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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섹시 아이콘’은 누구?

눈웃음만 쳐도 밤잠 못자…시대 따라 ‘섹시’코드 주인공 달라

요즘 ‘섹시’ 코드로 방송과 광고, SNS를 달구는 핫한 ‘대세녀’로 클라라가 뜨고 있다. 얼마전 야구장에서 선보인 섹시 시구가 화제를 일으킨 데 이어 과감한 노출 패션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무명의 그녀를 단숨에 ‘섹시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했다.

이는 ‘섹시’라는 코드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고 시대를 반영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어느 시대이건 당대를 대표하는 ‘섹스심벌’은 늘 존재해 왔다. 그들은 금욕의 시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자유와 개방의 상징으로, 또는 물욕의 시대를 대변하는 우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들 ‘섹시 아이콘’은 언제나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아왔다. ‘섹시’ 코드는 시대에 따라 성격을 달리하며 그 주인공들도 변천을 해왔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우리 시대를 풍미한 ‘섹시 아이콘’을 살펴봤다.

1960년대 - 윤복희, 김지미, 윤정희

윤복희는 ‘섹시’라는 단어가 낯설던 1960년대 섹스심벌로 떠오른 스타다. 그녀가 주목을 받는 건 1967년 국내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을 공개하면서다.

요즘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은 흔한 풍경이고 여가수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속살을 내놓고 당당히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다. 그러나 성적으로 보수적이던 1960년대 미니스커트를 입은 윤복희는 문화충격이자 사회충격이었다.

미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던 윤복희는 67년 귀국해 한 패션쇼에서 미니스커트를 선보이며 전국에 미니 열풍을 불러왔다. 항간에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공항에서 내려 화제가 됐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고 패션쇼 무대가 미니스커트 열풍의 진원지였다.

윤복희는 미니스커트와 함께 가수로서 대중을 전율시키는 가창력을 선보이면서 당대의 섹시 디바로 인기를 얻었다.

1960년대 섹시 아이콘은 단연 여배우들이었다. 최은희, 김지미가 고전적 여성미로 남심(男心)을 사로잡았다면, 문희 남정임 윤정희는 현대적 여성미로 당대를 풍미하며 여배우 트로이카 1세대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 - 정윤희, 김추자

1970년대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의 충무로 2세대 ‘트로이카’가 돋보였다. 이들 여배우들은 각기 다른 개성으로 섹시 아이콘으로 부상했지만 그 중에서도 정윤희는 단연 도드라졌다. ‘100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미모’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19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해 1984년 ‘사랑의 찬가’를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정윤희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연기나 외모, 스타성에서 압도적 우위를 갖추고 있었음은 물론, 여성적 매력과 카리스마도 겸비하고 있었다.

정윤희는 당시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 미녀’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전혀 성형을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외모는 순수함과 섹시함을 모두 겸비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일본이나 대만, 홍콩 등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화 시상식 참석을 위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중화권 언론이 공항에 모두 쏟아져 나와 공항이 마비된 일은 유명한 일화다. 특히 할리우드 액션스타인 성룡이 자신의 이상형으로 정윤희를 지목하면서 한 때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가수 김추자는 TV가 매스미디어의 주역으로 부상한 시대에 맞춰 한국 가요계 첫 섹시 아이콘이 됐다. 1969년에 데뷔해 ‘님은 먼곳에 ’‘거짓말이야’ ‘꽃잎’ 등 숱한 히트곡을 불렀고, 몽환적 음색과 제스처, 화려한 춤, 딱 붙은 셔츠와 나팔바지 등으로 섹시퀸의 대명사가 됐다.

1980년대 - 안소영 원미경 김완선

안소영은 1982년 시대를 놀라게 한 영화 한 편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했다. 한국 에로영화의 효시인 ‘애마부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른바 3S(ScreenㆍSexㆍSports) 정책에 의해 일련의 문화적 잠금장치를 푼 결과다.

남편의 무관심과 외도로 상처 입은 여성의 성적 순례를 도발적인 설정과 노골적인 성애 묘사로 풀어낸 이 영화는 개봉관에서만 3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흥행작이 됐다. 당시 데뷔 4~5년차신인이던 안소영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안소영은 1982년 한 해에만 7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오수비, 김부선, 소비아, 강승미 등 에로배우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러나 누구도 ‘1대 애마’인 안소영의 존재감을 넘어선 이는 없었다.

