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쏟은 열정 대한민국 위해 쏟겠다" 의지… 본격 대권행보 시사

한나라당이 시끄럽다.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에 이어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파문으로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40%를 상회하던 지지율은 곤두박질해 장밋빛 기대가 점쳐지던 5ㆍ31 지방선거는 회색빛 전망이 덧칠되면서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근혜 대표와 이 시장의 리더십과 도덕성이 상처를 입은 것도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큰 손실이다.

한나라당에 그늘이 짙어지는 가운데 당내 대선 주자 ‘빅3’로 꼽히는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재임 중 많은 업적을 이뤘다는 평가와 함께 대선 주자 중 반등 가능성이 큰 우량주라는 분석에서다. 게다가 최근엔 당에 헝그리정신이 필요하다는 쓴소리를 하고 ‘도덕성’을 앞세워 다른 대선주자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등 광폭적인 행보를 보여 배경이 궁금해진다.

도정 사무 결재와 다음날 일본에서의 투자 유치 문제로 시간에 쫓기는 손 지사를 22일 오후, 경기도청 지사실에서 만났다.

손 지사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받는다”며 최근의 사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한편 “퇴임 후엔 경기도에 쏟은 열정을 대한민국을 위해 쏟겠다”고 해 대선 출마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재야 운동권에서 교수, 제도권 정치를 거쳐 경기도호의 선장에 이른 손 지사의 다음 행보와 현안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공인으로서 책임지는 자세 필요

-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과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 파문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해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 당이 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어떤 시대, 어떤 상황이건 간에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에게는 아주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최 의원 사건과 이 시장 문제는 같은 당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여기는데 그래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최 의원 문제는 그럴 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실수를 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공인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고 있는 만큼 책임질 줄 아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반면 이 시장 문제는 여당이 정치적 공세를 가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느낌이다. 같은 광역단체장으로서 살인적인 업무를 고려할 때 이 시장이 의도적으로 그런 일과 행동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당이 사건을 침소봉대하면서 이 시장을 공격하는 것은 이해찬 전 총리 파문으로 인한 위기를 돌파하고 테니스 논란을 5ㆍ31 지방선거에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여진다.

- 두 사건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 특히 지도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 최 의원 문제는 사퇴권고결의안까지 냈고 (최 의원이)탈당한 상황에서 제재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한계인 것 같다. 우선 최 의원 본인이 여론과 당의 입장을 헤아려 책임지는 행동을 보여줘야 하고 당도 국민의 마음을 받드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이 시장 문제는 사안의 본질에 비춰 이해찬 전 총리 파문과는 분명 다른 데도 정치 쟁점화하는 것인 만큼 여당에 맞서 이전투구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당과 지도부는 여론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되지만 책임지는 자세로 때로는 과단성있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

- 이달 중순 당 중앙위원회 포럼에서 "한나라당에서 천막정신, 헝그리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 당시 헝그리정신을 얘기한 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깃발만 꽂으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나라를 개혁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없이 집권하겠다고 하면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라를 개혁하려면 자기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당 지지율이 40%를 상회하니 집권을 다하게 된 것처럼 안일주의로 흐르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잠재적인 생각을 염려해 당을 비판한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에 필요한 것은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자기 혁신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야 일각에서 제기하는 기득권정당, 웰빙정당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깰 수 있다.

-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 정신이다. 과연 한나라당이 이 시대 정신을 담아내고 있는가 하는 자기 점검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산업화세력의 본류로 건전한 보수를 자부하고 있는데 국민에게 그렇게 비쳐지는지, 또 민주화세력의 주체를 자처하는 여당이 민주화를 잘못 이해해 오도된 개혁에 탐닉하고 있는데 그에 대항해 한나라당이 민주화와 개혁을 담아낼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국민에게 건전한 개혁,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는 보수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개혁적인 마인드를 갖고 역사적인 변화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 이제 임기가 얼마남지 않았는데 기억할만한 업적을 꼽는다면.

▲ 개별적인 업적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인프라 구축의 도정을 펼쳤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은 첨단기업 유치, 영어마을, 한류우드 등을 대표적인 사업으로 들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은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경제를 선도해가는 입장에서 경기도의 국가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의 일환들이다.

첨단기업 유치와 R&D(연구개발) 투자에 적극 나선 것은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고, 영어마을과 교육지원산업은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질 인재양성, 한류우드는 문화산업의 기초를 닦아 첨단산업 다음에 우리 살길을 찾기 위한 것이다.

요약하면 미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경기도정이었다고 평가한다.

- 도정(道政)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차기 경기지사의 기준 내지 자격을 말한다면.

