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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작가 입니까? 한국 작가 입니까?"

[한국초대석]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
'세계 작가와의 대화'서 한국문학의 개념 민족문학으로 틀 넓히자 주장
1. 인간의 역사가 오롯이 개인의 의지인가, 사회구조의 산물인가를 논할 때 무엇을 우선에 둘 것인가는 한 사람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의 주체성과 사회구조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이 점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인간의 역사에서 구조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개인에 대한 것을 괄호 안에 넣어야 하며, 개인에 대한 책임을 말할 때는 구조의 문제를 괄호 안에 넣어두자고 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같은 상황과 말에서 절절한 울림을 느끼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무덤덤하게 지나치는 이가 있다는 점이다.

2. 말은 본래 뜻에서 사회적 맥락을 얻어 그 뜻이 더해지거나 바뀌기도 한다. 세계각지로 흩어진 유대인을 일컫는 '디아스포라(Diaspora, 이산)'라는 말은 이제 전쟁과 식민지화로 고국을 등져야 했던 난민이나 인민, 그 후손들을 총칭하는 단어로 확장돼 쓰인다. 그리고 이 말은 이제 유대인보다 유대인에 의해 제 땅을 등지고 떠돌게 된 팔레스타인인을 일컫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3. 작가 서경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리쓰메이칸 대학 교수인 서승과 인권운동가인 서준식의 동생이다. 70~80년대 국가보안법으로 두 형이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부모는 차례로 돌아가셨다. 형들의 구명활동 경험은 사색과 집필로 이어졌다. 자신의 경험을 빌어 일본에서 재인조선인의 삶을 그린 <소년의 눈물>부터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난민과 국민 사이> 등은 이제 일본뿐 아니라 그가 꿈에 그리던 조국, '조선'에서 번역 출간됐다. 지난 2006부터 2008년까지 연구교수로 조국에서의 생활을 체험했다.

디아스포라, 끝나지 않은 현재

그를 키운 8할은 '디아스포라'적 아이덴티티였을 것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아직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는 저를 '불쌍한 재일조선인'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그것이 끝나지 않는 식민주의, 제국주의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끝나지 않는 식민주의적 온정주의죠."

그러나 모든 디아스포라가 그처럼 제 정체성을 첨예하게 자각한다거나, 그로 인한 고통을 언제나 느낀다거나, 그 감정을 섬세한 글로 남기지는 않는다. 때문에 이 글을 빌어 그에게 대답한다. 당신의 글이 울림을 주는 것은 '불쌍한 재일조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빌어 타인을 이해하려는 숭고함 때문이라고.

지난주 그가 '제 17회 세계작가와의 대화'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2008년 일본으로 간 후 2년 만이다.

2년 만에 한국 방문인가요? 주말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난 토요일에는 전태일 40주기 추모행사를 다녀왔어요. 좀 미안하지만 내가 이 나라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이 아니니까 구경이라고 해야겠죠? 같이 참여했다고 말한다면 쑥스럽다고 할까? 그리고 일요일에는 번역자들과 출판 관계자들을 만났어요."

선생께서 일본으로 가신 후 한국에 꽤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촛불집회나 두 전직 대통령 서거, 천안함 사태도 있었고요. 2년 전과 비교해서 어떻게 보시나요?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사회가, 음… 잘 바뀌잖아요. 일본은 계속해서 불경기가 되면서 오랫동안 하강 추세이고 사람들의 심리도 암울하고 소극적이지요. 젊은 사람으로서는 일본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자신들이 갈등하더라고 이 사회를 움직일 수 없다는 느낌이 있는데 여기는 물론 나쁜 측면도 나타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변화를 믿고 있다고 할까? 자신들이 진심으로 사회를 바꾼 경험이 있기 때문이겠죠. 제가 일본에서 볼 때는 여러 가지로 단편적인 정보를 얻었는데, 와보니까 사람들이 밝아요."

이번 방문 목적이 '세계작가와의 대화' 때문이었지요. 거기서 발표한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문학의 개념이 협소하다면서 민족문학으로 틀을 넓히자고 하셨지요. 특히 "재일조선인으로 일본어로 글을 쓰는 나는 일본 작가입니까? 한국 작가입니까?"라고 말씀하신 부분에서 민족의 개념을 좁게 보고 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국내 문단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짝사랑이랄까요? 그런 것도 있지요. 연변, 미국, 러시아와 독일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 작가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저와 같은 느낌이나 생각을 갖고 있을 거예요.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고, 다른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면서도 어떤 열망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애국심이나 민족주의 같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죠. 민족이란 단어가 구시대적이라면, 민족주의를 연상케 한다면,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인 겨레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무엇을 아름답다, 할 것인가

미의식이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다.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자신의 미의식을 재검토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를 예쁘다고 느꼈을 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렇게 느껴도 좋은 건지 되물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미의식이 실은 역사적·사회적으로 만들어져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 (<고뇌의 원근법> 서문 중에서)

주간한국이 문화예술잡지이니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여쭤야겠습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기행> 등 미술비평서도 3권 내셨지요? 지금은 웹진 나비에 음악 비평을 연재하고 계시고요. 고흐, 프리모 레비라든지 선생님이 좋아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뇌라고 하나요? 고통이라고 하나요? 울림을 주는 작가들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예술가와 작품을 소개할 때 기준은 무엇입니까?

