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년 만에 LPGA 메이저 3연승 박인비10세때 1998년 US여자오픈 박세리 우승 보고 골프 시작 올 시즌 상금·올해의 선수 1위8월 브리티시 오픈 우승땐 남녀 사상 첫 한 시즌 그랜드슬램

연합뉴스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박인비(25)가 지난 1일 제68회 US여자오픈 정상에 서면서 메이저대회를 3회 연속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1950년 미국의 가 메이저대회 3연승 기록을 세운 뒤 63년만이다. 이로써 박인비는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특히 박인비는 오는 8월 네 번째 메이저인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하면 세계 남녀골프 사상 전무후무한 시즌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한다.

골프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박인비의 골프 인생을 조명해봤다.

여유있게 정상 올라

박인비는 지난 1일 미국 뉴욕주 사우샘프턴의 서보낵 골프장(파72ㆍ6821야드)에서 열린 '제68회 US여자오픈'에서 최종합계 8언더파 280타를 쳤다. 이로서 4언더파 264타를 쳐 2위에 오른 김인경을 4타차로 밀어내고 여유있게 정상에 올랐다.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박인비(오른쪽)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약혼자 남기협씨와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인비는 앞서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과 웨그먼스 엘피지에이(LPGA) 챔피언십에 이어 US여자오픈까지 메이저대회 3개를 연속으로 독식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1950년 가 시즌 개막 후 메이저대회 3연승 기록을 세운 뒤 63년만의 대기록이다.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처음 메이저대회를 접수한 박인비는 메이저대회 개인 통산 4승을 기록했다. 또 LPGA 통산 9승을 기록한 박인비는 올 시즌 6승을 기록하며, 2001년과 2002년 박세리가 세운 한국 선수 시즌 최다승 기록(5승)도 갈아치웠다.

이날 우승으로 우승 상금 58만5,000달러(약 6억6,600만원)를 받은 박인비는 시즌 상금 2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상금 부문과 세계랭킹, 올해의 선수 포인트 등에서 1위 자리를 지킨 것이다. 그야말로 박인비 1인 독주시대에 돌입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승승장구하다 긴 슬럼프도

지금은 세계 최정상급 프로골퍼로 성장한 박인비지만 사실 어릴 적엔 수의사를 꿈꿨다. 그런 그녀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건 '우상' 박세리 덕분이었다. 10살이 되던 1998년 박세리가 한국 선수 최초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장면을 본 게 골프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박인비가 신지애ㆍ최나연 등과 더불어 '세리 키즈'로 불리는 이유다.

박인비(오른쪽)가 1일(현지시간) 미국 NBC 방송에 출연해 US여자오픈 골프대회 우승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격적으로 골프에 뛰어든 박인비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1년 만에 박인비는 최고 유망주가 돼 있었다.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컵을 갖고 돌아왔다. 당시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비가 나오면 출전하나마나 똑같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중1이던 13세 때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본격적으로 골프 수업을 받기 위해서였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박인비는 데이비드 레드베터와 부치 하먼, 마이크 벤더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교습가들을 모두 만났다.

당연히 아마추어시절부터 2부 투어까지 성장하는 동안 매 대회 우승 경쟁을 펼칠 만큼 이름값을 했다. 주니어시절 미국에서 9승을 올렸으며 5차례나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대표 선수로 뽑혔다. 특히 2002년에는 미국주니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해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박인비는 네바다 주립대(UNLV)에 입학했다. 그러나 골프와 공부를 병행하기 힘들어 한 학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그리고 2006년 프로로 전향, 그해 퓨처스 투어(LPGA 2부 투어)에서 상금랭킹 3위에 올라 LPGA 투어 시드를 받았다.

프로 데뷔 2년만인 2008년에는 '우상' 박세리가 우승했던 US여자오픈에서 승리를 거뒀다. 당시 스무 살이 채 안되는 나이(19년11개월6일)로 박세리(20년9개월)의 종전 기록을 10개월 가까이 앞당기며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을 새로 썼다.

베이브 자하리아스
하지만 이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갑자기 매스컴의 이목이 집중되고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기게 된 것이다. 역대 최연소 우승이라는 기록이 오히려 독이 된 셈이었다. 샷은 들쭉날쭉했고, 드라이버 샷은 페어웨이를 벗어나기 일쑤였다.

이듬해 출전한 20여개 대회 중에서도 3분1이나 '컷 오프'됐다. 2010년에는 KIA클래식 2위 등 '톱 10'에 11차례 진입했지만 정작 우승은 없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박인비는 모두 57개 대회에 출전하면서 단 한 차례의 우승도 거두지 못했다.