▲ 경기도에 대한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경기도를 하나의 지방자치로만 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하는 ‘작은 대한민국’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한 가운데 세계와 역사 속에서 경기도의 위치를 올바로 인식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대 정신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 현재 당에서는 김문수 의원이 앞서 있고 외부 인사 영입론도 있는데.

▲ “누구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고 당내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후보 모두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외부 인사 영입에는 반대한다. 우리에게 훌륭한 자원이 있는데 마치 외부 인사를 끌어들여야 안전한 것인 양 말하는 것은 우리 후보를 폄하해 경쟁력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 퇴임 후엔 경기도에서 했던 것만큼 "대한민국을 땀으로 적시겠다"고 했는데 사실상 대선경쟁을 본격화하겠다는 의미 아닌가.

▲ 경기도를 땀으로 적신 열정을 퇴임 후엔 대한민국에 쏟을 생각이다.(웃음) 이 정도만 해두자.

- 대한민국을 어떻게 적실 생각인가.

▲ 쉽게 말해 잘살고 편안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지 않고, 서민들이 더 잘 살고, 국민이 편안하고 만족하는 나라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자를 보면 편안하고 믿을 수 있고, 최선을 다하면 잘 살 수 있고 기회가 찾아온다는 기대와 믿음을 갖게 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 그런 기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평가한다면.

▲ 노 대통령은 국민을 편치않게 하고 있다. 대통령을 보면 불안해 하고, 오히려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한다.

우리 국민은 외환위기 때나 재해 때 보았듯이 대통령이 땀흘리는 모습을 보이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에너지와 마음을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데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이번 5ㆍ31 지방선거의 의미를 평한다면.

▲ 노무현 정권의 성적표인 동시에 모든 정당에 대해 이 나라를 제대로 맡길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을 평가할 수 있는 장이라고 본다.

지방 선거후 한나라당 포위 구도로 바뀔 것

- 5ㆍ31 지방선거 이후 정치적 지각변동과 정계개편 가능성에 대한 견해는.

▲ 두고봐야겠지만 다음 선거를 위한 합종연횡 등 정치지형이 변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 정부는 현재 구도로 가면 대선, 총선을 낙관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정치판을 바꾸려고 할 것이다. 대연정이 그러한 예다. 지방선거 후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나라당을 포위하는 전략을 펼 것이다.

- 한나라당이 외연확대 차원에서 민주당, 국민중심당과 연대하는 것에 대한 입장은.

▲ 연대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 혁신하면서 당의 지지층을 넓혀가는 자세다. 내부는 바뀌지 않은 채 주변 세력을 붙여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이 철저하게 바뀌는 모습, 단련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현실적인 문제로 대선 예비 후보 중 지지율이 낮게 나오고 있는데 이를 극복할 방안은 있는가.

▲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는다. 지금 지지도는 기존의 관성에 따르는 인기투표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본격적으로 우리가 어떤 지도자를 원하고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를 따지게 되면 변할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 당원과 지지자는 최종전에서 누가 경쟁력이 있느냐, 그리고 두 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후보에게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를 구체적으로 검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지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 7월 전당대회 이후 대선 경선과 관련해 박근혜 대표와의 연대설도 예상되는데.

▲ 말 그대로 ‘설’일 뿐이다. 나는 이 땅에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선 주자들 틈에서 적당히 줄타기 해서 위치를 차지하고 입신양명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 한나라당 의원들이 보수적 성향이고 지역으로는 영남이 많은 구조에서 경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지난 두 번의 대선 패배가 말해주듯 한나라당이 수구 보수당, 영남당 이미지를 깨지 않고는 다음 대선에서도 승산이 없다.

당원들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고 당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경선 구도는 현재와 달라질 것이다.

- 2007년 대선에서 국민은 어떤 기준으로 지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보는가. 그런 기준에 비춰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 다음 대선의 선택 기준은 시대 정신과 도덕성이라는 바탕 위에 세계화에 대한 비전, 국가관리 능력,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실사구시 등 세 가지라고 본다.

시대 정신은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대한민국의 업적을 인정하는 가운데 남북관계에서 냉전적 사고를 떨쳐내고 서민 중시 정책을 펴나가면서 국가경쟁력을 예측할 수 있는 글로벌 마인드 등을 갖춘 종합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높은 도덕성은 서민과 더불어 살고 민주화의 고난을 거친 삶 속에서 우러나온다.

나는 학생운동 때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를 몸으로 실천했으며 서민의 삶 속에서 젊음을 보냈다. 또 경기도정을 운영하면서 세계화의 비전과 국가관리능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자부한다.

차기 대선의 기준들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평가한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