"물론 작품이죠. 좋은 사람이거나, 옳은 사고방식을 가진 작가라도 작품이 시시하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술이 재미있는 것은 그 반대도 있다는 거죠. '아주 안 좋은 사람인데도 작품에 매혹된다.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이끌린다' 그런 것이 있잖아요? 그런데 흔히 '문학작품은 독자가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도 하지요. 서로 아우르고 있다고 할까? 어떤 작품을 보고 작가의 인물사나 이면을 몰라도 무언가 작품과 독자, 관객과의 대화가 이뤄지는 거예요.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그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관심 가지기 어려워요. 위대한 작가는 그런 보편성을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뭔가를 갖고 있는 작가예요. 유명해서 힘이 있는 게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 힘이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거죠."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바그너의 오페라는 전형적으로 나치의 선동으로 쓰인 작품이었지만, 작품은 상당히 매혹적인 대표적 사례로 쓰셨죠.

"어렵지만, 그게 재미죠. '올바른 사람이 올바른 작품을 만들었고, 우리는 감동했다.' 전혀 재미없어요. 그렇지요? 한마디로는 바그너는 '인간은 이런 거다'라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는 인간이라는 거예요. 바그너라는 인물 개인이 그런 것이 아니라 문화의 교차점으로 독일 역사, 음악사가 여기서 집중되어서 표현되어 있는 거죠. 바그너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넘어서 바그너라는 사람에 집중되어 있는 인간의 역사, 그것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죠. 모순된 상황은 상황대로 잘 묘사해야지 좋은 평론이 되겠죠. 그게 아니면 말 그대로 주제주의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까지 그려내려고 하면, 우리는 좀더 겸손해야 하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야 해요."

우리 작가 중에서 그런 작품, 어긋나지만 매혹됐던 예술가가 있나요? 예를 들자면 윤이상에 관련된 선생님 글은 예술가의 삶도 매혹적이고 작품도 뛰어난 것처럼 읽혔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배려해서 세부적인 걸 안 썼지만, 작곡가 윤이상도 당연히 인간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었지요. 본인이 겪은 정치적 상황이 아주 어려웠을 거고, 작품도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어요. 저도 처음에 현대음악에 익숙지 못했을 때는 '아 이건 뭔가' 당혹감이 있었고요. 당혹시키면서도 이끄는 힘이 있는 게 뛰어난 작가겠죠."

그런 자극을 받은 작품 중 우리 작품은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지난번 칼럼에 썼는데 예술가로는 윤석남 화백. 국내에서 어느 정도 유명한지 모르지만 아주 독보적인 화가라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여성화가가 드물어요. 그리고 임옥상의 매향리 설치미술. 그런 것도 아주 힘이 있고 현대미술로서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소설이나 시에 대해서는 한용운이나 이상화의 작품이요. 한용운의 시는 저한테는 좀 어려워요. 근데 이상화의 경우 아주 매혹적이죠. 김소월은 좀 어려워요. 한문적 교양을 바탕에 둔 시는 저에게는 어렵습니다."

끝나지 않은 식민주의

'그는 언제나 자기의 고통에 타인의 고통을 비추어보고 겸손하게 타인의 고통에 자기의 고통을 가만히 얹어 말한다. 그분의 영혼 속에서는 자기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이 뗄 수 없이 하나로 매개되어 있다. 그분에게서 자기 고통은 타인의 고통으로 나아가는 다리가 되고 타인의 고통은 자기의 고통을 비추어보는 거울이 된다.' (서경식, 김상봉 대담 <만남> 중에서)

아까 '책이 온전해지는 것은 독자와 만날 때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책이 출간될 때 일본과 한국의 반응이 다를 것 같은데요.

"많이 다릅니다. 일본에는 거의 반응이 없는 상대에게 얘기하는 것 같은 공허감이랄까, 허탈감을 항상 느낍니다. 지금도. 저는 일본에서보다 한국에서 보람을 느껴요. 글쓰기를 잘했다. 예전 <만남>이란 책을 내며 대담했던 전남대 김상봉 교수가 '자기상실, 자기분열'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제가 볼 때 대한민국은 자기상실, 자기분열 상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일제시대는 민족으로서는 조선민족인데, 국민으로서는 일본국민이었지요? 그러니까 국가와 국민이 분열됐죠. 거기에다 2등 시민 취급 받았죠. 당연히 일반 시민들은 자기 상실, 자기 분열이었지요. 해방 후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생겼는데 지리적으로 분열되어 있고, 이데올로기나 계층 등 사회가 계속 분열되어 있지 않습니까? 제 작품을 볼 때 독자들이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자신도 분열 상태에 있으니까, 어떤 공감을 느끼는 거에요.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라도 자기 자신의 분열을 여기에 투영하게 되는 거죠. '나는 분열되어 있지 않다. 온전한 국민의 주체다'라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 나는 연민스러운 소수자예요. 일본에서 저는 불쌍한 소수자입니다."

앞으로 쓰실 책, 강연에서 그런 말씀을 들을 수 있겠군요.

"네. 그걸 비판하는 글을 다음에 쓰려고 해요. 선진국 지식인들의 내면에 있는 끝나지 않는 식민주의. 계속되는 식민주의 비판이요. 제가 디아스포라나 근대 국민국가, 국가주의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미술과 음악, 문화예술에 관한 비평집도 씁니다. 웹진 <나비>에 연재하는 서양 음악 순례로 책으로 낼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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