78년 미스롯데로 데뷔한 원미경도 80년대 섹시 아이콘으로 명성을 떨쳤다. 원미경은 영화‘청춘의 덫’ ‘제3한강교’등에서 단아한 미모와 청순한 이미지로 인기를 모은 데 이어 ‘물레야 물레야’ ‘변강쇠’ 등에서는 토속적인 섹시함을 선보여 남심을 설레게 했다.

이밖에 ‘뽕’‘스캔들’의 이미숙, ‘어우동’의 이보희 등도 80년대를 대표하는 섹시 아이콘으로 현재도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가요계의 김완선은 파격적인 댄스로 ‘댄싱퀸=섹시스타’라는 공식을 만든 첫 여성가수다. 1986년 ‘오늘밤’으로 데뷔한 김완선은 일찍이 여가수에서 볼 수 없었던 파워풀한 춤으로 당대의 섹시 스타로 각광받았다. 또한 백치미적 분위기와 외모, 몸매, 눈빛으로 섹시함을 증폭시켜 요즘처럼 노출을 하지 않고도 섹시퀸으로 군림했다.

1990년대 - 이승희 엄정화

1990년대 최고의 섹시 아이콘은 단연 이승희다. 80년대 말 민주화, 개방화 분위기에 맞춰 등장한 이승희는 ‘섹시’코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스타로 사회 문화적 충격을 가져왔다.

이승희는 8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의대에 다니다 모델로 데뷔했다. ‘플레이보이’지의 첫 동양인이자 한국인 모델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이언정이나 이파니 등 한국인 모델이 등장했지만 이승희가 가지는 상징성엔 비할 바가 못됐다.

1996년 가을 ‘플레이보이’를 장식하고 인터넷 누드 사이트가 개설됐다. 나비 문신의 글래머러스한 몸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관능미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인터넷이 대중화될 무렵이던 당시 이승희는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는 뭇남성들의 눈을 충혈시켰다.

그러던 1997년 이승희가 방한하면서 그에 대한 관심은 극에 달했다. 이승희는 자서전 ‘할리우드의 노랑나비’와 누드화보집 ‘버터플라이’를 펴낸 뒤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승희의 방한 소식은 ‘누드 환향’이라는 표현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실제로 당시 김포공항에는 200여명의 취재진이 나와 경쟁했다. 또 이승희는 지상파 방송은 물론 각종 케이블채널에 잇따라 출연했다. 또 란제리 브랜드 CF모델 계약을 맺는 등 이승희는 고국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 그녀의 인기는 가히 ‘신드롬’과 다르지 않았다.

국내 스타들 중엔 이영애 최진실 고현정 채시라를 비롯해 전도연 심은하 고소영 세 트로이카가 영화와 방송을 넘나들며 활약했고, 맡은 역할과 광고 등에 따라 섹시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젖소부인’ 신드롬을 일으킨 진도희는 독특한 섹시스타다. ‘젖소부인…’ 은 ‘비디오용 에로영화’를 양지로 끌어올렸고 에로, 섹시 코드를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가요계에서는 엄정화가 노출을 통한 건강한 섹시미로 인기를 끌었다. 엄정화는 패션을 섹시스타의 필수 요소로 만들었고 섹시함에 귀여움을 가미한 ‘큐트 섹시’로 차별화된 섹시퀸으로 평가받았다.

2000년대 - 이효리

2000년대를 대표하는 섹시 아이콘은 가수 이효리다. 이효리는 성유리와 이진, 옥주현의 핑클로 1998년 데뷔했다. 이후 후속곡 ‘내 남자 친구에게’, ‘루비’를 히트시키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걸 그룹 최초로 가요대상을 수상하는 기록도 세웠다.

