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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입법에 여야 '사분오열'
우리당 지도부 핵분열, 한나라당 보수·소장파 갈등으로 처리 '안개 속'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다.



정기국회 태풍의 핵인 국가보안법, 과거사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관계법 등 이른바 ‘4대 입법’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 내부의 전열이 종잡을 수 없이 흐트러졌다. 당초 민주노동당 민주당 등과 손잡고 연내 처리 방침을 서둘렀던 열린우리당은 계파간 이해 관계, 지도부 내의 핵분열이 겹치면서 속도와 내용에서의 ‘우회론’이 우세해졌다. 한나라당도 소장파와 보수파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4대 입법을 둘러싼 내홍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핵분열은 4대 입법 처리의 향배를 안개 속에 밀어 넣고 있는 요인이다. 이부영 의장은 10일 “산이 높으면 돌아가고 물이 깊으면 얕은 곳을 골라 건너야 한다. 옛말에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속도 조절을 당부했다.

이 의장은 “주관적 의지에 대단히 열중하다 보니 객관적 조건 같은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도 했다. 4대 법안에 대한 여론의 추이를 살펴야 하고, 한나라당의 강경 반대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방 처리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드러낸 것이다.

- 처리 시한 놓고 천 대표·이 의장 갈등

그러나 천정배 원내 대표는 생각이 확연히 다르다. 이 의장의 발언 직후 “이 의장의 말에 덧붙일 게 없으니 기자들이 알아서 해석하라”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 의장의 발언이 기존의 당 방침을 뒤엎는 것임과 동시에 한나라당과의 협상력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다는 판단으로 비쳐졌다. 천 대표는 이에 따라 “국회 파행으로 13일을 까먹었으니 더 빨리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연내 처리 방침은 불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지도부의 핵분열을 당내에 심상치 않은 흐름을 형성했다. 특히 이 의장이 미국 대선 직후 남북정상회담 조기 개최를 거론한 점, 엄밀히 따지면 원내대표 소관인 4대 입법 문제 등에 대해 이 의장의 말수가 부쩍 늘어난 점 등에 천 대표측은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른 반작용인듯 천 대표측에서는 “의장이 요즘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노골적인 불만이 많다. 이 의장의 당권직 승계부터 예측됐던 계파 갈등이 내년 3월 전당 대회를 앞두고 표면화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천 대표의 입장에선 ‘4대 입법’의 후퇴는 곧 차기 구도에서의 탈락을 의미하기에, 이 의장의 행보를 당권 경쟁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욱이 국보법 폐지 후 대체 입법을 주장하고 있는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이 급속도로 발언권을 높여 가며 ‘속도 조절론’의 지원 세력이 되고 있어 천 대표측의 긴장도는 크게 높아져 있다. 이미 당내 국보법 논쟁 과정에서도 안개모와 천 대표 사이의 갈등은 공공연했다.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나라당 국정파탄 및 4대 악법 저지 국민대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의원 들이 3대 입법 철회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종철 기자

한편 지도부의 시각차만큼이나 큰 문제는 당 내에서 4대입법 처리의 ‘진의’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의장과 천 대표가 ‘속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나라당과의 타협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선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386 세대를 비롯한 당내 강경파는 이 의장의 ‘속도 조절’ 발언 이후, 4대 입법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의 후퇴까지 의심하며 지도부와 각을 세우고 있다.

초선인 최재천 의원은 “등산을 앞 둔 산악인이 산을 한 번 올려다 보고 지레 포기하거나 겁을 먹고 그만두겠다는 식이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면서 이 의장의 ‘우회론’을 정면 반박했다. 40대 의원 모임인 ‘아침이슬’ 소속의 한 의원은 “5,000년만에 한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라고 했던 말은 어디갔느냐”고 천 대표의 의지를 의심했다. 개혁당 그룹의 유시민 의원은 “4대 법안이 내년으로 넘어가면 사실상 처리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4대 입법의 ‘분리 처리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국보법을 뺀 나머지 3개 법안의 경우 여론이 비교적 호의적인 만큼 한나라당과의 절충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천 대표측도 “3개 법안은 한나라당과 의견 조율이 어렵지 않다. 다만 국보법 문제가 3개 법안에 대한 타협이냐 대립이냐의 키를 쥐고 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국보법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고 한나라당의 반대가 거센 만큼 뒤로 미루자는 ‘협상파’의 주장과 차라리 본회의에서 모든 의견을 상정하고 ‘자유투표’에 붙여 정면 돌파하자는 ‘강경파’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 한나라 보수파·개혁파 입장차로 내홍

난마처럼 얽힌 열린우리당 상황만큼은 아니지만 당론조차 정하지 못한 한나라당도 여전히 내부 진통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보법상 불고지죄 등 최소한의 조항만 개정하자는 ‘자유 포럼’ 등 보수파와 정부참칭, 불고지, 잠입탈출, 통신회합 등 쟁점 조항을 전면 삭제하자는 ‘새정치수요모임’의 입장 차이가 워낙 크다.

여기에 3선의원들 중심의 ‘국가발전연구회’는 인권 침해 논란 소지가 있는 부분을 대폭 수정하는 대신 테러 등 새로운 위협에 대비한 내용을 반영하는 대체 입법 방안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수요 모임’에서도 국보법의 명칭을 바꾸자는 입장과도 부분 상통하지만, 당의 기본 방침과는 크게 어긋나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4대 입법, 특히 국보법 문제는 보수 - 소장파와의 갈등의 핵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김용갑, 정형근 의원 등은 일부 소장파 의원들에게 “차라리 당을 떠나라”고 최후 통첩을 보낸 지 오래고, 이에 원희룡 고진화 의원은 “이제는 노선 투쟁을 해야 할 시기”라며 “국보법 등에 대한 법안으로 승부하겠다”고 정면 대응을 선언했다. 결국 이는 당 지도부의 ‘수구화’에 대한 소장파의 위기 의식과 맞물려 있어, 당의 정국 대응 기조를 둘러싼 내홍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


입력시간 : 2004-11-1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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