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진 충청의 힘, 정국지형 바꾸나

헌법재판소가 11월24일 행정도시 특별법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을 각하함에 따라 1년여를 끌어온 수도이전 논란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해온 데다 차기 대권주자들까지 입장차를 보여 향후 정국지형과 대선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야는 당장 내년 지방선거의 판도를 분석하고 있고, 차기 주자들은 헌재 결정이 가져올 후폭풍의 손익계산을 하느라 분주하다.

열린우리당의 충청권 초선 의원은 “지난 4ㆍ30 재보선과 10ㆍ26 재선거에서 등을 돌린 충청권 민심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주저하던 P, K, L 의원들도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충청권에 뿌리를 내려가던 친(親) 한나라당 분위기가 반전이 되지 않을까 우려를 나타냈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헌재 결정은 합헌이든 위헌이든 한나라당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며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와 같은 ‘충청권 악몽’이 재현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 대선은 사실상 충청표때문에 패했다”며 “헌재 결정 이후 당이 충청표심을 붙잡을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중심당, 환영 속 우려의 시선도

충청권을 중심으로 추진중인 국민중심당(가칭)은 11월24일 창당 발기인대회 도중 헌재 결정을 접하고 “위헌소송 각하 결정은 시대와 역사의 선택”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으나 일각에서는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신당의 핵심인사는 “헌재 결정으로 충청권이 발전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충청권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자리잡으려는 계획이 차질을 빚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11월 20일 오후 헌법재판소에 열린 행정도시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선고공판. 박서강 기자










그는 “3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신당이 출범할 경우 충청 지역에선 열린우리당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고, 지난 10월말 지역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사에서는 열린우리당과 국민중심당이 충청권에서 각각 18%와 13%의 지지를 얻어 접전을 벌였는데 헌재 결정으로 격차가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민주당은 공식 논평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본격적인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헌재 결정에 대한 수용의사를 밝혔지만 속사정은 복잡하다.

우리당과의 통합에 적극적인 의원들은 헌재 결정이 민주당과 국민중심당과의 통합논의에 제동을 걸 수 있고 우리당의 지지도가 상승하면 통합에 유리하다고 보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통합 반대파는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의 상승기류가 영향을 받아 양당의 연대(이른바 신DJP연대)를 통해 세력을 키우려던 전략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헌재 결정은 차기 대선주자들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대선구도에도 변화를 줄 전망이다. 여론 전문가들은 전례에 비춰 이번 헌재 결정이 충청권 이외의 지역에는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충청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당장 정당이나 차기 주자들의 지지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지만 휘발성이 높은 이슈와 병행할 경우 지지도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사회여론조사부장은 “국민들은 지난해 11월 행정수도 위헌 결정을 겪고 나서 이번 헌재 결정에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에 정당이나 차기 주자에 대한 지지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면서 “헌재 결정 자체는 파괴력이 없지만 행정수도와 연계된 이슈가 쟁점화할 경우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한귀영 연구실장도 “헌재 결정은 생명력이 떨어진 이슈여서 향후 당 지지도나 차기 주자들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행정중심도시 문제가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 등의 국정철학이나 정체성과 맞물려 폭발성을 띨 경우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차기 주자 진영에서는 헌재 결정의 파급력이 미미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충청표심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수도이전 반대에 가장 앞장섰던 이명박 서울시장측은 헌재 결정에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다.

한 측근 인사는 “11월1일 이 시장의 충남대 초청 특강이 지역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것을 보고 충청민심을 다독일 수 있는 방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수도 이전에 대한 이 시장의 지론을 이해 시키는 작업이 지속 되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대선도 충청권이 캐스팅 보트

정치권에서는 이번 헌재 결정이 차기 대선에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평가한다. 즉 차기대선에서도 충청권이 1997년, 2002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97년 대선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39만 표 차로 겨우 눌렀다. 당시 김 후보는 충청권에서만 40만 표 앞서 승기를 잡았다.

충청권 맹주를 자처했던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연합을 통한 ‘DJP 효과’가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57만표 차로 따돌렸고, 이중 충청권 득표차가 45%를 차지했다.

충청표심에 대권이 달렸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그리고 이 말은 2007년 대선에서도 유효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헌재가 ‘행정도시특별법’에 합헌 결정을 내리던 시각, 친노(親盧)계의 한 초선의원은 “행정도시는 우리(여권)에게 블루오션이다”고 말했다.

무한경쟁의 정치판을 레드오션에 비유할 때 행정도시는 정치권의 ‘빅 게임’인 대선에서 출혈 없이도 여권에 승리를 안겨줄 카드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대로, 지난 대선에서 행정도시로 재미를 봤지만 차기 대선에서도 유효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즉 호남이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전제아래 충청권을 잡게 되면 지난 4ㆍ30 재보선(경북 영천, 정동윤 후보 48% 득표), 10ㆍ26 재선거(대구 동을, 이강철 후보 43% 득표)에서 나타난 동진(東進)정책의 성공에 비춰 지역적으로 한나라당을 포위하고 대선을 반 한나라당 구도로 형성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KSOI 한귀영 실장은 “대선을 ‘구도 대결’로 가면 승산이 있다는 시각은 너무 정치공학적”이라며 “차기 주자들이 얼마만큼 생명력 있는 이슈를 어젠다로 삼느냐에 따라 충청표심도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재의 합헌 결정이 당장 여야나 차기 주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헌재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후폭풍이 전혀 다르게 나타날 개연성은 충분하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