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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리더십 발군… 준비된 '포스트 胡'
중국 5세대 '떠오르는 별' 누구인가 ① 리커창
차기 정치 중심 세력 '단파' 핵심인물… '후진타오와 동향'이 아킬레스건





‘포스트 후진타오(胡錦濤)’의 중심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단파(團派), 즉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을 두고 ‘3다3소(三多三少)’라는 평가가 있다.

▲재경 부문이 아닌 곳에 진출자는 많은 데 비해 재경 부문 진출자는 적다 ▲지방정부 지도자 출신은 여럿이지만 중앙요직 경험자는 드물다 ▲학력이 높은 사람은 많지만 현장 실무 경력이 많은 이는 적다 등이다.

상하이방(幇)과는 달리 재경 부문 담당자와 경험자가 적다는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도 예비 권력주도 세력인 단파의 큰 약점이다. 중국이 날이 갈수록 ‘붉은 주식회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파의 선두주자 리커창(李克强)만큼은 예외다. 베이징대 법률학과를 나온 그는 1995년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학위가 결코 장식용이 아님은 그의 학위논문 ‘중국경제의 삼원(三元) 구조’가 중국 경제학계의 ‘최고 논문상’을 수상한 사실이 입증한다.

일찌감치 리더십과 지적능력을 인정받은 리커창이 5세대의 선두주자의 위치를 오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처럼 최고지도자로서의 흠잡기 힘든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1955년 7월생으로 올해 51세의 리커창은 현재 랴오닝(遼寧)성 서기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다. 그가 맡게 될 다음 직책은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점쳐지고 있다. 중앙판공청은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을 합한 곳으로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현 총리 원자바오(溫家寶)와 국가부주석 쩡칭훙(曾慶紅)이 거친 자리며 전 국가주석 양상쿤(楊尙昆)도 이 직책에 오랫동안 있었다.

만일 리커창이 예상대로 판공청 주임에 오른다면 그는 전 정치국 상무위원 후치리(胡啓立), 현 정치국 위원 왕자오궈(王兆國)에 이어 단파가 배출한 3 번째의 판공청 주임이 된다.

뛰어난 지적능력, 최연소 행진 계속

바쁜 조직생활 가운데서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지적 능력이 뛰어난 리커창이지만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점은 발군의 리더십이다.

19세 때인 74년 인민공사의 한 대대 산하 삽대(揷隊)에 들어간 리커창은 불과 2년 뒤인 76년 그 대대의 당 지부서기가 되었다. 78년 23세 늦깎이로 베이징대에 입학한 그는 학생대표를 거쳐 베이징대 공청단 서기가 되었다.

이후 공청단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쳐 38세 때인 93년 5월 공청단 제1서기에 선출됐다. 공청단 제1서기는 부장급(장관급)으로 리커창은 당시 부장급 고위관리 중 최연소였다. 공청단 제1서기를 시작으로 그는 4세대의 후진타오와 리창춘(李長春)이 그랬던 것처럼 최연소 행진을 계속했다.

98년 허난(河南)성장에 임명됐을 때 당시 43세로 최연소 지방정부 지도자였다. 다음해 허난성 서기로 승진했고 이어 2005년 랴오닝성 서기로 전임했다.

리더십과 뛰어난 지적능력만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은 아니다. 1985년 중앙 공청단 서기가 되어 당시 공청단 제1서기로 있던 후진타오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 보다 결정적 요인이다.

후진타오는 리커창의 뛰어난 언변과 풍부한 지식에 매료됐다. 리커창은 안후이(安徽)성 딩위안(定遠) 출신으로 지시(積溪) 출신인 후진타오와 동향이기도 하다. 당시 대학 담당이던 리커창은 천윈(陳雲), 리셴녠(李先念), 덩잉차오(鄧潁超), 펑전(彭眞) 등 혁명원로의 대학초청 강연회를 기획했다.

이 기획을 통해 리커창과 후진타오는 원로들과 자주 접촉, 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대목은 고르바초프가 온천 휴양지의 지역 책임자로 있으면서 당 고위간부의 눈에 든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위기의 순간도 있다. 허난성장 시절인 2000년 12월 25일 뤄양(洛陽)시 상가에서 대화재가 발생 311명이 사망한 때이다.

당시 대형사고가 빈발하자 중앙 정부에서는 일정 이상 인명피해가 날 경우 해당 지역 최고위급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원칙대로라면 리커창은 인책 해임돼야 했다. 하지만 그는 무사했고 오히려 2002년 서기로 승진했다. 후진타오의 구명 노력도 물론 있었지만 유능한 차세대 지도자감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데 당시 지도부의 의견이 모아졌던 것으로 보인다.



▲ 리커창


리더십, 능력, 배경, 전국단위의 조직경험과 농촌지역(허난성)과 공업지대(랴오닝성)를 두루 거친 경력 등 리커창은 이미 차기 최고지도자로서 충분한 수습을 마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종교배’를 피하는 중국의 후계자 선정 불문율은 그의 아킬레스 건을 겨냥하고 있다. 장쩌민이 상하이방 출신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지 못했던 전례는 후진타오와 리커창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의 대학 동기생 중에는 반체제 인사들이 많다. 왕쥔타오(王軍濤), 후핑(胡平), 리샤오민(李少民), 장웨이 등이 그들이다. 리커창과 이들 반체제 인사는 10대에 문혁을 경험하고 다소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왕쥔타오는 대학생 시절 리커창은 베이징대의 비판적 풍토를 매우 좋아했다며 “내가 고관이 되어 양심에 어긋나는 과오를 저지르게 되면 베이징대 동창생들이 나를 토벌해주기를 희망한다”고 얘기하곤 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리커창은 2005년 9월 한국을 방문했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을 찾았을 때 반도체 웨이퍼에 관련하여 전문적인 질문을 쏟아내 안내하던 황창규 삼성전자 총괄사장을 진땀 흘리게 했던 일화를 남겼다.

원자바오 총리 '명언 실천'의 삶


유난히 자주 대화나 연설 중에 명구(名句)를 인용하기로 이름난 원자바오(溫家寶)총리가 유럽 방문을 앞두고 유럽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자신의 좌우명인 동서양 명언을 쏟아내는 박학다식을 과시했다. 동서양을 종횡한 그 명언들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청 말의 정치가 좌종당(左宗棠)의 초년 시절 좌우명과 임마누엘 칸트의 묘비명이다.

원 총리가 업근한 좌종당의 좌우명은 '몸은 비록 반 무(畝)의 땅도 없지만 마음은 천하를 근심한다. 만권의 책을 읽으면 옛 사람과 정신적으로 통할 수 있다(有無半畝 心優天下 / 讀破萬卷, 神交古人)이다.

칸트의 묘비명은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움과 경건함을 주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내 위에서 항상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 속의 도덕률'이라고 써 있다.

지난 5일이 좌종당의 기일(忌日)이고 이번 유럽 방문 중 독일을 실무 방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위적인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원 총리가 10년 넘게 같은 점퍼를 입어 왔고 또 수년째 한 운동화를 기워신는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좌종당의 좌우명과 칸트의 묘비명을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입력시간 : 2006/09/14 15:05




이재준 객원기자·중국문제 전문가 hufs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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