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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죽이기 X파일 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행적 들추기, 한나라 전략적 득실계산 분주
야당 지도자 안착기에 정체성 논쟁으로 '부드러운 리더십 상실' 지적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상임운영회의에서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 고영권 기자



4ㆍ15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24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향해 “ 친일파의 딸 박근혜”, “ 유신 독재 주역의 딸 박근혜” 등 박정희 전대통령과 결부시킨 연좌제적 비난을 퍼부었다. 최병렬 전 대표의 낙마 후 박 대표가 한나라당의 새 대표로 취임한 지 하루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여권의 기획은 총선에서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완고한 보수층의 ‘ 박정희 향수’를 자극시키는 역작용에 일조한 측면이 컸다.

7ㆍ19 전당 대회를 통해 제 2기 박근혜 체제가 출범한 직후에도 유사한 현상이 반복됐다. 여기엔 박 대표가 결코 작지 않은 ‘ 시비 거리’를 제공했다. “ 나라의 정체성을 훼손하면 전면전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는 박 대표의 취임 일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여당은 “ 한나라당 내부 단속용이 아니냐”는 반신반의 속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대대적인 반격을 퍼부었다. “ 철학 없는 색깔론”, “ 탤런트 정치”, “ 아프리카 반군이냐” 등의 갖은 수사가 동원됐다. 급기야 유인태 의원이 이례적으로 기자 회견을 자청하고 나서 “ 유신의 퍼스트 레이디”라는 말로 중구난방격이었던 포커스를 한 곳으로 조정했다.


- 구국여성 봉사단에 주목

박 대표의 대표 취임 때마다 반복된 이 같은 현상은 일견 비슷한 듯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비판의 초점이 ‘ 박정희’에서 ‘ 박근혜’로 옮겨 갔다는 것이다. 유 의원의 기자 회견이 있은 며칠 뒤, 여권의 한 기획통은 ‘ 유신의 퍼스트레이디’라는 비판 슬로건을 이렇게 풀이했다. “박정희의 부정적 유산을 들춰 박근혜에게 오버랩시키는 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아버지가 아무리 잘못 했어도 그게 왜 딸의 책임이냐고 반문한다. 따라서 박 대표가 만약 대선 후보로 나서려고 한다면 불가피하게 유신 시절 퍼스트레이디로서 ‘주역’을 담당했던 과거에 대해 분명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일체화’, 그리고 유신 통치의 ‘적극적 조력자’로서 박 대표 개인의 과거 행적을 파헤치려는 여권의 전략을 암시한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수장학회’ 문제를 첫 번째 ‘박근혜 파일’로 꺼내 들었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꾸렸고, 8월말까지 속도감 있는 조사를 통해 결과를 공개키로 했다. 추상적이고 지루한 정체성 논쟁과 달리 ‘팩트’가 나오면 여론의 반응도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그러나 ‘정수장학회’ 문제는 맛보기에 불과해 보인다. 최초 설립자였던 고 김지태씨가 1962년 재단을 5ㆍ16 군부에 헌납하게 된 과정은 아무래도 박 대표의 ‘공주’ 시절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짜배기 ‘박근혜 파일’은 1974년 육영수 사망 이후 퍼스트 레이디로 활동했던 5년여에 집중돼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권에선 1976년 일종의 퍼스트 레이디용 사업의 일환으로 결성돼 사업 과정에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구국여성 봉사단(1978년 ‘새마음 봉사단’으로 개명)’에 주목한다. 과거 전두환 정권도 이를 건드렸지만 박 대표의 불법 행위 여부는 드러난 바 없었다. 그러나 입증 자료만 뒷받침 된다면 폭발력이 만만치 않은 ‘히든 카드’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여권이 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터뜨릴 가능성은 낮다. 앞으로 3년이나 남은 대선을 앞두고 집중 포화를 퍼부을 경우 자칫 박 대표에 대한 여론의 내성만 키워주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권은 노무현 대통령의 8ㆍ15 광복절 경축사를 계기로 ‘민생 경제 살리기’로 대대적인 국면 전환을 꾀한다는 年㎱潔底?정체성 논쟁의 연장선에 있는 ‘박근혜 때리기’를 지속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당분간 당 지도부를 비롯한 일체의 역량은 경제 문제에 집중하면서 ‘별동대’격인 진상조사단이 ‘정수장학회’ 문제를 치고 나가는 방식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 박 대표 강성행보에 한계

한편 이 같은 여권의 ‘박근혜 때리기’에 대해 한나라당도 전략적 득실 관계를 분주하게 따지고 있다. 현시점에서의 대응 방안에 대한 주문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대권 가도와 연관시킨 측면에선 “ 반드시 악재인 것만은 아니다”는 반응이다. 당의 한 초선 의원은 “ 여당이 박 대표에 대한 공격을 하면 할수록 대권주자로서의 이미지만 강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며 “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문제가 선거 때가 아닌 평상시에 불거진 것은 박 대표에게는 잘 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의미에서 박 대표가 머지않아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사퇴 등 개인 문제 정리는 물론, 부친의 과오에 대한 ‘ 통큰 사과’를 할 것이라는 정치권의 관측도 대권 행보와의 긴밀한 관련 속에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서 박 대표는 적지 않은 손상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당내 비토세력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제기한 ‘ 정체성 논쟁’이 비주류와의 감정의 골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이재오 의원과의 ‘ 유신 논쟁’이 대표적이다. 이것이 당내 역학관계와 직결된 대권후보군 사이의 대립을 격화시키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할 경우, 박 대표는 “ 다름 아닌 리더십의 안착기에 리더십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의 말까지 들린다.

또한 박 대표는 이번 정체성 논쟁에서 ‘강한 야당 지도자’로서의 이미지에 주력한 나머지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엔 ‘강인한 인상’ 뒤에 잠재돼 있던 박 대표의 보수적 역사 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난 데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이 같은 평가에 방점을 두는 당내 인사들은 “ 대권 행보와 결부해 봐도 유연한 행보의 여지를 스스로 위축시켰다”고 걱정한다. 박 대표가 총체적인 과거사 문제에 대해 현재와 같은 ‘ 강성 행보’로 일관할 경우, ‘ 과거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느냐는 회의 섞인 반문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여권이 숨겨둔 제 2, 제 3의 ‘ 박근혜 파일’이 공개될 때마다 같은 방식의 대응을 고수할 경우, 자칫 카운터 펀치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낙관과 우려 속에 박 대표는 일단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 나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 정치적 도약이냐 좌초냐의 첫 번째 고비에서,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외로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감지한 듯 하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


입력시간 : 2004-08-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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