끝도 없는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필드의 초록색만 봐도 겁에 질렸다. 당시 대회에 나가는 것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급기야 2009년 겨울 박인비는 아버지에게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당시 박인비의 등을 받쳐준 것이 약혼자인 남기협씨였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출신인 남씨는 미국 전지훈련 중 만나 힘든 상황에 빠져 있던 박인비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 박인비-남기협 커플은 2011년 8월 약혼했다.

길고 긴 암흑기를 거친 박인비는 한층 강해졌다. 2010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로 무대를 옮기면서 4승을 수확했다. 마침내 '우승하는 법'을 되찾은 것이다. 이후 박인비의 거침없는 질주가 시작됐다.

LPGA 투어에서도 지난해 에비앙마스터스에서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려 부활에 성공했다. 또 사임다비말레이시아까지 시즌 2승을 수확하면서 상금왕과 베어트로피까지 2관왕에 등극했고, 이번 대회까지 쾌속 행군을 거듭하며 마침내 세계랭킹 정상까지 밟게 됐다.

퍼팅ㆍ스윙ㆍ정신력이 강점

그렇다면 박인비의 강점은 어디에 있을까. 그녀의 최대 경쟁력은 바로 퍼팅에 있다. 현재 박인비의 라운드당 평균 퍼팅 수는 28.43개로 LPGA 2위. 그린 적중 시 홀당 퍼팅 수는 1.702개로 단연 1위다.

이는 그린을 놓쳤을 때보다 버디 기회를 잡았을 때 그의 퍼팅 능력이 진가를 발휘했다는 걸 의미한다. 외신이 그녀에게 '침묵의 암살자(Silent Assassin)'라는 별명을 붙인 까닭도 정교한 퍼팅으로 조용히 상대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실제, 박인비의 퍼팅 능력에 대해 NBC 해설가인 로저 몰트비는 "그가 친 모든 퍼트가 홀로 들어갈 것 같았다. 오히려 들어가지 않았을 때 놀랐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유명 티칭 프로인 수지 웨일리도 "박인비 퍼팅 스트로크의 강점은 긴장감 하나 없는 팔과 어깨"라고 말했다.

편안하고 간결하면서도 정확ㆍ일관된 스윙 역시 강점으로 꼽힌다. 박인비의 스윙은 천천히 골프채를 들어 올렸다 떨어뜨리는 게 전부다. 어떻게 하면 공에 힘을 잘 전달시킬까 하고 어릴 때부터 연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스윙이라는 게 박인비의 설명이다.

박인비 스윙은 '리듬의 스윙' 한마디로 압축된다. 멀리 치려고 힘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스윙 속도가 골프채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는다. 골프는 같은 스윙을 실수 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게임이라는 정설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스윙과 퍼팅은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인비는 얼굴 표정이 별로 없다. 그야말로 '포커페이스'다. 얼굴뿐만이 아니다. 걸음걸이나 행동, 심지어 샷마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골프라는 섬세하고 예민한 스포츠에서 박인비가 높은 기량을 낼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물론 이를 거저 얻은 건 아니다. 4년여에 걸친 슬럼프를 극복하면서 얻은 값진 결실이다.

박인비는 오는 8월1일 스코틀랜드 세인드 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시즌 네번째 메이저대회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앞두고 있다. 박인비가 브리티시 여자오픈도 우승하면 캘린더 그랜드 슬램(한해 메이저대회 4개 우승)과 역대 최연소 커리어 그랜드 슬램(평생 4개 메이저대회 우승)을 달성한다. 과연 박인비는 4개 메이저대회를 평정, 세계 골프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을까. 박인비의 '역사적인 도전'에 세계 골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LA올림픽 창던지기·허들서 세계신 우승 '천재 스포츠우먼'
63년 전 메이저 3연승 자하리아스는



63년 전 박인비에 앞서 3연속 메이저대회 우승 기록을 달성한 미국의 는 대체 누구일까.

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우먼이라고 불릴 정도로 스포츠 천재였다. 비단 골프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 만능이었다. 그녀는 1932년 LA올림픽에서 여자 창던지기와 80m허들에서 세계신기록을 기록하며 2관왕을 차지했다.

또 육상과 야구 뿐 아니라 미국 대학여자농구에서 베스트 5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가 골프에 입문한 후 PGA 컷통과에 정식으로 세 차례 출전해 모두 컷을 통과한 기록도 있다. PGA 컷통과는 미셸 위와 소렌스탐 등이 수차례 도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높은 벽이다.

그녀가 골프에 입문한 이후 여자골프대회에서 16연승을 했다. 1954년 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골프대회에 출전해 7번 우승하고 그 해 US여자오픈에서도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천재 스포츠우먼은 1956년, 그녀의 나이 42세로 세상을 등지는 불운을 맞았다.

한편 그녀는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스포츠 선수에 9위에 뽑히기도 했다. 선정에는 남자와 여자를 통틀어 순위를 매긴 것이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