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한국사립미술관협회 이명옥 신임회장제 2의 백남준 만들고, 서비스 혁신 통해 미술관 간 편차 줄일 것

어린이를 위한 체험 놀이, '뮤지엄 페스티벌'과 한국에서 미술가로 거듭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프로그램'.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은 한국사립미술관협회다.

2005년 전국에 분포한 90여 개 사립미술관 중 70여 개가 모여 발족했다. 그 덕에 갤러리와 국공립미술관 사이에서 모호하게 존재하던 사립미술관이 선명한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지난 5년간 사립미술관에 대한 인식개선과 그곳이 가진 공공성 등에 대한 이해도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 이제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때라는 생각은 이미 협회 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해 말, 한국사립미술관협회의 3대 회장으로 선출된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 관장. 집필, 강의, 미술관 운영 등 활동 전반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왔던 그녀가 2013년까지 협회를 이끌게 된다.

임기는 2011년부터지만 그녀의 행보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 미술계 전반에 신선한 충격을 가할 만한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내내 이명옥 신임 회장에게선 의욕과 기대감이 전해졌다.

제 2의 백남준은 어디에?

사립미술관협회에서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소위 '제2의 백남준 만들기 프로젝트'인 온라인 뮤지엄 구축과 전시장의 QR코드 도입이다. 국가 간 거리를 비약적으로 줄여주는 인터넷과 손안의 작은 컴퓨터 스마트폰의 보급 등 IT기술의 발달을 기반으로 한 아이디어다.

"몇 년 전부터 구상해온 일인데, 이제야 실행할 수 있게 됐어요. 음악, 영화 등 타 장르에 비해 미술계에선 왜 글로벌 아티스트가 나오지 않는가가 고민의 단초였죠. 백남준 이후 글로벌 아티스트의 부재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작가들이 상업화랑에 지나치게 포진되어 있다는 점과 작업은 좋지만 상업성이 떨어지는 작가를 미술관이 발굴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었죠. 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노출할 것인가가 관건이었죠. 그래서 기획한 것이 '온라인 뮤지엄'이에요."

온라인 뮤지엄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현재 작업 중인 형태는 기존의 것과 확연히 차별화된다. 사립미술관이 먼저 작가를 선정해 전시 큐레이팅을 마친다. 이 기획안을 바탕으로 협회에서 위촉한 심사위원이 심사해 선정된 미술관에는 '온라인 뮤지엄'을 개설해준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해외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 관계자들을 온라인 뮤지엄으로 초청해 이들 전시 관람을 유도한다. 해외의 미술관 큐레이터나 관장들에게 한국의 작가를 프로모션할 수 있는 네트워크 역시 협회 측이 야심 차게 준비하는 부분이다.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은, 상업성은 떨어지지만 예술성이 높은 한국의 작가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되는 셈이다.

이미 착수된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는 것은 올해 4월쯤이다. 올해 30여 개 관이 온라인상에 열리고, 내년에 50개, 후년 70개 정도 오픈한다. 작년 말, 문광부에 제안했던 기획안이 채택되면서 3년간 매년 4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기로 했다.

"성과가 괜찮을 거라고 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해외 미술계에서 관심을 갖는 한국 작가 몇 명이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컨택하고 초청해야 하는지 모르거든요. 그런 작가들이 일차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요. 그리고 사립미술관에서 작가를 선정하니, 위상에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미술관 간에도 편차가 큰데, 작가와 기획력만 좋으면 얼마든지 같은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죠. 무엇보다 미술이 시장이 아닌, 예술가 중심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온라인 뮤지엄에 증강현실까지 적용할 것인가 등의 구체적인 구현방식은 현재 고민 중이다. 인터넷 접속 속도가 느린 나라를 고려해 가장 적합한 방식을 채택할 예정이다. 온라인 뮤지엄은 단지 그림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춰 작가에 관심 있는 해외 미술관 관계자들이 쉽게 작가나 미술관과 컨택할 수 있게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 북, 유튜브 등 SNS를 연동한다. 여기에 비평문도 아카이브로 구축된다.

