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후폭풍 부나" 촉각

천정배·김종빈 '불안한 동거' 4개월 마감
"검찰 개혁 후폭풍 부나" 촉각

천정배 법무장관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꺼낸 ‘수사지휘권’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종빈 검찰총장이 그에 맞서다 물러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이념대립이 증폭되고 검찰개혁의 후폭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천 장관과 김 전 총장은 수사지휘권 문제로 한차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지난 8월 천 장관은 대상그룹 수사에 대한 검찰의 예비감찰을 보고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 하면 법에 따라 구체적 사건에 지휘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김 전 총장은 다음날 “검찰청법에는 장관의 수사 지휘는 검찰총장을 통해 하도록 돼 있다”며 “비합리적 지휘까지 승복할 필요가 없다”고 맞받았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으로 비춰지는 등 불안한 동거를 유지하던 양측은 2개월 뒤 끝내 파경을 맞고 말았다.

천 장관이 ‘6ㆍ25는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한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데 대해 김 전 총장이 사실상 불복의 뜻을 밝히며 사퇴한 것이다.

이번 수사지휘권 파문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강 교수에 대해 천 장관이 12일 불구속 수사를 하도록 검찰총장에게 지휘하면서 촉발됐다.

이에 김 전 총장은 검찰 내부의 상이한 의견들을 두루 감안해 13일 수사지휘권을 수용해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날 김 전 총장이 총장직 사퇴라는 초강경 카드를 내밀면서 상황은 예상치 않았던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에 천 장관과 청와대는 강력하게 대응했다. 김 전 총장의 사표 제출 사실과 검찰 간부들의 동반사퇴 움직임이 알려지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곧바로 경남 진해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노 대통령이 크게 분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청와대는 15일 새벽 핵심 관계자회의를 열어 사표 수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전언이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16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김 총장의 사표 제출은 검찰의 권위나 신뢰, 또 검찰권의 독립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날 오후 김 전 총장의 사표가 수리되면서 수사지휘권을 둘러싼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3일 전쟁’은 실세 장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한나라당 "남북정상회담 교두보 "주장

그러나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는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여러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해석을 바탕으로 향후 정국과 검찰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은 천 장관이 행사한 수사지휘권에 ‘불순한 음모’가 있다고 주장한다. 수사지휘 주체가 지난해 말 우리당 원내대표로서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4대 법안을 강하게 밀어부친 장본인인데다, 강 교수 사건은 국가보안법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천 장관이 이번 사건에 적극 개입한 것도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천 장관의 행태는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해 (남북)정상회담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참여정부 출범 후 20%대의 최저 지지율을 보이는데다 10ㆍ26 재보선, 내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반면 천 장관을 비롯한 여권은 수사지휘권 행사는 검찰청법에 규정된 정당한 권한이며, 한나라당의 주장은 또 다른 ‘색깔론’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천 장관은 “검찰은 인권옹호 기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의 정신을 구현함으로써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강정구 교수에 대해서는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구속사유를 충족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법에 존립근거가 있고 무분별한 인신구속의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꾸자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주장은 군부독재 무덤에 부쳐야 할 색깔론의 망령”이라고 반박했다.

문 의장은 또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정체성 논란이나 정상회담과는 아무관계가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번 파문의 가장 큰 피해자라며 분개하고 있지만 후폭풍에 대한 우려는 상당하다. 무엇보다 강 교수 사건이 수사지휘권을 적용할만한 사건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검찰총장이 물러날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해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장관은 검찰청법에 규정된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하지만 강 교수는 재범인데다 범죄의 중대성에 비춰 구속수사 대상이다.

개인 인권도 중요하지만 다른 법익도 중요하다. 장관의 권한행사는 정치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전 총장의 사퇴보다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아래 불어 닥칠 외부의 입김을 더욱 경계했다. 지난 6월 김승규 법무장관이 국정원장으로 옮겨감에 따라 후임 법무수장이 누가 될 것인가에 관심이 고조될 즈음 대검의 한 간부는 “천정배 의원이 올 가능성이 있느냐”고 기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이에 강금실 전 장관이 송광수 전 검찰총장에 밀린 전례를 설명하고 “강성인 천 의원이 올 수도 있다”고 하자 그는 “천 의원이 법무장관이 되면 강금실 장관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더 큰 파란이 대검에 몰아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천 장관이 평소 검찰을 탐탁치 않게 보아온 데다 참여정부 개혁의 파수꾼을 자처한 점을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그의 우려는 4개월여 만에 정확히 현실로 나타났다.

"검찰 개혁아닌 통제 노린 것" 의문도

검찰은 이번 파문을 계기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공판중심주의 도입 등 사법개혁을 비롯해 검ㆍ경 수사권 조정, 공직부패수사처(공비처) 도입 등 검찰을 옥죌 수 있는 제도 정비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천 장관이 2003년 국정감사 때 강금실 장관을 향해 “검찰 개혁이 미미하다”고 강하게 질타하며 제시한 ‘검찰개혁 10대 과제’를 주목한다.

10대 과제의 골자는 인권 옹호와 검찰권 남용에 대한 직접적인 제한과 감시ㆍ견제 장치 마련으로 이번 수사지휘권 행사와 맥락을 같이하는 내용들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가 청와대와 교감아래 이뤄졌다는 판단과 함께 여권이 검찰개혁을 넘어 검찰을 통제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 송광수 전 총장 때와 같은 검찰의 힘을 여권이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이 수사중인 삼성채권 500억원의 행방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그 돈의 일부가 우리당 창당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여권이 검찰을 압박하는 이면에는 스스로의 약점을 덮기 위한 측면이 있다는 의혹은 그래서 나온다.

(언론중재위 조정합의문)

본지는 지난 7월19일자 18~19면에 “정동영 장관 오버하는거 아냐?”라는 제목 하에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대북 비료지원과 ‘중대제안’의 결정과정에서 대통령과 충분한 보고 및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동영 장관은 2005년 초 북한의 비료지원 요청 이래 비료지원 문제에 관하여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사전보고를 해왔고, ‘중대제안’도 대통령에게 수시로 진행상황을 보고하여 마련한 후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북하여 제안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통일부는 정동영 장관이 중요한 남북관계 사안에 대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왔다고 밝혀 왔습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10-26 14:2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