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미로 앞의 한·미 정상…北 끌어낼 마지막 카드찾기 고심

남북 정상회담 카드 꺼내나
북핵 미로 앞의 한·미 정상…北 끌어낼 마지막 카드찾기 고심

“과연 한국과 미국이 공조를 통해 평양에 대한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한ㆍ미 동맹관계는 속 빈 조개껍데기에 불과하다.” 마이클 아머코스트(Michael Armacost) 전 브루킹스연구소장이 진단한 한ㆍ미 동맹의 불안한 현주소다.

6월 11일(한국 시각) 한ㆍ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아머코스트의 말대로 이번 정상회담은 북핵 위기 해결의 최대 분수령이 되는 것은 물론, 한ㆍ미 관계의 심각한 실험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정상회담의 의제는 삐걱거리는 한ㆍ미동맹과 북한 핵 문제다. 우선 두 정상은 ‘동북아 균형자론’ 논란 등으로 켜켜이 쌓인 서울과 워싱턴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는데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국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은 미국이 아닌 일본에 대한 우려 탓에 나왔다고 해명했다. 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종석 사무차장과 서주석 전략기획실장이 연쇄적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미뤄 볼 때 ‘작전계획 5029’ 등 해석차가 있던 사안들은 일정 수준 사전 정지작업이 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핵 해결 최대 분수령
결국 정상회담의 초점은 한ㆍ미동맹 갈등의 뿌리이기도 한 북한 핵 문제다. 북핵 해법이 이번 회담의 최대 변수인 셈. 우선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여러 방안이 논의되겠지만, 핵 실험 강행 등 만약의 경우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당장 미국은 6월 남북대화 이후에도 북한이 6자 회담을 계속 거부할 경우 한국의 분명한 입장이 무엇인지 대답을 요구할 수 있다.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설득할 만한 카드를 만들지 못한다면 북한에 대한 제재 카드만 부각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6월의 남북 접촉은 무의미해 질 뿐 아니라 향후 남북 간 채널도 막힐 수밖에 없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국 정부에게 심각한 회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탓에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한ㆍ미 정상회담 직후인 6월21일부터 남북 장관급 회담이 기다리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마지막 시도가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다. 만약 남북 정상회담을 북한이 거부하든지, 회담이 열렸는데도 별 성과가 없을 경우 한국도 ‘추가적 조치’ 등 미국과 행동을 같이 할 명분을 쌓을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이 한국에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를 줘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현재 북한의 입장에서도 밑질 것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소한 미국의 강경 분위기에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시간은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의 속내다. 최근 북핵 문제를 보는 워싱턴의 공기가 서울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간단치 않다는 것이 여러 채널로 확인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근 야치 쇼타료(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한ㆍ미 간 불신 문제’를 정면 거론해 논란을 빚었지만, 실제 워싱턴은 ‘한국 정부가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할 것인가’에 대해 의심하는 분위기란 것이다.

美 행정부의 한국 불신 해소가 관건
부시 행정부 내부에선 심지어 한국 탓에 중국도 강력하게 북한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중국이 “북핵 문제 당사자인 한국도 북한에 강하게 얘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이 동맹관계인 북한에 한국보다 더 강한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는 점을 미국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이어서 우리가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내놓았을 때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중도 성향의 워싱턴 케이토(CATO) 연구소 덕 밴도우(Doug Bandow) 선임연구원은 워싱턴 분석가들의 일반적 견해와 달리 요즘 미 행정부 내 분위기는 북핵 문제 해결에 군사적 옵션을 구체적으로 거론할 만큼 강경하다고 전했다. 이라크에 묶인 것은 육군이지 해군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미국이 2개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나 하는 회의론도 일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행정부 내 강경파들은 미 국민들이 만화ㆍ게임 등에서 희화화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우스꽝스러운 위험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군사적 결행에는 주변국들의 동의가 변수이지만, 북한에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더라도 이라크전 때보다 여론의 부담이 적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5월25일 북한에서 10년간 지속해 온 미?유해 발굴 작업을 돌연 중단한 데 이어 조만간 F-117 스텔스 전폭기 15대를 한국에 배치할 계획이다. 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국가가 아니라 정권을 공격 목표로 삼을 수 있다”며 노골적으로 김정일 정권 붕괴를 겨냥한 초강경 발언도 했다. ‘적대적 무시(hostile neglect)’ 전략으로 일관하던 미국이 최근 들어서는 군사적 옵션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북핵 문제에 최후 통첩식 수순을 밝는 듯한 인상이다.

북핵 위기에 대해 북ㆍ미 양자 공동 책임론을 견지하던 주변국들의 태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 평양 당국을 대하는 태도가 냉랭해진 것이다. 결국 시간이 북한 편은 아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우선 중국의 피로감이 역력하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5월24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북핵 교착상황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 후 주석은 “중국은 현대화 실현을 위해 장기적으로 고군분투 해야 한다”며 “따라서 훌륭한 주변환경과 평화로운 국제환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전날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북핵에 대한 (중국의) 인내심의 레드라인이 있다”고 밝힌 것도 맥을 같이 한다. 평양 당국의 버티기가 중국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와 불만을 토로한 셈이다.

한술 더 떠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아태연구실 진린보(晋林波) 주임은 미국이 북한에 군사행동을 강행할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중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적다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미국이 하와이 기지 등에서 탄도미사일을 이용해 북한을 정밀 타격할 경우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북, 고립무원에 빠질 가능성도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내부에서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6자 구도 내에서 북한 편에 서 왔던 러시아이기에 북한으로선 더욱 긴장되는 대목이다. 5월24일 북한을 제외한 6자 회담 참여 5개국의 중량급 외교관들이 한 자리에 모인 ‘도쿄대 5자 회담’에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주일대사는 북한을 비난하고 제재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로슈코프 주일대사는 외무부 차관이던 2002년 말 북핵 문제가 터진 직후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2시간 넘게 회담한 장본인이다.

로슈코프 주일대사는 “6자 회담을 늘 후퇴시킨 것은 북한”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또 “객관적이고 생산적인 대화와 결론을 이끌어 낼 기회가 있었음에도 응하지 않았다”며 현재의 위기에 대한 책임이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는 물론 다양한 인도적 채널도 막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주변국들은 북한에 핵실험을 한다면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되는 것임을 한 목소리로 경고한 셈이다. 북한은 미국이 파놓은 ‘국제적 고립’이란 함정에 빠진 듯한 상황이다. 평양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6월11일 한ㆍ미 정상이 만난다. 회담장을 나오는 두 정상의 표정에 따라 한반도의 풍향이 달라질 전망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6-09 18:31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