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신재희 겸손, 절제, 관용 한국적 가치관 패션으로 표현… 해외서 호평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찾고자 했던 것을 과거 속에서 찾는 시도, 우리 역시 여느 부족 사회 못지 않게 이국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발견과 우리에게도 구조주의적 분석이 가능한 마녀와 설화가 있다는 인식은 이국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삼고자 했던 초기 인류학의 역전이다.」 - 조나단 프리드먼

한국과 프랑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슷한 성향을 지닌 재미있는 계층이 발견된다. 한량과 댄디가 그것으로, 특별한 수입 없이 놀고 먹는 주제에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와 위트를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둘은 놀랍도록 닮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한량에게 미덕은 학문이요, 댄디에게 미덕은 꾸미기였다는 점이다. 댄디가 하루에 2시간 이상을 몸치장에 소비한 결과 프랑스 복식사에 길이 남을 패션 아이콘이 되어 지금도 디자이너들에게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는 반면, 한량의 후줄근한 도포 자락은 후대의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아무런 영감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서구에 잠식당한 한국 패션은 조상 탓인가? 물려 받을 스타일이 없다면 배움과 청빈을 중시했던 민족의 가치관을 패션으로 형상화 하면 어떨까? 치장에 쏟는 시간을 부끄럽게 여기고 정신을 먼저 살찌웠던 우리의 조상들이 허투루 산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디자이너, 번뇌를 형성화하다

재희 신 2010 F/W 컬렉션
"삶을 마주하는 태도는 국가나 민족마다 다릅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와는 다른 한국의 가치관이 그들과 우리를 차별화 시키는 원동력입니다."

디자이너 신재희는 지난 3월 서울컬렉션으로 국내 패션계에 데뷔했다. 그러나 그 전부터 그는 유명인이었다. 이탈리아 패션 명문 마랑고니의 5년 교육 과정을 3년 만에 마쳤다는 점, 바로 아르마니에 입사해 3년간 디자이너로 일한 경력, 그리고 그곳을 나와 남성복 전시회 피티워모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참가했다는 점.

세계 진출을 위해 한발한발이 조심스러운 한국인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그는 확실히 인상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서구 패션계가 반응한 포인트가 존 갈리아노 뺨치는 획기적 디자인도 아니요, 아르마니의 독보적 실루엣을 뛰어넘는 패턴도 아닌, 그가 패션에 담고자 한 철학이라는 사실이다.

겸손과 절제, 관용.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서구에는 영 낯선, 아니 최근에는 솔직함이나 자신감이라는 가치에 밀려 우리조차도 의미를 잊고 지낸 미덕에 대해 이야기했다. 젊음의 탱탱한 몸을 숭배하고 드러내며, 문명의 빠르고 무한한 발전을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그들에게 있어서 감추고, 절제하고, 번뇌하는 패션이라는 것은 뒤통수를 망치로 때리는 것만큼 큰 충격이었다.

신재희와 그의 브랜드 '재희 신(Jehee Sheen)'의 컬렉션을 두고 현대 사회의 한 줄기 희망이라고 표현한 프랑스 잡지 에서는 그를 디자이너이자 '네오 휴머니즘'의 철학자라고 명명했다.

당신이 옷에 부가한 철학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패션에 철학을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

새로운 남성복의 기준을 가지고 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때부터는 다른 디자이너들과의 경쟁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으로 변한다. 그것은 신인 디자이너가 디올이나 아르마니 같은 기존의 강자들과 부딪치지 않고 자기 시장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옷에 담고자 한 것이 한국의 철학인가?

처음에는 한복의 형태적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국제적 감각과 맞지 않았다. 한 민족의 의상을 국제화 시키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그 정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삶을 마주하는 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이탈리아의 옷이 섹시함을 중시하고 프랑스의 패션이 사치스러움과 예술적 가치를 상징한다면 내 옷이 드러내는 것은 당연히 한국의 가치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태는 서구의 표준 복식을 따라 가되 그 옷이 말하는 것은 겸손함, 내적 성찰, 조화, 자연과의 교감에 관한 것이다.

겸손을 옷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주로 핏에서 드러낸다. 허리를 바싹 잡거나 근육을 드러나게 한다면 그건 도발적인 의미다. 허리는 적당히 풀어주고 어깨는 과장되지 않게 타이트하게 잡아 단정하게 디자인한다. 셔츠와 라펠의 모양에서도 극단적이거나 화려하게 디자인해 공격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절제하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한다. 아직 정식 광고 사진은 없지만 앞으로 찍는다면 '재희 신'의 이미지는 기도하거나 절규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을 서구에서는 어떻게 받아 들이나?

그들은 주로 현상과 아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하기 때문에 번뇌가 패션의 주제가 된다는 것을 대단히 생소하게 생각한다. 패스트 푸드처럼 간편하고 실용적인 서구와 우리는 근본적으로 패션 코드가 다르다. 무게감 있게 축축 처지거나 토테미즘이 느껴지는 등 한국 옷에는 한국만의 아방가르드가 있다. 지퍼로 여미지 않고 끈으로 묶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완전히 새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랑고니 조기졸업 전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아니, 그건 별게 아니고 (웃음). 마랑고니 일반코스에 2학년으로 편입했는데 3학년 과정을 마칠 즈음 교수님들의 만장일치로 4학년을 건너 뛰고 바로 최종 코스인 마스터코스로 월반한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기는 했다. 유학 중인 패션 전공자들 중에는 교수가 한국인들을 노골적으로 싫어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촌스럽다고.

그런 식의 인종 차별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사실 그건 한국인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가기 전 내 담당 교수가 한국 학생들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감히 차별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만큼 월등하게 잘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내가 낸 과제는 다른 학생들에게 본보기로 사용되곤 했다.

건국대 의상학과 3학년을 장기 휴학 중이다. 실례지만 한국에서 공부할 때도 두각을 드러낸 편이었나?

그땐 노는 걸로 두각을 드러냈다 (웃음). 고등학교 때는 역사 선생님 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건 디자이너를 잘 몰랐을 때 이야기고, 고 3 때 우연히 남자도 패션 디자이너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교과 과정이 너무 여유로웠다. 자연히 과외 활동이 많아져서 혼자 옷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동대문에서 일도 해보고 심지어 모델 생활도 잠깐 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을 때까지 공부 빼고 뭐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이번 서울컬렉션에서 우수 디자이너 10인 중 한 명으로 뽑혀 6월에 트라노이 전시에 참가하게 됐다. 사실 그것 때문에 좀 정신이 없다. 내년 S/S 컬렉션을 몇 달 당겨서 좀 급하게 선보이는 셈이다. 이번 컬렉션은 브랜드의 철학을 굳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Born-Nature'를 주제로 자연 속에 담긴 인간의 순수함을 표현하려고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재희 신의 옷을 살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의 전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지속적으로 해외 전시회를 통해 재희 신을 알릴 것이다. 빠르면 내년이나 내후년 경 파리에 쇼로 참석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도 진출 여부를 타진 중이다. 현재 국내 백화점 편집숍에 입점이 확정되어 마지막 협의 중이다. 곧 재희 신의 옷을 국내에서도 볼 수 있다. 참고로 국내에서는 해외에서보다 좀 더 싼 가격에 선보일 예정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