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김근태 의장 정책현안 등 시각차… 지난주 靑 회동선 갈등 봉합

▲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14일 강서 외발산동 메이필드 호텔에서 열린 지도부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신상순 기자
5ㆍ31 지방선거 후 여권에선 ‘당ㆍ정ㆍ청 공동운명체’라는 의례적인 말조차 쓰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35.7%에 불과했고, ‘대통령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의견이 57.1%에 달했다. 수치로만 보자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이미 갈라선 것이나 다름없다.

노무현과 김근태의 오랜 애증관계를 굳이 거슬러 짚어보지 않아도 ‘김근태 체제’의 등장이 당·청 분화의 시작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김 의장도 공공연히 “대통령은 역사에 업적을 남기겠다고 하고, 당은 대선과 총선을 고민할 수밖에 없어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고 인정했다.

김 의장의 말대로 지방선거 이후 선거 패배에 대한 충격의 강도, 내년 대선을 대비한 재집권 구상, 참여정부의 정책기조의 수정 여부 등에서 청와대와 우리당 사이에 적지않은 간극이 노출됐다.

당에선 여전히 뻣뻣한 청와대를 향해 “재집권 의욕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다”는 불만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성공적인 임기 마무리와 업적 챙기기를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는 노 대통령과 대선, 총선이라는 생존게임을 벌여야 하는 당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 의장, 노 대통령 공개 비판

당·청 갈등의 첫 번째 뇌관은 광주에서 터졌다.

6월 16일 김근태 의장은 “광주시민들과 전남도민들이 서운해 하는 것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인 것과 작년 중반에 있었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논의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크게 작용한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여당 의장이 공개 비판하기는 처음이었다.

같은 날 노 대통령은 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정치와 역사에 관해서는 원칙주의를 견지해 왔고 앞으로도 원칙주의를 견지해 나갈 것”이라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겠다”고 했다. 선거 패배에 대한 김 의장의 절박감과는 온도차가 확연했고 당의 정치적 부담과는 별개로 정치노선에서의 '마이웨이'를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이 장면은 현재권력인 노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김 의장이 ‘정치적 의제’로 격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대단히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의 ‘시선 차이’는 정책 현안을 놓고 더욱 확연하다.

부동산 세제정책과 관련해 김 의장은 ‘신중한 재검토’를 주문했지만, 노 대통령은 “저항 없는 개혁은 없다”는 원칙론으로 대응했다.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는 김 의장의 말이 더 유명해진 분양원가 공개 문제도 언제 터질지 모를 휴화산이다.

또한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의 주관이 뚜렷하게 다른 한미 FTA 문제는 더욱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김 의장은“시한에 너무 쫓기는 게 아니냐는 공감대가 있고 정치·경제적인 슈퍼파워 미국과 FTA를 충분한 준비 없이 하는 게 적절한지, 제2의 IMF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청와대와 정부의 한미FTA ‘올인’에 제동을 걸었다.

이런 정책 기조와 관련된 문제를 놓고 당과 청와대는 당분간 팽팽한 주도권 다툼을 벌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당 쪽에선 내년 대선을 대비해야 하는 만큼 “당의 입장을 존중해달라”는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노 대통령이 어느 선에서 이를 수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책기조의 일관성과 임기 마무리에 방점이 찍힌 청와대의 입장에선 당의 요구를 마냥 들어주기만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측의 갈등이 지금 당장 결별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노무현 대통령(좌), 김근태 의장.

이와 관련해 당의 핵심 관계자는 “아직까지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은 상호 보완재”라고 했다. 노 대통령이 일단 “당적을 유지하겠다”고 탈당 가능성을 일축했다. 충돌보다는 재건에 우선순위를 둔 김 의장도 아직은 전략적 공존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정권에서 그러했듯이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전략적 공존’은 결별의 전야에 불과한 법이다. 물론 몇 가지 변수에 의해 공존의 기간이 늘어날 수는 있다. 새로운 당·청 관계 정립을 위해 청와대가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 일정부분 소통의 창구를 열어두는 경우다. 이와 함께 김 의장이 대권 주자로서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치적 판단도 작용할 수 있다.

노 대통령 내년 1월 탈당설

하지만 당에선 ‘내년 1월 노 대통령의 탈당설’이 끊이지 않는다. 정기국회까지의 ‘정책적 갈등기’를 거친 뒤 정계개편 흐름이 가속화되는 연말연초부터는 어느 쪽이 먼저이든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정기국회까지는 당 위기를 넘어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고, 그 다음에 불가피하게 닥쳐올 정계개편 문제에 회피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이 바라보는 정계개편의 방향은 상당히 동떨어져 있어 양측이 한 배를 탈 가능성은 낮다.

결국 김 의장 취임 후 첫 번째 청와대 회동을 통해 당·청 간 이상기류설이 표면적으로 봉합되기는 했으나, ‘2인3각’이나 다름없는 청와대와 당,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의 ‘불안한 동거’는 정치적 격변기를 앞두고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