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자금' 움직임 포착 추적… '사정 칼날' 끝은 MB 핵심라인?자원외교·기업 커넥션 '정조준'

이완구 국무총리가 지난 12일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 표적 수사'의혹 피하려고'기업 내부비리' 수사에 초점
수사망 좁혀 가면서 결국 MB정권 실세들에 대해 수사 불가피
검찰수사 전방위 확대땐 여권 고위 관계자들도 '사정권' 포함

정부와 사정기관의 '부패와의 전쟁' 합창이 정점을 향해 빠른 박자를 타고 있다. 검찰은 포스코와 경남기업 등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는 가운데 그동안 깊은 수면아래 봉인돼 있던 '은밀한 비밀'이 하나둘씩 부상하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기업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이명박정부의 비리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말이 무성해서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검찰의 기업비리 수사가 정치적 성격이 강한 만큼 지난 정권에서 비리 의혹이 제기된 기업들을 상대로 추가 수사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검찰은 일단 수사가 과 친이계를 겨냥한 정치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정치인의 비리 연루보다 기업의 내부 비리 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 중인 부분은 과거 "이명박 정권 핵심 실세와 연결된 비리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던 사안들이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결국은 전 정권 실세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아울러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기업들이 더 있다는 소문이 사정기관과 재계 주변에 무성하다. 이들 기업들은 대부분 이명박 정권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 낙하선 타고 내려가 몸 담았거나 이명박정부 비자금 조성에 기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될 경우 여권 고위 관계자가 사정 범위 안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칼날 앞에 숨죽인 기업

이명박정부의 자원외교는 현재까지 4조원의 국고를 탕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비공식 또는 비공개 부분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업이나 공사 등을 통한 직·간접 투자와 더불어 자원외교를 내세운 비리로 인한 추산액수까지 합치면 수십조원에 이르는 혈세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론은 현 정권이 인수위 시절부터 곳곳에서 전망됐다. 이 같은 전망은 국민적 요구에서 비리척결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을 바탕에 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전 정권 비리 조사에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감싸고도는 느낌마저 준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야권에서는 박근혜정부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 부분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명박 정권의 비리 핵심인 4대강, 자원외교, 방위사업 비리를 조사하자는 '사·자·방' 국조요구는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일각에서 "박근혜정부가 전 정권 비리 수사를 정권 초부터 했다면 국민적 실망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박근혜정부 뒷북행보를 꼬집는 말이다. 결국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애초 이명박 정권 비리 수사에 의욕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수사 역시 소기의 목적만 달성하면 용두사미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벌써부터 회의론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이런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일단 사정기관의 전방위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면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포스코ㆍ경남기업에서 시작된 기업수사가 다른 기업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곳은 한전을 비롯한 공공성이 강한 기업들이다. 검찰과 경찰은 이미 지난해 말경부터 한전 내부비리 수사를 진행해 한전 간부들과 납품업체들 간의 유착 비리를 적발했다. 하지만 정작 한전의 권력유착형 비리는 캐내지 않았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검찰은 이미 이명박 정권 당시 권력 실세와 연결된 한전비리 첩보를 상당량 확보한 상태다. 납품업체 비리와 관련해서도 이명박 정권 핵심 관계자가 포함된 정황이 포착됐지만 이 부분에 대한 조사는 비켜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포스코 KT MBC 등과 더불어 역대 정권의 비자금 세탁 창구로 통할 만큼 수많은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곳이다. 한전의 경우 이명박 정권 핵심 실세가 석탄 수입사업에 연루된 정황이 상당하고 계열사 비리 의혹이나 투서 고발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검찰은 한전 수사를 정치권 관계자로 확대하지 않고 지나가는 분위기였다. 최근 검찰이 한전 수사를 다시 강도 높게 진행할 것이라는 기대섞인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한전 입찰 비리와 관련해 검찰이 관련 업체의 불법 낙찰 및 한전 관계자에게 뇌물이 상납 됐는지 등에 대해 추가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지검 특수부는 지난달 16일 한전 전산조작을 통해 한전 계약공사를 불법 낙찰하게 한 뒤 그 대가로 134억 대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한전 자회사인 KDN 파견업체 전ㆍ현 직원과 전기공사 업자 등 6명을 구속 기소한 데 이어 이들의 불법 낙찰 자료 등을 분석해 관련 공사업자를 상대로 추가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구속기소 된 한전 자회사인 KDN 파견업체 전ㆍ현 직원이 받은 뇌물의 경로를 추적 중이다. 이를 통해 한전 KDN 및 한전의 윗선 관계자에까지 뇌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는지 밝힐 계획이다. 검찰은 계열사 간부들이 한전 핵심부에 적지 않은 뇌물을 상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이들의 계좌추적 등을 통해 상납 고리를 추적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일단 한전과 계열사간의 비리를 캐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아직 정치권 관계자가 한전 비리에 연루된 구체적인 정황은 나오지 않아 수사는 하지 않고 있지만 향후 수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가 비리에 연루됐다는 물증이 나오면 조사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한전 입찰 비리 수사가 어디까지 파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며 "지난 정권 때 정권 핵심 관계자가 한전비리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무성해 검찰 수사가 정치권을 확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기업비리 수사와 관려해 국정원이 적극 공조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또 국정원을 통해 한전뿐만 아니라 국내 굴지의 H사, 또 다른 대기업 H사, O사 등의 기업 비리 첩보를 분석 중이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은 금융비리에 대한 정보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이명박정부 때 발생한 거액의 금융자금을 추적해 의심스러운 부분을 찾아냈다는 소문이 적지 않다.