해외 뮤지엄에 소개하는 작가다 보니 커리어가 축적된 중견 작가가 대부분이겠지만 신진작가 역시 소외되지 않게 창구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유럽이나 미주 등 권역별 특성에 맞는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매칭서비스를 위한 준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작가 한 명의 개인전이 될 수도 있고 20명이 참여하는 그룹 기획전이 될 수도 있어요. 미술관이 기획하기에 따라 다르죠. 우리는 심사하고 프로모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겁니다. 행여 큐레이팅 역량이 부족한 미술관에는 독립 큐레이터를 매칭해주는 방식도 고려 중이에요. 독립 큐레이터에게도 전시 기획 기회가 생기는 장점이 있지 않겠어요."

도슨트가 스마트폰 속으로

스마트폰 시대는 미술관에도 변화를 몰고 왔다. 현재 이명옥 회장은 국내 전국 사립미술관을 소개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진두지휘 중이다. 한발 앞서 이 회장은 지난해 여름, 국내 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사비나 미술관 전시에 QR(Quick Response)코드를 도입했다.

그림이나 사진, 동영상, 웹 문서(HTML) 등에 접속할 수 있는 바코드의 하나로, 사비나 미술관은 작품 해설을 볼 수 있는 장치로 이용한 것.

작품 제목이 적힌 종이와 도록에 QR코드가 붙어 있어 스마트폰 사용자는 도슨트 없이도 쉽게 작품해설을 보거나 들을 수 있다. 처음엔 텍스트로만 작품해설을 제공했지만 텍스트를 읽어내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이후 음성 해설로 바꾸었다.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한번 읽히면 미술관을 벗어나더라도 언제든 접속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손안으로 미술관이 들어온 셈이다.

미술관에서는 유튜브에 미리 작가의 인터뷰와 음성 해설 등을 등록해놓기 때문에 자동으로 온라인 아카이브가 구축된다는 이점도 있다.

사비나 미술관은 오는 3월, '융합'을 테마로 한 전시에서는 작가 인터뷰뿐 아니라 건축가나 정신과전문의 등 타 분야 전문가의 시각으로 본 작품 해설까지 인터뷰 형식으로 더해낸다. 국공립미술관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QR코드는 점차 전국 사립미술관에 확산시킬 예정이다.

"스마트폰 덕에 서비스 방식이 크게 확대됐어요. 지금까지는 도슨트 해설을 들으려면 시간을 맞춰야 했고 도슨트가 없으면 혼자서 찾아보고 해야 했잖아요. QR코드로 관람객과 미술관이 한층 가까워지게 되는 거죠. 관람객 혜택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수혜는 지방 미술관이에요. 인력이나 서비스가 부재해 관람객과의 소통이 원활치 못했는데, QR코드 도입과 교육을 통해 서비스 혁신이 이루어지면 미술관 간의 편차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국내 미술관으로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적잖이 붙는 사비나 미술관. 협회장으로서 준비 중인 프로젝트 외에 사비나 미술관의 수장으로서 이명옥 관장은 올해 또 하나의 변화를 시도한다. 관람객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인데, 영국 테이트 모던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관람객을 위해 하나의 방을 마련해놓고, 그 안에서 그들이 자유롭게 작품, 전시, 작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방에 웹캠과 노트북 등을 마련해두고 관람객들이 이곳에서 녹화나 문서 등으로 기록한다. 가령, '난 이번 전시는 00하다고 생각하는데..'라는 말을 남기면 다른 사람들이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남길 수도 있고, 각자의 의견을 이어서 기록할 수 있다.

이후 미술관은 이들의 의견을 편집해 온라인에서 공유하게 된다. 기존의 미술관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입장이었다면, 방을 통해 관람객과 소통의 지점을 마련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전 호기심이 많아요.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좋은 시스템이 있다면 처음으로 벤치마킹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당장 3월 전시부터 도입할 예정이에요. 관람객들이 수동적으로 전시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이 의견을 피력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미술관이 될 수 있겠죠."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 이명옥은…
예술과 타 분야의 융합에 포커스를 맞춘 사비나 미술관의 관장이다.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며,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대표이다. <팜므파탈>,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이야기>,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이야기>, <그림 읽는 CEO> 등을 집필한 한국 예술계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