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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 된 우리당, 자중지란?
6·5 재보선, 여당 참패 후폭풍
김혁규 총리지명 고사, 여권 주요 포스트 흔들…책임론 확산 조짐


“3대1이면 좀 창피해도 그럭저럭 견뎌볼만 하지 않겠나. 어차피 임기도 내년 1월까지인데….”

6ㆍ5 재보선 이틀 전, 패배를 감지한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낙담어린 표정 속에도 신기남 체제의 진로와 결부시켜 1석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당내 ‘조기 전대론’의 예봉을 피해가기 위해선 4개 광역단체장 선거 중 이미 패색이 짙은 부산시장, 경남도지사는 내주더라도 전남도지사와 제주도지사 중 1곳은 건져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4대0 참패.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현실로 나타났다. 위기는 벌써부터 김혁규 신기남 김근태 정동영 등 여권 내 주요 포스트들의 불안정한 거취와 맞물려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대안 부재론 등 깊어가는 여권 고민





김혁규 전 경남지사는 재보선 패배의 직격탄을 맞았다. 청와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선거 결과와 무관한 김 전지사에 대한 애착을 확인했다. 그러나 자신이 선대위원장으로 재보선을 진두지휘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 경남의 참패는 물론이고 전남과 제주 선거 패배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 정황이 분명해 도의적으로 총리 지명을 두말 않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야당의 강력한 반대는 차치하더라도 당내 호남세력과 소장파들을 중심으로 더욱 거세진 ‘김혁규 불가론’을 보면 가시방석에 앉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총리로 지명돼 표결까지 간다 해도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전개다. 게다가 야당과 당내 반발을 뚫고 총리가 된다 한들 국정의 난맥이 자신을 중심으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선 자칫 노 대통령의 운신의 폭까지 좁히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재보선 직후 그가 노 대통령을 독대해 ‘결자해지’ 차원에서 총리지명 고사 의향을 분명히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국 지난해 12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때부터 차기 총리 1순위는 물론, 대권주자의 반열까지 올랐던 김 전지사의 날개는 재보선 패배의 충격으로 한 순간에 꺾여버린 셈이다.

과도 체제로 출발한 신기남 의장도 재보선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중도하차할 운명에 처했다. 재보선 패배가 어떤 식으로든 지도부 문책론으로 이어질 것은 예견됐으나, 그 속도는 일반적인 관측을 넘어섰다.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당권파 그룹은 “권력 착근기에 치러진 선거이고, 신 의장도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지도부 책임론은 당치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선거는 결과다. 총선 승리 50여일만에 받아 된 최악의 성적표는 ‘동정론’이 발 디딜 틈을 허락치 않고 있다. 개혁노선의 좌충우돌과 정책혼선, 김혁규 총리지명 및 영남발전특위 논란 등 선거 패배의 요인들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책임이 고스란히 신 의장에게 떠맡겨졌다. 더욱이 “어차피 정동영 전 의장의 잔여 임기를 승계한 과도체제인만큼 신 의장이 전격 사퇴하고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는 비당권파와 호남세력의 요구가 누적돼온 마당에 선거 참패는 쐐기를 박았다.


- 김근태 전 대표 당 잔류 여부에 관심

하지만 여권의 고민은 신 의장 이후 누가 새 의장이 되더라도 확실한 당의 구심으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대안 부재에 있다. 정동영 전의장, 김근태 전원내대표의 입각설이 처음 나돌 때부터 152명의 거대여당에는 확실한 장악력을 지닌 조타수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조기 전당대회가 치러져 새 지도부를 선출하더라도 분권형 혹은 혼합형 집단지도체제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물밑에선 정 전의장이나 김 전대표 중 한명이 입각을 포기하고 당에 잔류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타진되고 있다.

이 시나리오가 추진된다면 시선은 김 전대표에 쏠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통일부 장관 자리를 놓고 정 전의장과의 신경전에서 패한 듯한 인상이 부담스러운 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도 국민연금이라는 초대형 지뢰가 터진 마당에 입각 초기부터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김 전대표를 지지하는 측에선 통일부장관 입각을 재추진하거나, 당 잔류를 통해 지지세력 확보에 나서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정 전의장은 재보선 후폭풍에서 한발 벗어나 있다. 선거기간에 각종 지원유세를 통해 나름의 역할을 다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보선이 끝난 직후인 7일부터 미국 방문길에 오른 것도 선점해 놓은 통일부장관 입각 문제로 더 이상의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정 전의장은 개각 직전까지 미국에 머물며 상황변화를 관망하는 한편, 통일부장관 굳히기를 위한 원거리 행보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과 청와대간의 창구 역할을 했던 문희상 의원은 노 대통령의 정치특보 폐지령에 따라 왕성한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그의 공백을 틈타 호남의 염동연 의원과 영남의 이강철 국민참여운동본부장 등 노 대통령의 ‘시니어 측근’ 그룹이 새로운 당ㆍ청 가교로 주목을 받고 있다. 염 의원은 민주당과의 물밑 통합 논의를, 이 본부장은 지역균형발전특위에서 역할을 맡아 영남권 ‘대부’로 활약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날개 단 박근혜, 다시 선 한화갑

여당 주요 포스트들이 복잡한 갈림길에 처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날개를 달았다. 당의 한 인사는 “총선 때 발휘한 ‘감성의 카리스마’에 재보선을 비롯한 정국현안을 돌파하며 ‘구원투수’가 아닌, 확실한 ‘에이스’로서의 리더십을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3선그룹을 중심으로 박 대표의 ‘이미지 정치’를 비판해 온 세력들도 현저하게 목소리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이에 따라 대중적 인기와 함께 당내에 지지기반을 공고하게 구축, 한나라당 대권주자군(群)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내달 열릴 전당대회도 박근혜 재추대의 자리가 될 것이 라는 데 이견이 없다.

몰락 직전의 상황에서 당을 구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도 ‘호남 맹주’로서의 위상을 확인했다. 민주당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한 대표는 열린우리당을 향한 개별 의원들의 ‘백기투항’을 차단하는 확실한 구심으로 자리 잡았다. 당분간 한 대표는 원내 활동을 통해 사안과 국면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몸값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같은 행보는 중장기적으로 기정사실화된 열린우리당과의 합당 시 교섭력과 지분 확대를 노린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


입력시간 : 2004-06-0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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