이효리가 섹시 아이콘으로 떠오르기 시작한건 2002년 4집 이후 활동을 중단한 뒤 2003년 솔로로 ‘텐미닛’을 발표하면서다. 섹시함으로 여성이 남녀 관계를 주도하고 우위에 설 수 있음을 당당하게 선언한 노래 이후 이효리의 이름 앞에 으레 ‘섹시스타’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이효리는 보수의 눈치 때문에 섹시에 귀여움이나 순수함 등 다른 요소를 섞었던 다른 섹시퀸과 달리 섹시함 그 자체만으로 승부를 한 첫 여가수라는 점이 각별하다.

특히 2003년은 ‘이효리 천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효리의 말과 패션이 거리에 쏟아졌고, 급기야 ‘효리신드롬’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손담비나 아이비 등도 섹시스타로 활약했지만 이효리의 아성엔 미치지 못했다.

이렇게 이효리는 솔로 데뷔를 하자마자 방송 활동을 넘어 대한민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사회현상’을 일으켰다. 섹시하고 건강한 이미지에 솔직함과 털털함까지 갖춘 점이 대중들을 사로잡았다는 평가다.

솔로 활동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이효리는 여전히 대중에게 ‘섹시 아이콘’으로 각인돼 있다. 실제 이효리는 20111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9위로 선정돼 동양스타 중에 가장 높은 순위로 기록되기도 했다.

방송과 영화계 스타인 송혜교 전지현 김태희 손예진 등도 청순한 섹시미로 최근까지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10년대 - 현아 클라라

2010년대는 각 분야에서 다양한 섹시 아이콘이 등장했다.

우선 가요계에서는 이효리의 계보를 잇는 스타로 가인과 현아가 두드러진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 멤버인 가인은 파괴적이고 도발적인 무대 매너와 함께 노골적으로 섹시를 강조하기보다 ‘여성미’를 최고조로 발현해 몽환적인 매력을 뽐내는 섹시 디바다. 최근엔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싸이의 ‘젠틀맨’의 모델로 나와 국제적 섹시 스타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반해 걸그룹 포미닛의 현아는 노골적인 섹스 어필로 주목받고 있다.

현아는 당초 원더걸스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청순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원더걸스에서 탈퇴한 뒤 이미지 변신에 나서 진한 아이라인과 파격적인 의상으로 섹시미를 강조했다. 특히 잘록한 허리와 쭉 뻗은 각선미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여기에 도발적이고 섹시한 안무 등으로 무장했다. 현아는 숨만 쉬어도 야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현아는 눈만 살짝 떠도, 골반만 한번 돌려도 섹시 퍼포먼스가 완성된다. 하지만 섹시한 외모나 도발적인 퍼포먼스와 달리 애교 많고 사근사근한 ‘반전 매력’이야 말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진짜 비결이다.

현아의 진면목이 드러난 건 2010년 첫 솔로곡 ‘체인지’를 통해 파워풀한 카리스마를 뽐내면서다. 이어 ‘버블팝’ 활동하면서 비스트 장현승과 유닛을 이룬 ‘트러블메이커’로 한국뿐 아니라 영국과 미국 등 해외에서도 섹시스타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미국 빌보드닷컴에서 ‘K팝의 섹시 프린세스’로 소개되며 ‘21세 이하 올해의 인기 아이돌’에도 선정됐다. 여기에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말춤’을 선보이며 세계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기도 했다.

모델 제시카 고메즈는 육감적인 몸매와 동서양의 미를 지닌 신비한 매력으로 단번에 섹시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중국계 싱가포르인 어머니와 포르투갈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고메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모델로 발탁된 뒤 뉴욕 진출을 하는 과정에서 LG전자 ‘비키니폰’광고에 출연해 이것이 ‘대박’나면서 한국에도 이름을 알렸다. 이후 고메즈는 방송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고 국내 여러 방송에 출연하면서 차별화된 섹시미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가장 핫한 섹시 아이콘은 클라라다. 클라라는 지난 5월 레깅스 패션의 섹시 시구로 일주일 내내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고 노출 패션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단숨에 섹시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서울 88올림픽 당시 주제가였던 ‘손에 손 잡고’를 부른 코리아나의 리더 이승규의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요즘 클라라는 지상파 3사는 물론, 종편의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맹활약 중이고 광고 및 각종 행사의 섭외 1순위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효리와 같은 시대적 섹시 아이콘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의 개성적이고 지속적인 매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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