사정기관 소식통에 따르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자금과 관련해 검찰이 정밀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금융을 통한 자금 흐름 추적은 외국과의 공조가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어 검찰은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또 검찰은 그동안 공유된 국정원 정보를 통해 기업 비자금과 관련해 상당한 정보를 확보했다는 소리도 적지 않다.


비리수사=박근혜정부 딜레마?

사정기관의 재계 전방위 수사와 관련, 박근혜정부가 이 전 대통령과 당시 정권 인사들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 아니냐는 말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검찰이 자원외교와 관련해 수사 출발선상에 경남기업을 둔 점은 앞으로의 수사 방향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이다.

이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설 정도로 MB정부가 중점 국책과제로 삼았던 자원외교는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를 주축으로 진행됐다. 두 기관 모두 감사원과 시민단체 등의 고발로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이지만 고발은 빌미일 뿐 실제로는 철저하게 계획된 수사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박근혜정부의 이번 '부패와의 전쟁'이 일종의 '정치쇼'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말하자면 레임덕 위기에 놓일 정도로 실추된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국민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려는 것일 뿐 결국 지지율이 회복되면 수사는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 근거를 살펴보면 이미 이명박정부 때 의혹의 중심에 섰던 사건과 핵심 인물들은 정권 말기에 사법처리를 받았다는 것이다. 사건의 핵심 인사들은 거의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 당시 '정권말기 면죄부'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명박정부가 문제를 모두 털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정권 말 태아건설이 부도를 맞았는데, 이를 두고 고의부도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태아건설은 이명박 정권 때 전문건설업 도급순위 1위에 꼽힐 정도로 이 정부 때 급성장했다.

태아건설은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5,000억 이상을 수주하며 전문건설업 도급순위 1위 자리를 꿰찼으나 갑자기 부도가 났다. 이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에는 별 볼일 없던 부산의 무명 회사가 4대강 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리며 업계 1위에 오른 후 이 같은 일을 당하자 업계에서는 고의 부도라는 말이 무성했다. 이 회자의 오너는 이 전 대통령의 대학 동기로 알려졌다.

또 황보건설도 비슷한 회사로 꼽힌다. 이 회사는 이명박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원세훈 전 원장의 대학원 동기가 운영하던 회사로 유명하다. 황보건설은 흑자 운영을 하던 도중 갑자기 부도를 냈다. 연 매출 60억에 불과하던 토목 전문건설업체가 급성장하자 원 전 원장의 지원으로 갑자기 연간 매출 400억 원의 알짜 기업으로 변신했다는 말이 무성했다.

이 두 업체는 정권이 바뀌자 검찰수사를 우려해 미리 고의 부도를 내고 자산을 숨겨버린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쏟아부은 22조 원 중 상당액이 이 작은 두 회사로 흘러들어갔고 이 돈은 다시 정권 실세로 흘러갔을 것이라는 게 사정당국의 분석이다.

한편 지난 정권 말 이 대통령 측근 비리와 관련 사법부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거나, 감형된 인물이 대부분 이 대통령을 둘러싼 BBK 사건, 태광실업 세무조사, 대선 자금 의혹 등의 핵심 '키맨'들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방송통신위원회 보좌역으로 재직하던 시절 국회의원들에게 금품 로비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정용욱씨에 대해 참고인중지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정씨는 파이시티 인허가 관련 비리 등으로 구속된 이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는 최측근이다. 정씨의 소재는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검찰도 정씨를 잡으려는 노력을 따로 하고 있지 않다.

부산저축은행 경영진 등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던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은 정권말 가석방돼 '권력형 탈옥'이라는 비판을 샀다. 은 전 감사위원은 이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2007년 대선 당시 BBK 법률 대응을 담당했던 인사다. 은 전 감사위원은 'BBK 가짜편지'의 실제 작성자인 신명 씨로부터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BBK의혹의 '키맨' 중 하나였다.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로비스트 박태규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측근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비슷한 시기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계기였던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배후로 지목됐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 역시 이 시기 '그림 로비' 사건과 관련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심지어 대법원은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로부터 로비 명목으로 금품 47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 일부를 파기환송했다. 천 회장이 물어야 할 추징금이 줄어드는 보너스까지 더해졌다. 검찰은 앞선 2심에서 천 회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부분에 대해 상고를 포기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박근혜정부가 야심차게 시작한 '부패와의 전쟁'이 애초 의지가 없는 정치쇼라는 의심을 받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이번 '부패와의 전쟁'은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와 검찰 주변의 이야기다. 박 대통령이 중동 순방 후 결행된 '부패와의 전쟁'계기가 MB정부 시절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된 자원외교의 비리 의혹과 관련된 것이라는 배경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중동 순방 후 자원외교를 비롯 전 정권의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며 정치권뿐만 아니라 기업도 비리가 있을 경우 예외없이 사실을 밝히라는 주문을 했다고 전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번 '부패와의 전쟁'은 박 대통령과 측 간의 진검승부 측면도 있다.

'부패와의 전쟁'중 재계와 관련해서는 대기업 비자금이 초점이 될 것으로 알려져 총수는 물론, 정치권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패와의 전쟁'이 '정치쇼'가 아니라는 단초들이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