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정보 오판 등으로 위상 실추, 정보계 맏형 자리도 국가정보국에 내줘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흔들리고 있다.

포터 고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5일 돌연 사임하고 후임에는 국가정보국(DNI) 부국장인 마이클 헤이든 장군이 내정됐다.

경질의 핵심은 총체적 위기에 빠진 CIA에 대한 불신때문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모두 동의한다. 이번 인사는 9ㆍ11테러 이후 정보기관의 ‘맏형’으로서의 위상이 실추돼온 CIA 쇠락의 결정판이라는 말도 나온다. 뉴욕타임스 지적대로 ‘중앙’정보국은 미 행정부 내에서 더 이상 ‘중앙’이 아니게 됐다.

“이란이 몇 년 뒤에 핵무기를 갖게 될지 우리는 모른다. 그 답을 말해 줄 정보기관 사람들도 모른다.”이 같은 미 상원의원 팻 로버츠(공화ㆍ캔자스주)의 말은 CIA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CIA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1947년 창설됐다. 59년 동안 미국 정보기관의 ‘맏형’역할을 해 온 CIA의 자리가 냉전이 끝난 뒤 흔들리게 됐다.

93년 2월 정치 첩보에서 경제 첩보로 역할 전환을 선언했지만 각국의 첨단기술 동향을 파악하고 미국 산업기술 유출을 막는 낯선 임무에 적응하면서부터 위상이 말이 아니었다.

특히 9ㆍ11테러를 전후해 몇 차례 정보 오판은 신뢰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테러를 막지 못했을 뿐만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정보기관은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불협화음을 냈을 뿐”이라는 신랄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스 국장 사임, 후임에 헤이든 DNI 부국장

냉전 시대 서슬 퍼런 권력을 자랑했던 CIA는 이미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권에서 미국 정보계 수장 역할을 DNI에 뺏기고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2004년 9월 부임한 고스 전 국장은 CIA 개혁을 내세우며 기존 위상을 되찾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세 싸움에서 존 네그로폰테 DNI 국장에 밀린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네그로폰테 국장의 오른팔인 마이클 헤이든 DNI 부국장이 신임 CIA 국장에 지명되면서 CIA는 DNI에 완전히 ‘접수’됐다는 분석이다. 헤이든 CIA 국장 지명자는 평소 CIA 권한 축소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인물로, 그가 국장에 취임하면 CIA는 군소 정보기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 CIA 국장 자리의 무게는 이미 가벼워졌다.

지난 97년 조지 테닛 국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6년 동안 1년에 한 명 꼴로 5명의 국장이 임명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단 한차례 짧은 면담을 통해 제임스 울시를 국장에 임명했다. 이후 2년 동안 단 두 차례만 사적으로 만났다.

고스를 포함해 CIA 창설 이후 국장을 역임한 18명 중 불명예 퇴진한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국장 퇴진으로 조직 자체의 위상과 역할이 줄어들게 된 경우는 없었다.

CIA는 지난해 10월 창설된 국가비밀국(NCS)을 하부조직으로 거느리면서 위상 확대가 기대됐다.

연방수사국(FBI)이나 국방정보국(DIA) 등의 해외 첩보부문을 총괄하게 될 NCS는 당초 DNI 산하에 신설될 예정이었지만 미 상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CIA가 맡게 됐다. 그러나 해외 첩보활동을 강화하려는 국방부와 마찰을 빚으면서 오히려 악재가 됐다.

존 네그로폰테 DNI 국장에 무게중심

여기에 조지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미‘정보공동체’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존 네그로폰테 DNI 국장에게 무게중심을 실은 것이 외부 원인으로 지적된다. 어떤 경우라도 ‘정보 공룡’으로서 환경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CIA 홈페이지는 임무에 대해 ‘독립기구로서 미 정책결정자들에게 국가 안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미 대통령이 지명하는 국장은 작전·인사·예산권을 장악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치는 2004년말 DNI가 설립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CIA 국장이 행사하던 미 정보기관의 감독 및 조정권은 DNI로 넘어갔다.

차기 수장으로 내정된 헤이든 DNI 부국장은 국방부 산하 정보조직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CIA의 역할을 테러와의 전쟁과 해외첩보 수집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소신을 표명해온 인물이다. 고스는 이에 맞서 CIA를 미국 정보기관들의 총지휘부로 남겨놓으려다 실패했다는 게 미 언론의 분석이다.

차기 CIA 국장 마이클 헤이든
CIA 개혁에 나설 '싸움 닭'

“싸움에서 절대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차기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지명된 현역 공군 3성 장군인 마이클 헤이든(61)는 이렇게 평가받고 있다.

헤이든을 “백악관 여론몰이 기계의 부속품”이라고 비판하는 제인 하먼 하원의원을 비롯한 반대파들조차도 헤이든의 분명한 성격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는 역사학자 매튜 에이드는 “헤이든이 NSA 재직시절 부국장을 비롯한 고위 人사들이 조직 개혁에 반대하자 ‘여기서는 당신들이 전문가’라고 말하는 대신 ‘당신들은 내 편인가, 아니면 나의 적인가’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후 헤이든은 자신의 뜻에 반기를 들었던 부국장을 런던에 연락관으로 파견해 버렸고 반대파에 속했던 여러 고위 인사들은 은퇴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헤이든은 앞으로 9ㆍ11테러와 이라크전 등을 통해 사전 정보능력 부족으로 그동안 여론의 질타를 받아온 CIA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막중한 책무를 안게 됐다.

대학 졸업 후인 1966년 공군에 들어간 헤이든은 80년대 불가리아 주재 미대사관에 근무하면서 냉전 첩보전에 뛰어들었다. 주한 유엔군 사령부 부참모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9ㆍ11 테러로 미국 정부가 총력을 집중한 대 테러전 와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99년부터 2005년까지 레이더와 위성 등을 동원한 첨단 전자정보업무를 총괄하는 NSA국장을 지냈다.

이후에는 미국내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부국장으로 존 네그로폰테 국장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다. 그가 이끌었던 NSA는 2만1,000명을 거느린 초특급 기밀기구로 36억 달러의 예산과 함께 전자메시지나 전화통화, 이메일 도청 등을 담당하고 있다.

45년 피츠버그에서 용접공의 아들로 태어난 헤이든은 대학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택시운전사로 일하기도 했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