으로서 본질적인 가치로서 차이는 특별히 있을까요?"

작가는 '내상'을 입었던 당시를 말할 때 목소리가 커졌고, 문학에 대해 말할 때 말이 빨라졌는데 앞으로 쓸 작품에 대해 말 할 때는 말이 많아졌다. "80년대 한국사회 이야기 또는 여성과 성에 대한 작품을 쓸 생각"이라고 말하던 작가는 다시 두 개의 구상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며 중간중간 "내 소설이 정치적으로 읽히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소설가. 현실을 하나의 체계로 인식하며 작가 자신의 실존적 번민을 형상화한 작품을 썼다.'

인터넷 백과사전에 실린 작가 이문열에 관한 정의다. 이름 자체가 하나의 제국이자 위험한 문화권력, 보수 지식인. 그를 둘러싼 모든 수식어를 걷어내고 그가 남길 단어는 이 한 줄일 터다.

이문열


1948년 서울 출생. 경북 영양 등지에서 성장 / 서울대 국어교육과 중퇴
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 당선 등단
94년~97년 세종대 국문과 교수
98년~현재 부악문원 대표

▦소설집 <사람의 아들>(1979) <젊은 날의 초상>(1982) <금시조>(1983) <칼레파 타 칼라>(1985) <필론의 돼지>(1989), 장편 <황제를 위하여>(1982) <영웅시대>(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추락하는 하는 것은날개가 있다>(1988) <시인>(1991), 대하소설 <변경>(1998) <대륙의 한>(1995), 평역소설 <삼국지>(1988) <수호지>(1994), 산문집 <사색>(1991) <시대와의 불화>(1992) <신들메를 고쳐 매며>(2004)

▦오늘의 작가상(1979) 동인문학상(1982) 이상문학상(1987) 현대문학상(1992)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2)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92) 21세기문학상(1998) 호암예술상(1999)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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