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세대 '떠오르는 별' 누구인가 중국 전략 미사일 부대 제2포병최근 외국방문 등 활발한 대외활동 벌여… 중국 군부 차세대 실력자 예고

지난 1월 12일(중국 시간) 위성요격 미사일 발사실험 성공으로 중국의 전략 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第二炮兵)’이 새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몇 해 전까지 해도 ‘제2포병’은 미 중앙정보국(CIA)조차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베일에 싸인 곳이었다. 2004년 9월 제2포병 사령원(사령관)이 해군사령원과 공군사령원과 더불어 중앙군사위원회에 진입했을 때 11명의 위원 중 나이가 사전에 파악되지 않은 이는 징즈위안(靖志遠) 제2포병사령원이 유일했을 정도다.

하지만 불과 2년 4개월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일변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중국어판은 징즈위안의 출생 연월일을 포함, 약력을 상세하게 싣고 있다. 사진 역시 물론 첨부되어 있다.

2005년 10월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베이징 부근 칭하(淸河)에 있는 본부를 공개했다. 매파 중의 매파인 럼즈펠드에게 병력과 무기 수를 제외한 조직과 구성, 군사훈련 및 장비 등에 대한 브리핑도 했다. 물론 럼즈펠드는 “이 정도로는 안돼”라며 투명도를 더욱 높일 것을 요구했지만 냉전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군사외교 참여 등 징즈위안의 활발한 대외활동도 변화한 모습 중의 하나다.

징즈위안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군사 사절단을 이끌고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친선 방문했으며 올해 말에는 방미 길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연초에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2월의 춘절(春節 : 설날), 3월 전인대를 이유로 연기한다고 통보했다. 요격미사일 발사 실험 이전에 연기를 통보한 것으로 보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에는 부대 창설 40주년을 맞아 정치위원과 함께 직접 신화통신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제2포병은 1966년 7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의 비준을 거쳐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직접 명령에 의해 창설된 부대다. 해군, 공군과 더불어 육군과 구별되는 별도의 병종(兵種)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중앙군사위의 직접 통제를 받는다.

주 임무는 적의 핵무기 사용 억제능력의 확보, 그리고 핵 공격을 받았을 때 독립 지역에서 타군의 각종 전략 핵부대와 연합, 반격을 지휘한다는 것이다. 음지에서 착실하게 발전해오던 제2포병은 사령원이 2004년 9월 19일 16기 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군사부문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중앙군사위에 진입했다. 후진타오(胡錦濤)의 군사위 주석 승계와 함께 이루어진 이 조치로 제2포병은 위상 격상과 함께 수면 위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후진타오는 군사위 주석 승계 5일 뒤 징즈위안 제2포병 사령원과 장딩파(張定發) 해군사령원을 상장으로 진급시키고 상장 수여식을 공개했다. 군권(軍權)이 후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보다 확실히 알리기 위한 이벤트를 통해 징즈위안도 베일을 벗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번에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위성요격 미사일 발사실험 성공으로 그가 차세대 중국 군부의 실력자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징즈위안은 1944년 생으로 올해 62세이다. 타 부문의 5세대와는 연배가 10세 전후 많지만 10명의 군사위 위원 중에서는 최연소다. 군사위 위원 4중전회에서 3 명이 늘어나 11명이었으나 장딩파가 지난해 12월 초 사망, 현재 10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최연장자는 1935년생인 차오강촨(曹剛川) 국방부장이고 군사위 부주석 겸 중앙 서기처 서기로 실세로 평가받는 쉬차이허우(徐才厚)도 그보다 한 살 많은 1943년생이다.

징즈위안은 산둥(山東)성의 린수(臨沭)출신인데 산둥성은 유난히 장성을 많이 배출, 한때 해방군 내에서 ‘산둥방’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부친은 후베이(湖北)성 샹판(襄樊)시 전기공급국(供電局)의 퇴직 간부로 군부 핵심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태자당에 속하지 않는다.

징즈위안은 19세 때인 63년 8월 포병 전사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65년부터 67년까지 우웨이(武威)포병학교를 다녔다. 졸업 후 1년 전에 창설된 제2포병에 배속되어 해방군 군사학원, 국방대학 등에서 교육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줄곧 제2포병에서 근무했다. 기지 참모장, 기지 사령원을 거쳐 99년 본부 참모장에 올랐으며 2003년 1월에 제2포병 사령원에 임명됐다.

90년 7월 소장에 진급하여 장성이 되고 10년 뒤인 2000년 7월에 중장으로 진급했다. 원 스타에서 투 스타까지 진급하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투 스타에서 쓰리 스타까지는 불과 4년밖에 안됐다. 징즈위안의 뛰어난 군사적 재능도 재능이려니와 제2포병의 위상 격상, 그리고 군부 내 자신의 인맥을 구축하려는 후진타오의 구상이 그의 빠른 승진을 가져 온 것이다.

96년 3월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 중국이 대만섬 남북 앞바다에 둥펑(東風) 미사일 발사 훈련을 실시, 양안관계를 얼어붙게 한 적이 있다. 미사일을 발사한 중국의 815여단은 징즈위안이 사령원으로 있던 안후이(安徽)성 황산(黃山) 제2포병 52기지의 예하부대였다. 이후 징즈위안은 대만 정보당국이 가장 주목한 인민해방군의 장성이 되었다.


이재준 객원기자 중국문제 전문가 webmaster@china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