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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란 쉽지만 어려운 무엇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책 사용법> 출간, 디지털 미디어시대 아날로그 독서법 의미 되새겨
인터넷 국어사전에서 보통명사 '책(冊)'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 '일정한 목적, 내용, 체제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

하지만 e-북의 등장으로 이 같은 책의 정의도 바뀔 날이 머지 않았다. 온갖 사용법들이 난무하는 시대, '책 사용법'의 등장도 가능하다. 그래도 '책 사용법'은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읽는 용도 외에 책에 어떤 사용법이 있단 말인가.

이런 단언에 오기라도 부리듯 '책 사용법'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이가 있다. 26년차 베테랑 편집자인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다. 책 사용의 전문가인 정 대표가 말하는 책 사용법이란 냄비 받침으로 사용한다는 식의 농담이 아니다. 좋은 책을 고르고, 그 책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고, 상상하고, 다시 활용하는, 말 그대로 책을 사용하는 모든 것에 관한 방법이다.

스마트폰과 전자책이 화두인 시대, 책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니, 새삼스럽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은숙 대표가 <책 사용법>을 쓰게 된 것도 비슷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언제부턴가 독서가 쉬운 일이 아니게 됐잖아요. 그래서 책을 너무 어렵지 않게 대하는 법을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책이란 건 저자의 오랜 사유가 담겨 있는 전문적인 연구의 결과물이거든요. 그래서 동시에 독서란 만만치 않다는 걸 느껴보라는 중의적인 목적도 있죠."

처음부터 끝까지 각 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책'의 난무 속에서 정 대표가 말하는 독서란 과연 쉽지만 어려운 무엇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2년 동안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채워낸 각 장에는 책에 대한 경외감이 스며 있다. 특히 이 책에 인용된 52권의 '책에 대한 책'들은 독서라는 행위가 일종의 여행과 같음을 말해준다. 책은 그 한 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책과의 대화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대표 역시 이 같은 성찰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놓는다. 책이 세계 그 자체라는 거창한 대답이 생각나기 전, 그의 영혼을 최초로 강타한 것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깊은 병이 들었는데 그 사실을 모른다면 어떨까요? 책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병을 낫게 하기도 합니다."

이런 '치유'의 기능을 비롯해 대화, 오락, 지식, 인간학 등 책의 여러 가지 기능들은 <책 사용법>을 구성하는 각 장의 내용들이다. 동시에 이는 우리에게 왜 책이 필요한가에 대한 병렬식 답변들이기도 하다.

정은숙 대표가 이처럼 책 예찬론자가 된 건 비단 26년 된 그의 업(業)때문만은 아니다. 전주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양질의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하고 싶은 문화적 욕구가 강했지만, 지역적 한계 때문에 희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그를 충족시켜준 것이 바로 책이었다.

"다른 장르와는 달리 책은 지역차가 없이 어디에나 똑같은 내용으로 찾아오잖아요. 그래서 저는 책 속에서 전시회를 가고 공연을 관람하고 영화를 볼 수 있었어요. 책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거죠."

누구나 비평가가 되어 냉혹한 독설을 하는 시대지만, 정 대표만은 여전히 너그러운 관객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8천 원 정도밖에 안 하는 가격으로 수백 억 하는 영화를 보는 거잖아요. 비슷한 가격의 책에도 저자의 인생과 고민이 담겼다는 걸 감안하면 너무나 고맙죠."

책에 대한 이런 생각들은 10년 전 창립한 마음산책의 출판 노선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이 지닌 아우라를 극대화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고, 정보 전달의 효능은 최대화하면서도 품위 있는 책을 내자는 것.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정 대표는 그간 출간한 책 중 이해인 수녀의 <희망은 깨어있네>, 김용택 시인의 <시가 내게로 왔다>, 박찬욱 감독의 <오마주>와 <몽타주>, 요네하라 마리의 <발명 마니아> 등을 성공작으로 꼽았다.

"공통적으로는 저자의 원숙한 삶의 자세와 진정성이 묻어나는 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들을 많은 독자들이 책 속에서 발견해준 것들도 있구요. 그런 점에서 좋은 책은 독자들이 만들어가는 측면도 있다고 느낍니다."

한 눈에 봐도 마음산책의 특성을 말해주듯 정 대표의 서재에는 문학과 예술, 인문학 위주의 책들이 꽂혀 있다. 특히 문학 책을 많이 보는 데에는 그의 또 다른 정체성(시인)도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문단에 등단했지만 그는 지금은 시를 거의 쓰지 않는다며 멋쩍게 웃는다. 대신 그는 책의 제목을 지으며 새로운 시 쓰기에 몰두해왔다. 그 결과 정 대표가 마음산책에서 쓴 시는 벌써 180여 종이나 됐다.

비록 쓰지는 않지만 시는 여전히 정 대표가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2004년 냈던 <편집자 분투기>에서 그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주를 통해 '바깥의 사유'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경우, '바깥의 사유'는 예술이고 그 중에서도 시다.

"시(詩)라는 한자를 보면 언어의 사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사원을 자유로운 사유가 가능해지는 자기 마음의 바깥에 있는 처소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시를 많이 읽으면서 일상이 아닌 다른 차원을 꿈꿔보곤 합니다."

<책 사용법>이 다루고 있는 책이 '종이책'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도 그의 이런 '아날로그적 독서법'과 연관된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아날로그 독서법은 시대에 역행하는 주장 같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전자책을 읽든, 문서 다발을 읽든, 정보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몸의 근육이 독서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판단인데, 판단한다는 것은 정보에 대한 해석이 전제되어 있잖아요. 실제로 읽은 책의 앞뒤 맥락을 잘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스스로 물어야 해석이 됩니다. 그냥 따라읽는 데 그쳐서는 감상적인 평만 남을 수 있지요. 그래서 아날로그적 독서법은 중요합니다."

정 대표는 e-북 단말기 출시에 따른 전자책 혁명은 오히려 출판계의 새로운 기회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에 대비하고자 마음산책을 포함해 50개 출판사를 연합한 KPC(Korea Publishing Contents)를 만들었다. 전자책을 만드는 방식에 대한 공부도 병행 중이다.

"왕성한 호기심과 이해심, 그리고 언제나 '나는 학생이다'라는 자세로 배우고 익히는 태도야말로 좋은 편집자의 덕목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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