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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돋친 '입담여걸' 삼국지
전여옥 vs 박영선 vs 이승희
한나라·우리·민주당 여성대변인, 서릿발 '말의 전쟁' 선봉장


장미의 전쟁.

탄핵 정국과 총선 전선에서 한나라 민주 열린우리당 등 여야 3당 여성대변인들의 치열한 공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미도 예전의 일부 장식용, 또는 끼워넣기식 박제 장미가 아니라 논리와 절제된 감성을 갖춘 생화여서 ‘아름다운 전쟁’이란 평도 뒤따른다.

장미의 전쟁은 3월16일 한나라당이 여성 보수논객인 전여옥(45)씨를 당 대변인으로 전격 영입하면서 불이 붙었다. 민주당 이승희(48) 대변인과 열린우리당 박영선(44) 대변인에 전여옥씨가 가세하면서 ‘대변인 3국지’가 펼쳐지고 있다는 평이다. 세 사람 모두 캐리어가 만만찮아 본격적인 여성 대변인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다.


- 박ㆍ전 KBS 입사동기, 이는 전 대학선배



왼쪽부터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
박영선 열린우리당 대변인. 이승희 민주당 대변인.



대변인 타이틀은 지난 1월 MBC 앵커 출신인 박영선씨가 먼저 달았다. 며칠 뒤 민주당은 현 정권에서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이승희씨를 대항마로 내세웠다. 가장 늦게 합류한 전여옥 대변인은 이승희 대변인의 대학(이화여대) 후배이면서, 공교롭게도 둘 다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 대변인은 박 대변인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78학번으로 81년 KBS 입사 동기다. 박 대변인은 82년 MBC로 옮기기 전까지 경제부에서 일했고, 전 대변인은 문화부 기자였다. 여성으로서 해외특파원을 지낸 것도 공통점이다. 당 대표격인 정동영 의장과 최병렬 전 대표가 직접 영입한 것도 똑같다.

전 대변인이 가세하기 전까지 박ㆍ이 대변인의 설전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당의 사활이 걸린 총선이 본격화되고, 탄핵정국 와중에 전 대변인이 합류하면서 대변인 3국지의 본막이 올랐다.

탄핵안이 가결되던 3월12일, 열린우리당 박 대변인과 민주당 이 대변인은 너무나 다른 창을 들었다. 박 대변인은 ‘국민이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탄핵 당했습니다’라는 제하의 논평을 내고 의회 쿠데타로 열린우리당 의원이 처참하게 쓰러지고 대한민국호가 침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박 대변인의 논평은 스스로 “얼마동안 대변인을 할 지 모르지만 이런 논평은 다시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특이했다. 하나는 박 대변인이 TV를 통해 탄핵안이 통과되는 장면을 보면서 논리적 재단없이 감정이 전하는 대로 논평이 나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논평이 나가기 전 항상 정동영 의장과 협의를 했는데, 그날은 박 대변인 단독으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그만큼 박 대변인에게 탄핵안 가결의 충격이 컸다.

같은 날 이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란 논평에서 정반대의 논지를 폈다. 이 대변인은 노 대통령 탄핵 의결은 대통령의 위헌ㆍ위법 행위에 대해 의회가 헌정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서 54년 헌정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주장했다.

- 정치적 시각 첨예한 대립각

탄핵 후폭풍이 정국을 몰아치면서 박 대변인은 한나라당 전 대변인과 2라운드에서 맞붙었다. 3월18일 오전 CBS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은 탄핵 정국에 대해 각이 선 입장 차를 내보였다. 전 대변인은 “탄핵안 가결 요건은 11일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다시 보면 된다”고 주장한 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투신에 대해선 “형법 252조 2항에 따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권력을 행사해 자살할 의도가 없던 피해자를 자살로 몰았기에 노 대통령은 자살 교사죄에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 대변인은 야권의 방송사 항의 방문을 거론하면서 “5공 당시의 언론통제 주역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언론통제 사고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한 사고의 변화가 없는 한 한나라당의 인식과 판단이 고쳐지기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또 “탄핵안 가결 장면이 CNN 등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되면서 대단히 창피했고 정치권 모두가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받아쳤다.

민주당 이 대변인은 며칠 뒤 ‘대통령의 간접 살인’이란 논평을 내고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 사실상 전 대변인의 손을 들어주는 행보를 취했다.

총선 정국의 이슈였던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세 대변인은 뚜렷한 시각 차를 드러냈다. 전 대변인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촛불집회가 자발적 집회라면 100만명 가까운 인원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거대한 무대장치 등이 동원될 수 있느냐”며 의문을 제기했고, 이 대변인은 21일 ‘촛불시위 조직동원에 앞장 선 열린당의 목적'이란 논평에서 열린우리당이 촛불시위에 조직적으로 인원을 동원해 지지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의 논평이 나오자 박 대변인은 ‘촛불집회를 보고…’라는 논평을 통해 시대정신과 시민정신을 읽지 못하는 야당은 존재가치가 없다고 맞섰다.

- 전 ‘공격형’, 이 ‘논리형’ 박 ‘섬세형’

세 대변인은 또 노무현 대통령의 헌재 불출석, 노 대통령의 ‘돼지저금통’, 고건 대통령 권한 대행의 사면법 개정안 거부 등과 관련해 양보 없는 기 싸움을 펼쳤다.

세 대변인은 싸움 스타일은 다르다. 전 대변인이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화법을 구사하는 ‘저돌형’이라면, 이 대변인은 ‘논리형’이다. 그녀는 정치학 박사답게 ‘첫째, 둘째, 셋째…’조목조목 문제점을 적시한다. 박 대변인은 ‘섬세형’으로 꼼꼼한 준비와 정제된 표현이 돋보인다.

전 대변인은 1주일 가량의 대변인 생활을 ‘막노동’에 비유하면서 노 코멘트 없는 대변인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만큼 정치를 투명한 장으로 순화시키겠다는 뜻이다. 또디지털 시대의 정보 및 말의 홍수 시대에 진실을 전달하는 대변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 대변인에 대해서는 “논평이 날카롭고 전문지식이 바탕이 된 품격을 갖추었다”고 평했다. 반면 박 대변인에 대해서는 “현장에 강한 방송인으로 작은 부분에도 노력하는 모습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 대변인은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논평을 하려고 한다”며 “단순히 당론을 전달하는 대변인이 아닌 당론을 만들어 가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새로운 대변인 상을 제시했다. 또한 전 대변인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날카로운 힘’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박 대변인에 대해선 “편하면서 전달력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박 대변인은, 괴테의 ‘파우스트’ 마지막 구절 중 ‘여성다움이 세상을 이끈다’는 말을 인용해 공격 일변도의 논평이 아니라 세상을 보듬고 철학이 있는, 그래서 선진 정치에 기여할 수 있는 대변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희망했다. 전ㆍ이 두 대변인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있는 분들”이라고 짧게 평했다. 스스로의 위상에 대해서는 ‘절벽 위의 산책’으로 표현하면서 여당 대변인의 어려움도 토로하기도 했다.

‘여풍’(女風)에 비유되는 여성 정치시대에 등장한 세 여성 대변인이 앞으로 삭막한 정치풍토를 어떻게 순화시킬 지 주목되는 요즘이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4-03-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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