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우리당 '지역주의 타파' 외치며 사활 건 도전한나라 '수성' 자신감, 인물대결 본격화 땐 고전 예상

4·15 TK대전 한나라 아성 깨지나
민주·우리당 '지역주의 타파' 외치며 사활 건 도전
한나라 '수성' 자신감, 인물대결 본격화 땐 고전 예상


한나라당의 아성인 ‘TK(대구ㆍ경북) 목장’에서 총성 없는 4ㆍ15 전투가 본격화했다.

민주당이 설 연휴 직전 조순형 대표의 전격적인 대구 출마 선언을 신호탄으로 TK 상륙작전에 돌입한 가운데, 열린우리당도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의 입당 및 대구 출마선언을 기폭제로 삼아 TK지역 교두보 확보에 사활을 걸 태세다.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내세운 양당의 협공에 직면한 한나라당으로서도 안방 사수를 위해 당력을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정치권에서는 TK 지역이 이번 총선에서 3당의 최대 각축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같은 전망은 TK 지역주의에 일정 부분 균열 조짐이 관측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TK공략에 어떤 전략으로 맞설 것인지…. 고영권 기자

한나라당 TK 아성 깨지나?

17대 총선을 70여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의 분석과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TK지역의 정당 지지도에서 한나라당이 여전히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전까지 40%에 육박했던 한나라당 지지도가 최근 들어 20%대로 반토막 난 것은 총선 정국에서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은 설상가상으로 ‘차떼기’ ‘책떼기’ 등의 불법 대선자금 비리와 박재욱 의원의 구속, 백승홍 의원의 탈당, 공천을 둘러싼 현역 의원과 정치신인 간의 첨예한 공천갈등, 민주당 조 대표의 대구 출마선언 등 2중 3중의 악재에 포위돼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대구 수성구 지역 시의원 재선거 참패의 후유증도 채 가시지 않은 상태다. 강철로 둘러싸이다시피 한 한나라당의 TK 텃밭 울타리에 녹이 슬어 여기저기에 구멍이 생긴 셈이다.

자연히 이번 총선은 1997년 대선 이후 일련의 선거처럼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무난히 당선되는 선거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한나라당도 잘 알고는 있다. 심지어 신한국당 시절 대구에서 2석밖에 건지지 못한 1996년 15대 총선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4ㆍ15 총선에 당의 명운을 걸고 있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이 같은 허점을 그냥 내버려둘 리는 없다. 민주당 조 대표가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대구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TK지역을 파고들기 위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두더지 작전’의 서막에 불과하다.

사실 민주당은 지난해 분당 사태 이후 이강철 열린우리당 영입추진단당을 비롯한 상당수 유력 인사들이 대거 이탈, TK지역에서 아예 명맥이 끊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팽배했었다. 이처럼 거의 전의를 상실하고 있던 TK지역의 민주당 분위기는 조 대표의 대구 출마선언으로 일거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조 대표의 대구행이 이 지역에서 큰 충격파를 던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김대중 정부 당시의 민주당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은 상당 부분 완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측은 “이전에는 TK지역에서 사무실을 얻거나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웠는데 이제 마음 놓고 선거운동 할 정도는 된다”고 전했다. 민주당을 배척하지 않는 새로운 문화만 하더라도 눈에 띄게 진일보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TK지역에서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인물을 적극 영입하고 무너진 당 조직도 복원키로 하는 등 발 빠른 총선행보를 보이고 있다.

TK 지역에 첫 뿌리를 내리려는 열린우리당의 움직임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당 의장 경선 이후 TK지역의 지지도가 큰 폭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자체 분석에 따라 내심 고무돼 있는 모습이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우리당 입장에서 툰드라지대나 마찬가지였던 TK지역에서 다소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민주당 조 대표에게 ‘지역주의 타파’라는 선수(先手)를 빼앗겨 점차 가시화하고 있는 반(反) 한나라당 표심이 양분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을 불식하는 것도 풀어야 할 난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이미 입당한 윤 전 부총리를 비롯해 권기홍 노동부장관 등 참여정부의 지역 출신 장ㆍ차관급 인사들의 출마를 독려, TK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아울러 집권여당의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 각종 지역현안 해결을 약속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내놓는 등 한나라당과의 양자구도 형성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이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대구시지부 중앙상임위 회의에서 대구 출마를 선언하며 TK공략에 나섰다.

한나라당 vs 인물 대결구도 될 듯

TK 지역을 향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거침없는 공세에 긴장을 하면서도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여전히 총선 승리를 자신한다. 지역주의의 힘을 믿고 있는 듯 하다. TK 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은 당연하다는 게 이 지역 출신 의원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한 의원은 “지역 여론을 종합해 볼 때 미우나 고우나 TK 정서를 대변하는 정당은 한나라당 밖에 없다는 인식이 두텁다”면서 “조 대표와 윤 전 부총리가 나와도 큰 싸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깎아 내렸다.

그러나 한나라당 간판으로 TK지역 출마를 노리는 정치 신인들과 중앙당 내 일각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TK 지역에서 죽기살기 식으로 ‘올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는 식의 타성에 젖어 묵은 때를 벗어내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과 함께, “참신한 인물이 없다” “한나라당은 아직도 TK 지역 내 친위세력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마스터베이션 정당’”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특히 지역 내 일부 오피니언 리더들과 젊은 층의 한나라당에 대한 애정도 예전 같지가 않다.

한 당직자는 “민주당 조 대표가 장렬하게 전사할 각오로 한나라당 심장부인 TK지역에 비수를 꽂으며 싸움을 걸어온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하고, “대대적인 인물 교체 등을 통한 환골탈태 없이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대대적인 TK 물갈이에 나설 것 같지는 않다.

때문에 TK 지역의 4ㆍ15 총선 흐름은 한나라당 대 인물 대결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대중 정부 때와는 달리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무소속으로 나서더라도 참신하고 좋은 인물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대구 출신의 안택수 의원은 “한나라당 공천을 받더라도 괜찮은 인물과 싸우는 지역은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TK 공략 작전이 한나라당이 독식해 온 TK 지역의 공고한 지역주의를 어느 정도 깰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성호기자


입력시간 : 2004-01-28 14:07


김성호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