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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야당 체질 몸에 익었다?
분양원가 공개·주식신탁제 도입 문제 등서 보수가 무색한 주장
국정 책임서 자유로운 입장 십분 활용 지지층 넓히기 전략


“우리 사회에서 친북한 분위기를 힘겹게 막아내고 있던 한나라당마저도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우리 사회의 친북적 분위기에 편승해서 급기야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를 지경이다. 한마디로 이 땅의 보수가 다 죽었다는 처절한 현실이다.”



10일 국회 대표실 한나라당 상임 운영위 박근혜 대표 발언. 한나라당은 여당에 앞서 이슈 선점을 해나가고 있어 개혁 경쟁에서 앞서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 고영권 기자



보수의 ‘마지막 보루’를 자임하는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보기에 지금의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북측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최근 6ㆍ15 정상회담 기념행사에 한나라당 대표로서는 최초로 박근혜 대표가 참석했다. 일각에선 박 대표가 대북 특사로 적임자라는 말이 나오고 박 대표도 “용의가 있다”는 반응이다.

그뿐인가. 당 지도부는 유연한 대북정책에 이구동성이다. “이제는 한나라당도 남북문제에 열린 자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김덕룡 원내대표),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간의 물꼬를 트고 역사적으로 기록이 돼가고 있다”(김형오 사무총장), “6ㆍ15 공동선언에 대한 전향적인 평가를 해야 할 때가 됐고 DJ에 대한 평가도 다시 돼야 한다”(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


- ‘우향우’ 열린 우리당 뭇매

한나라당이 좌향좌를 하고 있는 동안 열린우리당은 지지기반이던 개혁진영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파병 강행 방침 앞에 당내 파병 반대론은 이렇다 할 맥 한번 못춰 보고 무너졌다. 내부 격론이 있었다고는 하나 6월 18일의 정책 의원총회는 사실상 정부 방침을 그대로 승인하기 위한 절차상의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16대 국회에서 단식농성까지 벌이며 이라크 파병 반대론을 주도하던 일부 재선 의원은 기회주의자로 내몰렸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자리가 뒤바뀐 듯한 모습은 경제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논란이 단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다. 장사의 원리를 인정한다면 원가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고 ‘시장의 논리’로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했다. 열린우리당에선 정부가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는 원가연동제의 효율성을 설파하기에 바빠졌다.

반면 한나라당은 “주택공사도 장사의 논리로 이문을 따져야 하느냐. 노 대통령이 철저한 신자유주의자로 변모한 것 같다”는 파격적인 논평을 냈다. 당 지도부는 분양원가 공개가 한나라당의 총선 공약임을 더욱 강조했다. 한술 더 떠 건설회사 CEO 출신인 김양수 의원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분양원가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며 관련법 개정에 나설 뜻을 밝혔다.

당 소속 이명박 서울시장은 지난 2월 상암지구 7단지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한 데 이어 상암 5~6단지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당 소속 의원들의 상당수가 분양가 공개에 반대하는 철저한 ‘시장주의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지기반 이탈과 파격 행보의 연속이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이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한나라당과 정책적 ‘직거래’를 하기로 했다. 해당분야 상임위 내정자들을 중심으로 물밑 타진은 끝났다. 성사만 되면 가히 17대 국회 ‘좌우 합작’의 첫 작품이 될 듯하다.

‘고위공직자 주식백지신탁제’ 도입 여부를 놓고도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을 압도했다. 당초 행정자치부와 열린우리당은 소급입법에 따른 위헌 논란을 우려해 적용 범위에서 17대 국회의원들을 제외키로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17대 의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천명한 뒤 121명의 소속의원 가운데 100명 이상의 동참 서명까지 벌였다. 허를 찔린 열린우리당도 부랴부랴 17대 국회의원도 주식백지신탁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은 “개혁한다던 여당이 야당 따라오기 바쁘다”고 비꼬았다.


- “여당이 야당 따라오기 바쁘다”

열린우리당의 16일 확대간부회의. 당청갈등과 당내 세력간 파워게임으로 정책개발에 소홀하고 혼선이 잦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개혁의 속도를 놓고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을 비웃는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양당이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면 어렴풋한 답이 나온다. 열린우리당의 답답함은 집권의 책임성에서 기인한다. 다소 곤란한 측면이 있어도 청와대와 정부의 방침을 결국엔 수용해야 할 처지라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 문제만 하더라도 노 대통령과 정부는 파병 강행 방침에서 한발짝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의 입장이 워낙 완강하다 보니 결과는 사실상 청와대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 과정에 일부 이견이 표출되면서 ‘당-청 갈등’으로 비쳐진 측면이 있으나, 이는 오히려 청와대의 막강한 파워만 확인시킨 그림이 됐다. 같은 맥락에서 분양원가 공개 문제도 “계급장 떼고” ‘버티기’를 지속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당 지도부는 하루빨리 국회가 열려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각종 사회개혁, 정치개혁 이슈를 쏟아내면 정국 주도권을 쉽게 되찾아 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같은 판단은 16대 국회의 한나라당을 가정한 예측이기에 허술하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변화된 17대 지형과 관련해 “우리는 아무리 왼쪽으로 가도 잃을 게 없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보수세력이 한나라당을 건너뛰어 열린우리당을 선택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외연을 확장하는 길은 거대한 중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내 상황도 이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도록 변했다.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소장파 그룹이 당의 진로를 확실하게 좌우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선배들이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비판한 시민단체에 속속 가입했다. 또한 “5ㆍ18 가해자인 한나라당은 당장은 욕을 얻어먹고 뺨을 맞더라도 호남인들이 용서할 때까지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해야 한다”고 적극적인 ‘서진(西進)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대표는 야당의 맏형으로서 민주노동당 등 ‘비교섭단체 포용’을 적극 주문한다. ‘열린우리당 고사작전’의 워밍업이다.

하기에 한나라당이 불모지 개척을 위해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여당이 가장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부분, ‘개혁 후퇴’를 집요하게 공격해 나가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분양원가 공개 방침이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보다는 “어차피 여권은 원가공개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한계를 노린 전략적 측면이 강하듯, 일정한 생색만 내도 반사이익은 몇 배로 돌아온다는 야당의 경험법칙을 사안과 국면마다 적극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내년 국회의원 재보선까지 전개될 중원 다툼 1라운드에서 운신의 폭과 전략적 다양성은 한나라당이 월등히 우세하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


입력시간 : 2004-06-2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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