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 출간 삶의 순간포착 정결한 언어로 다듬어

사진 ⓒ 백다흠
1. 문학의 모양새는 제각각이지만, 흔히 우리의 머릿속에 시는 두 길로 나뉜다. 하나는 자연의 본질과 삶의 원형에 인간의 희로애락을 연결시켜 노래하는 서정시, 다른 하나는 이미 확립된 가치와 표현법을 부정하는 가운데,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생경하게 드러내는 해체시다. 김소월과 한용운, 서정주로 흐르는 일련의 시사(詩史)에서 드러나듯, 한국 시의 뿌리는 서정에 있다.

2. '제 시를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로 사람을 짐작하다가는 큰코 다친다.'(김연수 27페이지)

영화배우가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건 아니듯이, 시인과 시적 화자도 엄연히 다른 존재다. 2000년대 시는 이 사실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황병승이 '내 안의 무수한 나'로 분화된 화자들이 쏟아낸 말을 담아낸다면, 김행숙의 시에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배우의 아우라가 배역에 스며들 듯, 시인과 시적 화자의 관계 또한 그러할 것이다.

3. 시인 장석남은 이제까지 여섯 권의 시집을 냈다. 첫 시집에 해설을 쓴 홍정선은 그의 시를 가리켜 '뒤로 걷는 언어들'이라 했다. 추억 혹은 고향으로 가는 시를 썼다는 뜻이다.

시인과 시의 화자는 별개라지만, 섬사람이 도회로 와 문명인이 되려 했을 때 일련의 슬픔과 외로움을 있었을 터, 초기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등 일련의 시집 속 화자 역시 이런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새와 달, 바람, 꽃, 별 같은 사물이 그리는 순하고 여린 풍경은 아련하고 쓸쓸한 비애를 담고 있다.

이 섬세한 언어는 네 번째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과 다섯 번째 시집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에서 죄의식으로 변주된다. 가령 미당과 수영이 변증법적으로 만난 '시인은' 같은 시.

'시인은 시를 근심할 뿐이다/정치를 근심한 이후에도/정치는 저희들의 똥을 뭉개고 저희들끼리 헹가래를 친다/시인은 정치를 근심하기 이전에 이미 정치가이므로/시를 근심할 뿐이다/(…)/시는 이미 무위를 넘어가는 행위여야 했으므로/행위를 넘어가는 무위여야 하므로/깨지는 얼음장 위를 달려서 너에게로 가는/전속력이어야 하므로'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시인은' 중에서)

장석남의 여섯 번째 시집 제목은 '뺨에 서쪽을 빛내다'이다. 시인이 말했다.

"이제 제 생의 반이 접히는 때잖아요. 서쪽은 인생 후반에 대한 상징 같은 말이죠. 뺨이 빛나다, 얼굴이 빨개졌다는 뜻인데, 나이 들면 속화되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반성으로 쓴 시들이에요."

그의 시는 서정과 윤리 사이를 변주하는 노래들이다. 요컨대 그의 시 뿌리는 서정이고, '시로 사람을 짐작하다는 큰코 다치'지만, 이 노래는 시인의 체험에서 비롯됐을 터다.

뺨에 서쪽을 빛내다

'나는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 서늘함에서/ 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씁쓸한 뒷맛에서/그리고//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사랑은 늘 이보다 더 조심스럽지만/ 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 (시 '묵집에서' 중에서)

블랙커피만 드시는 어머니가 말했다. 쓴 맛은 귀한 맛이라고. 아리송한 이 말은 쓴 맛은 인생의 맛이라는 대목에서 깨달음으로 바뀐다. 묵과 물, 시금치를 맛보는 시인의 혀는 블랙커피를 드시는 내 어머니의 혀와 닮아 있다.

'물맛을 차차 알아간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맨발인,// 다 싫고 냉수나 한 사발 마시고 싶은 때/ 잦다// 도르마가 끝나 땀 훔치고 이제/ 내리닫이, 그 언덕 보리밭 바람 같은,// 손뼉 치며 감탄할 것 없이 그저/ 속에서 훤칠하게 뚜벅뚜벅 걸어오는, 그 걸음걸이'(시 '물맛' 중에서)

"시골에 오두막집 하나 지어서 묵으면서 느낀 걸 쓴 거예요. 자연 속에서 나이를 되돌아보는 시들인 셈이죠. 유년에는 물맛이나 묵 맛을 모르죠. 중년의 자연 속에서 느끼는 반성 같은 거죠."

사회적 자아 속에서 갈등 자아를 보여주는 이런 일련의 시들은 시집의 후반에 실려 있다. 시인은 "4,5번째 시집을 묶었을 때 내 내면에서 하고 싶은 말, 혹은 상처를 내뱉어서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 이야기를 벗어나서 방법적으로, 내용적으로 새로운 모색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은둔자/ 산 속에 가만히 가부좌를 하고/ 별을 헤듯 돈을 센다/ 지적도를 보고/ 땅값을 계산한다/ 구약을 조금씩 읽으면서도/ 돈을 센다/ 돈은 나를 센다/ 나는 은둔자' (시 '은둔자' 중에서)

서정과 윤리 사이에서

서정과 윤리 사이의 간극은 '문 열고 나가는 꽃 보아라'처럼 미당의 자취가 어른거리는 시와 김수영의 기운이 느껴지는 '너무 늦지' 같은 시 사이의 간극, 그 거리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언어적 공간, 틈 여백을 우리 삶의 풀 수 없는 비밀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가 쇼트(shot)와 쇼트 사이에서 파생하는 이미지의 균열을 드러내는 예술이라면, 시는 행과 연 사이 단어의 긴장에서 비롯되는 예술이다. 요컨대 영화건 문학이건, 예술은 드러내는 것과 드러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시작한다. 시와 잠언이 갈리는 것은 이 순간일 터다. 물론 이 드러냄과 드러내지 않음을 사용하고 읽는 방식도 시대와 세대마다 변화를 갖는다. 김소월이 우리말의 리듬과 호흡을 극대화시킨 방식으로 행과 연을 나누었다면,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은 이미지 배열과 조합을 위해 행과 연을 '이용'한다.

장석남의 그것은 어떠한가. 방법적, 내용적 새로운 모색이란 무엇인가. 시인이 말했다.

"인생을 나누는 뚜렷한 계기가 있겠지만, 구원은 그 속에 있다기보다는 작고 미묘한 순간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담는 데 적합한 장르가 시겠죠. 하찮은 것, 삶에서 보이는 여백. 그런 곳에 주목하는 게 행과 연을 나누는 기준이겠죠."

'신발 벗어놓고 꽃 속으로 들어간 매화 분홍/ 신발 벗어놓고 열매 속으로 들어간 살구 분홍// 신발 벗어놓고 겨울 속으로 들어간 첫서리의 분홍// 신발장을 정리하며 지워지지 않는 분홍의 핏자국들을 만진다// 나는 그 얼룩들의 술래였다'('술래1' 전문)

이렇듯 시인은 제 삶의 순간을 포착해 정결한 언어로 다듬어낸다.

"자기 안에 또 다른 자아를 이 시들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저도 어떤 풍경에 투영해서 저를 발견한 시니까요."

50여 편의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의 삶과 내면의 변화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시가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