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00년대 10년간 춤 동향 등 조명한 평론집 3부작 펴내

무용평론가인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춤 평론집 3부작을 최근 펴냈다.

<춤의 전통과 정신>(민속원), <춤의 충돌과 화해>, <춤의 위기와 전망>등 세 권으로 2000년대 10년의 춤 현장을 비평적 관점에서 조망한 책이다.

평론집에는 2000년대 10년간의 춤의 동향과 미학적 성과, 그리고 제도와 정책뿐 아니라 우리 춤선구자를 조명한 글과 문화운동적 성격을 담은 다양한 형식의 글들도 함께 수록돼 있다.

내용은 아카데믹한 관점에서 긴 호흡으로 쓰여진 심층 논단을 비롯 춤인물론과 작가론, 리뷰와 인터뷰 및 좌담 등 다양한 형식의 글들로 구성돼 있다.

3일 국내 유일의 춤자료관인 대학로 연낙재(硏駱齊)에서 만난 성기숙 교수는 지난 10년간 세기적 변화에 따른 국내 무용계의 현장을 탐색하고, 정리하는 차원에서 책을 냈다고 밝혔다.

"2000년대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적 변화기로, 국내 무용계도 내적, 외적 환경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춤평론가로서 2000년대 10년의 춤 현장의 흐름과 변화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2000년대 10년 동안 춤현장에서 감지된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춤아카데미즘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소위 독립안무가들이 춤창작의 지형변화를 주도했다는 점입니다. 이 시기 춤예술의 화두는 전통의 현대화, 서양무용의 한국화 그리고 한국 춤의 세계화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춤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졌고, 해외교류 방식 또한 다변화되었으며, 정부의 지원정책도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졌다고 분석했다.

한국 무용계의 '현재'에 대해 묻자 성 교수는 " '위기'와 '희망'이 공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성 교수의 시각은 세 권의 평론집에 촘촘히 담겨 있다.

3부작 중 1권에 해당하는 <춤의 전통과 정신>은 오늘날 춤의 전통과 정신은 온전히 살아있는가, 라는 회의론적 물음에서 출발한다. 먼저 1장은 한국 춤에 있어 전통을 재인식하고 공연문화유산으로서 우리 춤을 제도화하자는 논지를 담고 있다.

성 교수는 2000년대 들어 전통춤이 원래의 모습을 잃고 변질 내지 훼손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춤이 원래의 취지를 벗어나 '자본'과 은밀한 결탁을 하면서 권력화되고, 무용계의 대립과 갈등의 온상이 되어갔습니다."

성 교수가 '춤의 명인, 춤의 거장'(2장)에서 우리 춤의 선구자로 춤 예술에 열정을 바친 박외선ㆍ김상규ㆍ이흥구ㆍ박금술등을 조명하고, 특히 신무용의 거장 조택원의 예술적 업적과 춤정신을 심층 분석한 것(3장)은 무용계 현실에 대한 자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조택원이 "무용이란 움직이는 사색, 즉 무상(舞想)"이라고 한 정의는 또 다른 일침이다.

성 교수는 "'전통의 현대화', '서양무용의 한국화''라는 과제에서 우리 춤의 선구자들이 가졌던 영혼이 담긴 춤철학, 치열한 창작정신은 실종된 지 오래인 듯하다"면서 "전통춤의 올바른 계승을 위해서는 기능보유자, 학계, 국가기관 등이 연대 책임의식으로 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권에 해당하는 <춤의 충돌과 화해>는 해방 이후 전환기적 상황에서 전개된 춤의 형국을 살피고 춤의 예술적 진화과정과 정신문화적 가치에 대해 비평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특히 춤현장에서 포착되는 '충돌과 화해'의 징후에 주목해 무용가들의 창작태도에서부터 무용교육, 춤의 제도와 정책 등 다양한 논제를 다룬 점이 두드러진다.

성 교수는 "춤이 다른 장르에 비해 사회적으로 변방의 예술로 취급되는 것은 춤지식의 담론생산에 게을렀기 때문"이라며 "기존 이론의 답습 내지 재구성이 아닌, 창조적 춤이론이 실천될 때 춤의 허약한 구조가 타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최근 무용계 현장에서 들리는 대립과 갈등은 단지 개인적 화해의 차원이 아닌, 문화적 천도의 우주적 화해를 추구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춤의 위기와 전망>에서 성 교수는 2000년대 10년 동안의 춤현장의 동향과 성과, 그리고 춤제도와 정책을 평가하고 진단하고 있다.

성 교수는 지금의 무용계가 무용가들의 창작정신 부재, 자생력 고갈, 정부의 불합리한 지원정책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정부의 지원이 풍성해진 것과 관련, '양날의 칼'을 경계했다.

"기초예술이자 순수예술인 무용분야에 정부의 지원은 절실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의 지원이 무용가들의 창작정신을 고갈시키고 자생력을 저하시키는 역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성 교수는 그동안 불공정한 지원심사로 인해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며 보다 합리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 춤의 미래에 대해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한다. 최근 무용계의 세대교체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새롭고 긍정적인 징후들이 싹트고 있다는 것. 성 교수는 춤의 위기 속에서도 치열한 창작정신으로 혹은 춤과의 영혼적 교감으로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을 찾고자 하는 무용가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한다.

'춤의 위기'에 대해 평론의 위기도 원인 제공을 한 것이 아니냐고 묻자, '인정' 한다.

"평론가들의 연대책임을 통감합니다. 또 최근 춤평단의 분화는 무용계의 지형변화와 세대교체, 그리고 다원화시대에 발생한 자연스러운 일로 한국 춤 발전을 위한 일종의 '생산적 진통'이라 여깁니다."..

2000년대 10년의 춤 현장을 조망한 이번 평론집은 성 교수 개인은 물론 한국 무용계에도 소중한 자산이다. 성 교수는 "이 평론집은 지난 10년간의 춤 현장을 예의 주시한 '시대의 증언'이자 '현장보고'의 성격이 있다"며 "먼 훗날 후대 무용가. 평론가들이 한국무용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평론집 이후의 계획을 물으니, 평소처럼 춤의 현장을 충실히 지키고, 춤 연구와 함께 담론 생산에 주력하겠다고 답했다.

"무용계의 지형변화와 세대교체의 지점에서 엄청난 진동과 파열음을 느낍니다. 그래도 늘 중심을 지키면서 우리시대 춤의 현장을 주목할 겁니다."

성기숙 교수는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를 졸업(철학박사)했고,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국립무용단 자문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용소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문화재 전문위원, 한국춤평론가회 회장, <춤과 담론> 발행인 겸 편집인, 연낙재 관장으로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